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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Feb 20. 2024

밤의, 거리에서

밤의, 거리는 적막하다. 배우들이 커튼콜을 하고 퇴장을 하고, 관객들은 모두 빠져나간 연극이 끝난 후의, 조명이 꺼진 텅 빈 무대처럼,가벼운 어둠이 내려있다. 차가운 겨울 하늘의 달은 휘영청 밝아서 맑은 밤하늘을 비추어 마치 바다 같다.


밤에 집 밖에 나서는 일이 좀처럼 없던 내가 요새는 거의 매일 새벽 두 시 무렵 집을 나선다.

스터디 카페에서 공부하고 돌아오는 둘째를 데리러 가는 것이다. 스카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로는 멀지는 않지만, 고1딸이 혼자 오는 것이 걱정되어 매일 데리러 나간다.


스카로  가는 길 옆에는, 24시간 운영되는 제법 큰 마트가 있어서, 밤에도 덜 을씨년스럽다. 대로변에서 살짝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면 우리 동네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카페와 식당과 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거리가 있다. 스카는 카페 거리를 지나서 패스트푸드점과 엽기 떡볶이 가게가 있는 건물 2층에 위치하고 있다.


불 꺼진 카페 앞을 지나가며 카페 안을 바라본다. 낮동안의  수다와 북적임을 뒤로하고

어둠에 기대 휴식을 취하는 테이블과 의자들, 나 또한 오늘 저 의자에 앉아서 동네 지인들과  수다를 떨며, 삶과 시간이 부여한 나의 역할을 연기 하였다.


1층에 있는 패스트푸드점은 이미 문을 닫았을 시간이건만 오늘은 마감이 늦어졌는지 30대 중반쯤으로 보이는 점장인듯한, 청바지차림의 남자가 마대로 바닥을 닦고 있었다. 엽떡 냄새가 배어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서 내려 아이에게 '도착'이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기다린다.


스카 안을 비추는 화면을 보니, 현재 스카 안에 남아 있는 인원이 1명이다. 대부분 늦도록 공부하는 사람이 한두 명 있곤 하였는데 오늘은  둘째 혼자만 남아 있는 듯하여 걱정스러운 마음이 인다. 엄마를 발견하고 피곤한 미소를 방긋 날리며 아이가 나오고, 나는 아이의 가방에서 문제집 몆 권을 빼내어 나의 에코백에 넣는다.


상가 문을 열고 나서자 차가운 바람이 와락 달려든다. 아이와 나는 모자를 덮어쓰고, 장갑 낀 손으로 아이의 손을 잡아 내 주머니에 넣고 괜스레 어깨를 부딪치기도 하며, 까르르 웃으며 걷는다. 어차피 세월은 쏜살 같이 흐르는 법,  그저 오늘을 즐기면 되는 것이라고, 꼭 잡은 손끝으로 속삭인다.


"엄마! 당 떨어진다! 어쩔 수 없어!"

둘째는 대로변 옆에 있는 24시간 마트로 들어가서  초콜릿을  고르고, 나는 떨이로 파는 야채가 없나 기웃거린다. 24시간 잠들지 못하는 마트에는 장 보러 나온 부부도 보이고, 냉동 만두와 소주를 사가는 중년의 남자도 보이고, 고단한 얼굴의 계산원도 보인다.


횡단보도의 깜빡이는 초록불에 아이가 뛰면 나도 덩달아 '다다다' 장난스레 열여덟처럼 뛰어 건넌다."저봐! 달 떴네! 하늘이 바다 같다 그렇지?""그러네 엄마! 아, 피곤해!"

"피곤 하지? 집에 가서 폰 조금만 보고 빨리 자"

"알았어! 내가 알어서 해! 잔소리 좀 하지 마"

"나도, 알았어!"


쌀알같이 밀려가버린 기억들은 어디에서 다복하게 모여있을까? 아이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가는 이 짧은 순간, 함께 웃고, 장난치며 조잘대는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이런 날들이 행복이다."엄마! 하! 해봐  입김 나지?"


커가는 아이의 어깨에 짊어진 가닥가닥의 짐들을 대신 져줄 수는 없지만, 별에도 달에도, 감탄을 하고 자기 자신에게도 감탄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함께 걸어가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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