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제삿날

by 그방에 사는 여자

아버지의 제사는 음력으로 지낸다. 대략, 1월 1일을 사이에 두고 며칠 전이거나 며칠 이후이다. 올해는 1월 4일이었다. 제사 음식을 만들어서 남편과 추모공원에 다녀왔다. 작년에, 원래 있던 추모관 옆에 새로운 추모관이 지어졌다. 새로 지어진 건물은 시설이 더 좋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구축보다는 신축을 선호 하나 보다. 제례실도 깨끗하고, 촛불이나 향을 준비할 필요가 없게, 일렁이는 초 모형과 타고 있는 듯한 초 모형이 유리 상자 안에 세워져 있었다. 집에 사놓은 향과 초는 필요가 없어졌다.



남편이 세 번에 걸쳐 따른 정종을 종이컵으로 받아서 세 번 돌리고 제사상위에 올렸다. 술을 좋아하신 아버지는 말년에는 술을 못 드셨다.

동태포 한쪽에 약주 한 잔 드실는지, 엄마는 그 옆에서 그만 먹어라 나직이, 말씀하실는지 모르겠다. 술 그만 먹어라 말하면서도 장에 가면 댓 병 소주를 사다 놓고, 겨울이면 막걸리를 빚었던 엄마는 술 한 모금 입에 대지 않았다.

아버지가 좋아하던 조기를 빼먹었다는 것을 추모공원에 도착해서 제사상 차리면서 알아차렸다. 혼자 준비하다 보니 꼭 한 가지씩 빼먹는 것이 있다. 전날 저녁에 마트에 가니 닭이 없었다. 긴 연휴에 다 팔리고 새로 들어온 것이 없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엄마는 닭고기를 좋아하시는데, 아버지 제사지만 엄마도 오 실 텐데 생각하다가 조기 사는 것을 까먹었다.



주차장에는 장례 버스 두대가 나란히 서 있었다.

납골당 안으로 들어가니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입구의 단 위에 나란히 올려진 사진을 흘깃 보면서 지나갔다. 왜 두 개의 사진이 나란히 있을까 생각했다. 언뜻 본 사진은 남자는 일흔 중반으로 보였고 여자는 그보다는 젊었다. 둘이 무슨 사이일까. 남남일까, 부부일까. 만일 부부라면 애석한 일일 것이다.

한꺼번에 두 사람이 떠나고 나면 남겨진 사람들의 슬픔은 더욱 클 것이다. 검은 상복 차림의 사람들은 창가에서 서성이거나 대기실 의자에 앉아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엄마의 장례식에서 친척 아저씨가 너희들은 어째 울지도 않느냐고 말했다. 깊은 곳에서 흐르는 눈물은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는 엄마 생각을 많이 한다.

엄마가 해 줬던 음식, 엄마가 했던 말이나 행동들에서 소용돌이치는 마음의 해답을 구하고자 애쓴다. 아버지는 그리운 존재가 아니었다. 그냥, 있다가 없어진 존재였다.

나는 아버지의 싫은 면과 엄마의 좋은 면을 닮았다. 술 취하면 "나 있을 때 시집가야지"

허, 허, 웃던 아버지.


저녁에는 제사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

탕국도 간이 잘 맞았고, 고사리나물도 자작하니 부드러웠고, 숙주나물도, 두부부침도 맛있었고

삶은 고기도 김치와 함께 먹으니 꿀맛이었다.

떡집에서 사 온 떡도, 마트에서 사 온 산자와 약과도 맛있었다. 아버지가 차려준 밥상을 온 가족이 잘 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어차피, 혼자 하는 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