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색으로 그렸으나 몸을 낮추지는 않았다.
검음에는 적당한 거리와 여유가 있어 한 겹 씩 자세히 살펴보아도 질리지가 않는다.
분홍의 화려한 모란이 한 입에 꽉 차는 맛이라면 먹색의 모란은 천천히 차오른다.
나는 아마도 모란을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보았다 하더라도 그 꽃이 모란이라는 것을 몰랐을 수도 있다.
두툼한 솜이불이나 베갯잇 귀퉁이에서 모란을 보거나 스쳐 지나가는 옛 그림들에서 보았다.
심 사정의 ‘묵모란도‘는 정해년 (1767년) 겨울, 작가의 나이 61세에 그려졌다.
추운 겨울, 작가는 봄을 상상하며 기다리는 마음을 그렸을 것이다.
단단한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가지는 높게 뻗어 올리고 꽃은 화사하게 피어나고 잎도 풍성하다.
한쪽에는 난도 치고, 새도 깃들었으니 더할 나위 없는 봄이다.
수묵이 어둑한 것을 그림에서 귀하게 여기는 바니
연지와 백분으로 뭇 꽃 그리기 무어 어려울까?
가슴속에 안개와 구름의 자취가 없으면
붓 아래 달고 속된 기운 어찌 없앨까?…….. 중략
심사정과 우정의 교류를 하였던 강세황이 심사정의 그림 ‘수묵 화조도’에 적은 ’ 시‘이다.
겨울에 모란을 그린 것은 마음속의 애린 기운을 봄을 불러들이며 살피고자 하였던 것이 아닐까.
며칠 전 ‘한강’ 작가의 산문 ‘빛과 실’을 읽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를 쓰고 난 이후의 날들을 적은 책이었다.
작가가 소설을 써내는 과정이 언뜻 그려지기도 하지만, 주로 작은 정원을 가꾸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18평짜리 작은 한옥을 사서, 4평짜리 작은 정원을 가꾸는 이야기를 읽었다.
정원이 작고 북향이라서 식물들이 햇볕을 충분히 받을 수 없으니 거울을 가져다 놓고 햇빛을 반사시켜 주라고 조경사가 이야기해 준다.
작가는 빛의 방향과 각도에 따라 조금씩 거울의 움직임을 달리 하며 빛을 반사시켜 화단의 식물들에게 비춰 준다.
나는 거울에 반사된 빛으로도 식물들이 잘 자랄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니까 원래 가지고 있지 않은 것도 궁여지책으로라도 익혀서, 돌보고 키워 낼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식물을 기를 때는 오직 그들이 잘 자라기만을 바란다. 나와 상호 작용을 해줄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농담도 위트도
감사도 따뜻한 말도 필요하지 않다. 그냥 잘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 ‘ 고 작가는 말한다.
한 꺼풀 덜어낸 그 마음으로 살아간다면 새삼 섭섭할 일이 없을 것이다.
작가가 정원에 심은 묘목의 이름들을 검색을 해보았다.
‘불두화’ 부처님 머리모양과 비슷하며 4월 초파일 즈음에 핀다고 한다,
‘옥잠화’는 어렸을 때 고향집에 가장 흔하게 피었던 꽃이었다. 예쁜 ‘꽃모’가 있으면 얻어와서 우물가에도 심고 뒤란에도 심었던
엄마는 그 묘목들의 이름을 다 알았을까? 맥문동도, 호스타도 장독대 옆 화단에서 많이 보았던 꽃이다.
이름을 검색하여 알게 되니, 무언가 높은 품격의 것들이 어린 시절에 함께 했던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품격이란 결국 마음을 누구러뜨리는 행위들의 총체, 가슴속에 안개와 구름의 자취를 품고,
달고 속된 기운을 흘러가게 두는 것이며 돌보고 가꾸며 키우는 것이다.
‘한강’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이 일종의 ‘들림‘의 시간이라고 말한다.
커다란 고통의 시간이었으나, 글 쓰기를 통하여 자신이 구해졌다고 이야기한다.
내가 애써 행하는 것들은 결국 나를 구하는 것들이었다.
‘묵모란도’ 앞에서 봄을 상상한다. 당연히 다가올 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