어렸을 때 엄마는 나에게 세상, 불쌍한 사람이었다.
잃을 것을 다 잃고 서있는 겨울나무는 엄마를 닮았다.
휘 몰아치는 바람에 연약한 가지가 꺾여도, 속수무책 일 수밖에 없었다.
낙천은 오로지, 밖으로만 향하여서 안으로는 곪았다.
나무와 사람은 비슷한 면이 있다.
뿌리가 있고. 뿌리와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이다.
나무는 뿌리를 벋어나 다른 곳으로 갈 수 없고, 사람 역시 그렇다.
아무리 거친 땅이라도 뿌리만 살아 있으면 죽지 않고 살아낼 수 있다.
이성자의 ‘내가 아는 어머니‘ 는 베 짜는 어머니를 상상하게 한다.
철커덩, 철커덩, 배틀에 앉아서 고단한 노동을 이어가며 흥얼거리며 가락을 삭힌다.
윗목에 놓아둔 주발의 자리끼가 얼만치 콧잔등이 시린 겨울밤, 눈을 뜨면 엄마는 촉이 나간 알전구를 끼우고
양말 뒤꿈치를 기우고 있었다.
이성자는 유복한 환경에서 성장해 일본유학을 다녀 올 정도로 순탄한 인생을 살았다.
외과 의사인 남편과 결혼하여 아들 셋을 낳고, 자녀 교육에 공을 들이던 그녀는 남편과의 불화했다.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이성자는 삼십 대 초반의 나이에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그 당시에 삼십 대 초반이라는 나이는 중년에 가까운 나이였을 터였다.
늦은 나이에, 여자 혼자서 언어도 통하지 않는 먼 타국으로 간다는 것은 보통의 배포로는 결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욱이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에 어린 세 아들을 두고 떠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극단으로 치달은 끝에 내린 결정이 아니었을까.
이성자는 파리에서 성공한 화가가 되었고,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는 등 여러 상을 받으며
그 예술성을 인정받았다.
외로움은 본연의 것이다.
인간은 외로움을 잊기 위해서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며, 자기를 잊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라도 한다.
이성자는 혈육 향한 그리움을 예술작품으로 치환했다.
내가 아는 어머니들은 글자를 모른다.
아들이 군대에 가도 편지 한 장 쓸 수 없었던 어머니들이다.
학교 문턱을 밟아 보지 못해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며 눈물이 고드름처럼 드륵드륵 열리던 소녀들이었다.
반달처럼 코가 날렵한 버선을 바느질하여 만들고, 학을 수놓아 횟댓보를 만들어 시집왔던 여인들이었다.
어릴 때 두고 떠났던 아들들은, 장성한 뒤 이성자의 품으로 들어왔다.
어머니의 예술세계를 이해하고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었다.
그녀가 이룬 대범한 세계에는, 매일의 밥 한 숟갈로는 다가갈 수 없는 경지였을까.
그녀는 우주로 날아올랐다.
삶은 참 부조리하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부조리에 던져진다.
카뮈는 말한다, 부조리를 응시하며 살아야 한다고.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태도이며, 그 안에서 더 많이, 더 생생하게 경험하는 것이 인간다운 삶이라고 말한다.
그는 “인간에게는 저마다의 개인적인 운명은 있을지라도, 보다 우월한 운명란 없는 것이다." 라고 말했다.
살다 보면 겨울나무도, 잎이 푸르고 반짝이는 오월의 나무가 된다.
뿌리에는 물줄기가 찾아들고, 가지는 멀리멀리 뻗어 나간다.
태양을 찾아 한껏 뻗어 나가는 가지들이 행복할 것이라고 오월의 나무는 상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