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집 제삿날 밤, 업혔던 아버지의 등은 따뜻했다.
네 살이었다. 남동생이 태어난 후, 그때 나에게 얼마나 깊은 허전함이 있었는지 지금도
생생 한 느낌이 기억난다. 나에게는 갈망하는 것이 있었다. 그날은 달이 밝았다.
엄마와 다른 형제들은 큰집에서 자는 것이었는지 아버지와 둘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제삿날이면 으레 그렇듯이 술이 불콰하게 취한 아버지는 그날따라 유난히 기분이 좋았다.
제사는 자정 무렵에 지냈으니 음복을 하고 나섰을 때는 대략 새벽 한 시 무렵이었을 것이다.
보름날이었는지 달이 높고 밝았다.
큰 집이 있는 큰 동네에서 우리 집이 있는 작은 동네 일자촌으로 가려면 가파른 또랑을 건너고 좁고 긴 논둑길을 걸어가야 했다.
원래 떼도 없고 알아서 잘 걸어가던 아이였던 나는 그날따라 아버지가 좀 허술해 보였는지 무섭다며 칭얼거렸다.
그리 살가운 편이 아니었던 아버지는 술기운 탓인지 등을 내어 보이며 업히라고 했다. 넙죽 올라탄 아버지의 등은 따뜻하고 넓었다.
아버지의 등에서는 영락없이 담배 냄새가 풍겼다. 하루 한 갑씩 답배를 피우던 아버지를 위해 엄마는 장에 가면
늘 ‘청자‘나 ’ 솔’을 두 보루씩 사다가 광에다 숨겨 여축해 두었다.
담배가 뭐가 좋은 것이라고 나 역시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는 집에 올 때마다 꼭 두 보루씩 담배를 사다 드렸다.
술이 취해 비틀거리던 아버지는 나를 업은 채 또랑으로 빠졌다. 나는 겁이 나지 않고 그저 재미있었다.
아버지와 나는 옷이 다 젖은 채로 둑으로 올라왔고 다시 등에 업혀서 집으로 돌아왔다.
업혀 있어서였는지, 그리 높은 곳이 아니어서였는지 나는 무섭지가 않았다.
아버지에게 업혔던 기억은 그 뒤로는 없다.
김 선두의 ‘밤길’은 칠흑 같은 밤이 아니다. 푸르고, 별도 빼곡하고 둥그런 구멍 같은 달이 하얗게 떠있는 어슴프레 어둡고, 희미하게 밝은
밤이다. 이런 밤에는 어느 집에선가 ‘컹컹‘ 개가 짖기 시작하고, 온 동네 개들이 차례로 짖기 시작할 테고 앞산에선 부엉이가 울 것이다.
밤의 고요는 아직 더 기다려야 한다. 장지에 그어진 먹선은 되돌릴 수도 지울 수도 없는 매 순간 선택하는 단호한 살아 있음이다.
이리저리 왔다 갔다 헤매는 사이 삶의 언덕에는 갖가지 이야기가 새겨진다. 왔다 갔다 휘몰아쳐 꿈틀거리느라 길에는 선들이
생겨 났고 선은 선명해졌다. 이 길인지 저 길인지 헷갈릴 때, 웅덩이에 빠져 헛바퀴를 돌릴 때, 그냥 멈춰 있는 순간에도
선을 더 선명하고 진하게 그리고 있는 중이었다. 실타래처럼 뒤엉킨 관계들을 죄다 풀어낼 수는 없으니 삶에는 이야기가 스며든다.
태양 빛을 반사하는 달이 밝은 날이면 별빛은 희미하고, 어둠이 깊으면 별빛은 더욱 총총하다.
까만 어둠의 한 복판에서 암순응이 되면 많은 별들을 볼 수가 있다.
칠흑같은 어둠 속을 걷던 날이면 나는 손을 흔들어 보고 다리를 움직여 보았다.
나는 사라지지 않는 것들을 감각하며 어둠을 느껴 보고는 하였다. 내게 무엇이 있나 헤아려 보았다.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가득 끌어안은 존재가 되었다.
어둠이 똬리를 틀었어도 나는 기다린다.
내가 갈망하는 것들이 꿈틀거리는 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