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의 계절은

by 그방에 사는 여자

아침부터 문자 알람이 잔소리하는 엄마처럼 요란하다. 기온이 급하강 하니 외출을 자제하라, 외출할 시에는 옷을 따뜻하게 입고 미끄러운 길을 조심하란다. 수도 계량기 동파 방지 하라고 문자가 연신 온다. 수도 계량기는 엘리베이터 옆에 있다. 거의 열어볼 일이 없는 곳이다. 아이들 어렸을 때 크리스마스 선물을 숨겨두는 용도로 사용하기는 했었다. 눈 폭탄이 올 것이라고 어제 그렇게 겁을 주더니 오전 시간이 다 지나도록 눈은 낌새도 없었다.

베란다에서 철재 장바구니를 꺼내 끌고 아파트 건너편에 위치한 농수산물 시장으로 갔다. 지난주 일요일에 시장에 과일 사러 갔더니 잠겨 있었다. 수산물 동으로 가서 오징어를 사면서 물어보니 수산물 코너만 일요일에 문을 열고 과일동과 채소동은 일요일에 문을 열지 않는다고 했다.


쉬는 날 전날이어서 그런지 과일들이 세일을 하고 있었다. 귤 5킬로 한 박스에 1만 원 토마토 5킬로는 14000원, 배도 다섯 개가 1만 원, 딸기는 빨간 플라스틱 그릇에 담긴 것이 육천 원이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겨울이 왜 딸기의 철인가 잘 모르겠다. 딸기 옆에는 종이 박스를 세워 놓고 ‘제철 딸기가 만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내가 아는 딸기는 원래 봄의 과일인데 어쩌다 한겨울이 딸기의 제철이 된 것일까. 어쨌는 빨강 플라스틱 그릇에 담겨있는 딸기도 한 그릇 샀다. ‘좋은 시상이여, 한겨울에 딸기도 다 먹고, 호강한다' 엄마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호강한다고, 도대체 무엇이 호강이란 말인가. 엄마는 늘 우리들에게 `호강' 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지도 않았고, 학교도 다니고, 친척집에 애보기로 보내 지지도 않았으니 호강이었을까.



어렸을 때 나에게 딸기는 들판과 논둑과 산에서 따먹던 딸기가 전부였다. 자그마한 초록 잎사귀 위에 빨간 구슬처럼 살포시 올려 저 있던 딸기는 달콤했다. 산에서 자라던 딸기는 몽글몽글한 알갱이들이 뭉쳐 저 있어서 입안에 넣고 오물거리면 톡톡 튀는 맛이 있었다.

뱀딸기는 주로 논둑이나 밭둑, 길 가생이에서 자랐는데 검붉은 색에 씁쓰레한 맛이 나서 입에

넣자마자 뱉어 버리기 일쑤였다.


어느 날인가, 엄마가 뒤란 우물가 옆에 잎사귀가 빳빳한 색다른 모종을 심었다. 그 푸른 입사귀들은 담장옆 그늘을 따라서 기어가듯이 넝쿨을 뻗어 나갔다. 입사귀를 슬쩍 들추는 엄마의 허리춤에 서서 들여다보니 알사탕 보다 큰 푸른 열매가 달려 있었다. 양딸기였다. 열매는 하루가 지날 때마다 더디게 붉은빛으로 차츰 물들어 갔다. 우리 남매들은 기다리고 기다렸다. 딸기가 어서 익기를. 엄마는 딸기가 붉게 익어야 맛있다고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집에 아무도 없던 어느 날 오후, 나는 간신히 푸른빛을 면하고 조금씩 연한 분홍 색시 얼굴이 되어가는 딸기를 하나 몰래 따서 입에 쏙 넣어 봤다. 떫기도 하고 달콤하기도 한 맛이 났다. 혀끝에는 풋내가 감돌았고 혓바닥은 푸른 물이 들었다.

학교에 다녀와서 딸기 잎사귀를 들춰 보면 있던 딸기가 그새 한 개 두 개 사라져 있었다.

드디어 엄마가 붉게 익은 딸기를 따서 언니와 나와 동생들 입에 하나씩 넣어 주었다. 달콤함의 기억은 뭔가 다른 맛이었다. 입안 가득 꽉 차는 신선함과 달콤함이 가득한 그런 맛이었다. 이따금 엄마가 장에서 사 오던 눈깔사탕과는 다른, 산에서 손에 소복하게 따서 먹던 딸기와는 다른, 달콤함이 있었다. 아쉽게도 남아 있는 딸기는 몇 개 없었다. 기다리지 못하고 입에 넣었던 그 열매들은 어설펐다. 떫음과 달콤의 어중간에 걸쳐 있었다. 여름이 되자 뒤란의 풀들이 무성해졌다.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담장 밑의 풀들이 깔끔하게 베어져 있었다. 딸기 덩굴들도 풀들과 함께 베어지고 말았다. 기다리기만 하면 달콤함을 맛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던 나는 커다란 상실감에 휩싸였다.

“왜 다 없애 버렸냐고!! 왜 그랬어! 물어내 내 양딸기!” 나는 말했다. 발을 동동 굴러서 운동화 앞코가 흙먼지를 옴팡 뒤집어썼다.

우물가, 담장 밑에는 양딸기 넝쿨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응달이라 잘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었고, 다른 밭이나 논둑에는 자리만 차지하고 먹을 것은 없는 양딸기를 심을 여유가 없었다. 논둑에는 사람이 다녀야 하고 심어만 놓으면 용케도 여무는 콩을 심었다. 양딸기는 사치재였다. 아니 달콤함이 사치였던가. 끝내는, 입안에 꽉 차는 그 달콤함을 한번 더 느껴 볼 수는 없었다.



장보따리를 잔뜩 실은 철재 장바구니는 기우뚱했다. 신축성이 좋은 줄로 팽팽하게 당겨서 뒤축에 고리를 걸고 천천히 걸었다. 밖으로 나오니 바람이 거세게 불어, 나무들은

흡사 체조하듯 옆구리를 구부렸다 폈다를 하고, 길바닥에는 낙엽들이 참새떼처럼 이리저리 몰켜 다니고 있었다. 뒤집어쓴 패딩 모자가 벗겨질까 한 손으로 잡고 한 손으로는 케리어를 끓면서 건널목을 건너갔다. 귤은 뒷베란다에 내놓고, 딸기는 냉장고에 넣고 다른 과일들은 김치 냉장고에 넣었다.



공장에 다니던 21살의 나는 그 시절을 어떻게 살았는지 기억하기가 어렵다. 때로는 여름이었고, 때로는 겨울이었나. 내 공간의 전부였던 기숙사 옷장 한 칸을 책들로 채웠다.

이문열이나, 신경숙, 박노해, 김해화, 니체. 해르만헤세, 막심고리끼, 톨스토이나, 쇼팬하우워, 김지하를 읽었다. 기숙사 지하에 있던 휴게실에서 책을 보기도 하고, 친구에게 편지를 썼다. 기숙사는 6명이 한방을 썼으나 3명씩 조가 달라서 잠자기에 비좁지는 않았다. 3교대를 하던 공장은 새벽녘이면 시커먼 연기를 내뿜었다. 기숙사로 돌아가던 새벽의 하늘은 밝음이 오지 않을 것처럼 컴컴했다. 공장에는 20대 초반의 여자애들이 많았고, 다른 애들보다 늦게 들어온 나를 꽁지에 끼워 주는 무리가 있었다. 그 애들과 함께 야간 근무가 끝나면 막차를 타고 시내에 나가 나이트클럽에 가서 놀다가 새벽에 첫차를 타고 돌아오기도 했었다. 7명의 여자애들이 한 줄로 나란히 걸어가는 것을 보고 아저씨들은 엄마 오리 따라가는 애기 오리들이냐고 놀렸다. 오야붕이라 불렸던 진이는 키도 크고 덩치도 있고 목소리도 크고 성격도 화통해서 늘 맨 앞에 앞서 걸었고 그 뒤로 여자 애들이 졸졸 따라가는 모양새였다. 그때 유행어 중에 ‘오리지날‘ 이라는 유행어가 있었는데, ‘오리도 지랄하면 날아간다 ‘는 말이었다. 우리는 ‘오리지날‘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야간근무를 할 때면 잠과 싸우기 위해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양치질을 했고, 기계가 고장 나 라인이 서면 박스 한 장 찾아들고 언니들을 따라 구석으로 가서 쪽잠을 잤다.

잠들기에 좋은 명당이 따로 있었다.



딸기는 5월이 제철이었다. 봄도 무르익고 딸기도 무르익은 때,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동료들과 딸기 밭에 딸기를 먹으러 갔다.

원두막 같은 데서 긴 교자상 위에 한 바구니씩 올려진 딸기를 실컷 먹었다. 제일 꼬붕이었던 나는 일을 못했다. 왜 그런지 모르게 불량을 많이 냈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제일 나이 많은 고참 언니는 그때 29살이었는데 나를 대놓고 혼내지는 않고 아예 말을 안 시켰다.

관심 없음의 날것인 그 표정은 꿈에도 나를 따라왔다. 가끔 그 언니를 생각하다가 '큭' 나도 모르게 웃는다. 나보다 나이가 많았던 그 언니는 이제 늙었겠지, 엄청 늙었을 거야, 고소하다, 생각하며 웃는다.

그날 딸기가 달았는지 어땠는지 잘 모르겠다.

입에서는 늘 단내가 났다. 말할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딸기는 먹겠다고 쫄래쫄래 딸기밭에 따라갔었다. 즐거움을 찾으려 애쓰는 것은 본능이다.



결혼을 한 다음 해 봄, 시댁에서 딸기를 잔뜩 먹을 수 있었다. 시어머니는 밭 둔덕에 딸기를 심었다. 딸기 넝쿨은 쭉쭉 뻗어 나가서 밭으로 마당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5월이면 딸기를 한 소쿠리씩 먹을 수 있었다. 아이들은 아예 딸기 밭에서 딸기를 똑똑 따서 입으로 가져가기 바빴다. 특히 둘째는 딸기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딸기 밭으로 들어가면 도무지 나올 생각을 안 했다. 어느 때는, 기저귀가 흠씬 젖어서 갈아야 하는데도 도무 지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밭에 들어가면 밭을 망처 놓기 일쑤인데 시어머니는 그게 뭐 대수냐고 하셨다. 처음으로 마음 놓고 먹은 딸기였다. 아이들은 지금도 여전히 딸기를 좋아한다. 아쉽게도, 공단이 들어서는 바람에 시댁은 이사를 하게 되었고 딸기 밭은 사라졌다.



나는 딸기를 그다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먹을 때 한두 개 먹는 정도이다. 달콤하거나 부드러운 것들이 익숙하지 않아서 일수도 있고, 가격이 다른 과일에 비해 비싸서 아이들에게 먹이느라 한두 개만 먹다 보니 그것이 습관이 된 까닭 일수도 있겠다. 딸기를 씻으면서 가장 큰 왕딸기를, 서둘러 ‘왕’ 깨물어 먹는다. 역시, 몰래 먹는 딸기가 가장 맛있다. 창밖에는 갑자기 세찬 눈보라가 일고 있다. 눈은 세상 가득해진다.

지금은 딸기의 계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아버지의 제삿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