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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방에 사는 여자
Nov 17. 2023
"엄마, 언니 돈 너무 쉽게 쓰는 거 아냐? 무슨 저런 잡동 사니를 계속 사대? 정말 쓸데없는 것만 사잖아!"큰 딸이 학원에 가서 집에 없는 사이 둘째가 뒷담을 시작했다.
"아니, 내 친구 언니는 대학 가서, 지금 알바도 하고 엄청 성실하게 사는데 암만 봐도 언니는 철이 없어! 엄마 자식을 어떻게 키우는 거야 좀 엄하게 키워야지!" "그래 네 말이 맞네!, 언니는 방안에 무슨 살림을 차렸다니? 온갖 것을 다 사대고, 정리는 또 언제 끝내고 공부를 하려고 하는지, 몇 날 며칠 정리 중이고 책상 봐 완전 에베레스트 산이야! 어디 저런대서 공부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몰라" 나도 둘째에게 맞장구치며 함께 뒷담을 시작한다.
"진짜, 언니는 철이 없어, 마라탕을 왜 이렇게 자주 시켜 먹는지 원" 둘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는 속으로 큭큭 웃었다. 너도 만만치 않거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큰딸은 일주일에 두세 번은 배달음식을 먹고, 둘째는 친구랑 놀거나, 학원 가기 전에 밥을 사 먹는 경우가 많다.
"엄마는 자식을 너무 오냐오냐 키우는 것 같아"
"아무래도 그렇지? 이제 엄하게 키워야겠다!
우선 너부터 엄하게 키워야겠네! 설거지 좀 하고 네 양말 좀 빨아!""에이, 갑자기 이건 아니지 엄마" 둘째는 냅다 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재수를 시작하며 학원에 가는 3일 빼고는, 큰딸은 거의 방 안에서 생활한다. 그래서인지 한동안은 이것저것 소품들을 사기 시작했다.
자기 딴에는 꼭 필요해서 몇 날 몆칠 심사 숙고해서 고른 것이다. 꼼꼼한 큰딸은 줄자로 물건의 길이와 너비를 측정하고, 색깔을 정하고, 후기도 꼼꼼하게 읽어보고 어디에 놓아야 할지 궁리도 오랫동안 한다. 꼭 필요해서 주문했지만 좁은 방안에 놓아둘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거실로 밀려 나는 경우가 있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소파처럼 크고 푹신한 삼각형의 등 쿠션이다. 이 쿠션은 내가 책을 읽거나 폰을 보면서 거실에서 쉴 때, 유용하게 사용한다. 다양한 수납 용품과 소품들, 무드등 이라던가, 작은 가습기, 연결 텝 등을 보면 이렇게 편리한 것들이 있구나 감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없어도 괜찮을 소품들은
자신을 쓸모를 다하지 못하고, 침대 위나 벽걸이만 차지하고 있기도 한다.
큰딸이 소품에 진심이라면 둘째는 패션과 친구들과의 만남에 돈을 쓴다. "아니, 얘는 고1인데 캐비(캐리비안 베이)를 몇 번이나 가는 거냐고! 저번에는 놀이 공원도 가고, 찜질방 가고, 맨날 카페 가고 고깃집 가고,
고1이 공부할 생각을 해야지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써? 나는 고등학교 때 저렇게 돈 많이 안 썼어! 애가 저렇게 철이 없어!"
"그러게 말이다, 친구들하고 밥 먹는다고 맨날 사 먹고, 반찬투정하고, 요즘 집에서 밥 먹은 날이 거의 없어! 대학생도 아니고 고등학생이 말이다!""엄마, 딸 너무 오냐오냐 키우는 거 아냐?""그렇지? 엄마가 자식을 너무 오냐오냐 키우네"
"이제부터 군기 딱 잡고 엄하게 키워!"
"그래, 알았어! 우리 큰딸부터 엄하고 키우자! 이리 와봐!"
"에이, 나는 다 컸지 스무 살인데"
"그럼 엄마는 동생만 키우면 되는 거야?"
"그렇지, 나 공부해야 돼"
큰딸은 자기 방으로 쪼르르 들어간다,
둘째 딸은 친구들과 밥을 먹고, 코인 노래방 가고, 인생 네 컷에서 사진을 찍고 카페를 가는 것들에 돈을 쓰는 편이다. 가끔은 보드게임 카페를 가거나 영화를 본다.
그 나이대 아이들이 많이 이용하는 쇼핑몰 두 군데를 이용하며 옷을 구매한다. 유행에 따라 이뻐 보이는 옷을 사면 너무 짧거나, 작은데도 입을 것 같아서 옷장에 넣어 놓으나 한 번도 못 입는 경우도 있다.
둘째가 자기 취향대로 옷을 사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이다. 무턱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생일 선물을 대신하거나 일정한 금액을 정하고, 구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때는 와이드핏이 유행해서 옷을 사면 다섯 벌 중에 세벌은 너무 크거나, 길거나 했다. 결국에는, 아이가 편하게 자주 입는 옷은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옷이었다. 그때 샀던 후드티들은 고등학생이 된 지금에서야 잘 맞는 경우도 있다. 스스로 선택하고 작은 실패를 거듭하면서, 자신의 체형에 맞는 스타일과 적정한 가격과 실용성의 접점을 찾아가면서
친구들과 비슷하면서도 약간의 독특함이 있는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큰딸의 소비에서는 효율적인 공간의 쓰임이 남고, 둘째 딸의 소비에서는 관계와 추억이 남는다. 이러한 것들은 언제든 각자의 사정과 상황에 의해 바뀌기도 하는 것이며, 삶을 풍요롭게 해 주며 하루를 견디며, 앞으로 나아가게 해주는 것이리라. 간혹 두 자매는 쓸데없는 소비를 하는 언니와 동생에게 도움을 받기도 한다. 둘째는 필요한 물건이 있을 때 언니에게 빌리고 큰딸은 입을 옷이 마땅하지 않을 때 동생의 후드집업을 빌린다.
자신의 공간을 소중하게 아끼는 마음과 대등한 관계의 끈을 이어가려는 자세는, 나를 자각하게 한다. 그 모든 것에는 애씀과 품이 많이 든다. 지쳐서 놓아 버린 공간에 대한 정성과 관계에 대한 애정의 심지를 돋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