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여자

by 그방에 사는 여자

국민학교 사 학년 어느 날, 새 연필이 생겼다.

요시모토 나라



예쁘게 깎아서 뾰족하게 심을 세운 연필을

가지런히 필통에 담았다.

학교에 가는 길, 옥이는 제 가방에서 아직 깎지 않은 새 연필을 꺼내 들었다. 뒷꼭지에 분홍 지우개를 달고 있는 연필은 자태가 영롱했다. 옥이는 선심 쓰듯 내 연필과 제 연필을 바꾸자고 했다. 얘가 웬일이지? 의심하지 않았다. 제 연필은 친척이 서울서 사 온 것이라는 자랑을 했다.

서울서 사 왔으니 얼마나 좋은 것일까.

학교에 가자마자 공책을 펴 놓고 연필 깎는 칼을 펴서 사각사각 옥이가 바꿔준 연필을 깎았다.

연필심은 깎아도 계속 부러지고 부러졌다.

곯은 연필이었다. 몽당연필로도 쓰지 못하고 버리고 말았다.

백발에 나이가 많아 할아버지라 불리던 옥이의 아버지도, 윗입술이 갈라져 언청이 소리를 듣던 그 애의 남동생도 더 이상 딱하지가 않았다


고등학교 때 다니던 교회에서 알게 된 서글서글한 남자애가 옥이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착한 여자를 좋아한다더니 왜 착한 구석이 하나도 없는 그 애를 좋아한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됐다.

옥이는 예뻤다. 공기놀이에서 속임수를 쓰고

내 종이 인형 옷을 찢어 놓고도 모른 척하던 그 애는 예뻤으니 착한 거였다.


명절에 집에 내려갈 때마다 지나치던 아랫마을

길 옆에 있던 옥이의 집은 허물어 지다가 새로 지어졌다. 어느 날은 새로 지어진 집도 녹슬어 가다 사라졌다. 일찍 시집을 가서 외국에 나가 산다는 소식은 오래전 바람결에 들었다.


그 시절 내 옆에는 예쁜 것들이 오나가나 들끓었다. 구멍가게만 가도 예쁘다며 과자 한 봉지를 더 받아 오는 막냇동생은 귀엽기라도 하지, 과자 한 봉지 더 먹을 생각에 함께 가서도 가게방 안으로는 막내만 들여보냈다.

채시라 닮은 언니는 어디 가서 든 나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고등학교를 입학하던 날 담임 선생님은 네가 숙이 동생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꼬리를 실룩였다. 교복을 입지도 않는 나는 교복의 하얀 카라는 푸른 잉크를 살짝 떨어 뜨리면 더 푸르고 깊은 흰색을 나타 낸다는 비법을 전수받아 저녁마다 언니의 교복의 흰 카라를 비벼 빨아야 했다. 스텐 세숫대야에 담긴 차디찬 물에 어린 손이 빨갛게 얼었다. 친구들은 너네 언니 착하게 생겼다고 했다.



요시모토 나나의 소녀들은 뾰족하다.

무던히도 둥글던 나는 도무지 착해지지 못했다.

암만해도 안 되었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한 도리가 없다.

세상은 애당초 그렇게 생겨먹었다.

그렇게 굴러가는 세상에서 하루만큼씩 착해지고자 일일 일팩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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