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림을 찾아서

by 그방에 사는 여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생각났다.

< 원문자> 무제. 1995. 한지에 먹.



대구 미술관에서 ‘원문자’ 작가의 작품 ‘무제’를 보았을 때였다.

하얀 바탕에 평면적이기도 하고, 입체적이기도 한 그림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림 속에서는 토끼가 시계를 보면서 “늦었어! 늦었어!” 하면서 뛰어가고. 하트 여왕이 병정들을

세워 놓고 카드놀이를 하다가 ‘목을 쳐라!’ 하고 외칠 것 같았다.

고양이가 신비로운 미소를 짓고 있다가 사라 지고, 오후 세시에는 시간이 정지하고 모자 장수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티 파티를 하는 이상한 나라가 떠올랐다.


지난 주말에는 언니의 환갑을 맞아 가족들이 함께 모여서 식사를 했다.

큰 조카의 딸이 벌써 네 살이 되어 새침데기 같은 모습이 어찌나 예쁘고 귀여운지 눈을 뗄 수 없었다.

시댁의 조카들이 결혼을 하였어도 모두 남자아이들만 낳은 터라 네 살 백이의 여자 아이를 가까이서 볼 일이 그동안에는 없었다.

조카가 딸을 키우는 모습은 그야말로 딸 바보 아빠의 전형이라 보기가 좋았다.

얼마 전에도 딸과 둘이서만 놀이 공원에 다녀왔다고 한다.


“얘들도 저 나이 때 되게 이뻤는데! “ 내 딸들을 보며 언니가 말했다.

여전히 손이 많이 가고, 아직은 품에 있어서 잊고 지내다가 조카 손녀의 모습을 보니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아이를 키우던 그 시간들이 진짜 있었던 것일까? 대체 그 시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마법처럼 흘러간 그 시간들은 때로는 어둠 속의 긴 터널이었다가, 천국이었다.

낯섦 속에서 한참 서성인다. 잘 걸어왔나? 이 길이 맞는 것일까? 잘 못된 방향이었으면 어쩌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기억 속에 잠시 머물러 보았다. 다른 그 무엇보다도 혼자가 아니어서 충만했었다.

마음껏 사랑을 주고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을 받아 어른인 나로 성장 할 수 있었다.


한지와 먹을 사용한 한문자의 추상화 ‘무제‘는 상상하게 한다. 인간은 상상하는 존재이다.

다른 이의 마음을 상상하고, 미래를 상상한다.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위 속에 첨차 채워지는 것인지, 비워내는 것인지,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상상한다.

키가 작아졌다, 커졌다를 반복하는 엘리스처럼 인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다.

세상은 끝없이 넓어 광활하며, 작고 섬세하고 단순하다.


‘어느 길로 가야 할까?‘라는 앨리스의 물음에 ‘어디로 가고 싶은지에 달렸지’라고 체셔 고양이는 답한다.

스스로의 울림에 따라 한 걸음 내딛을 때 삶은 살아진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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