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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Oct 22. 2023

가을 날의 드라이브



나는, 창밖을 보며 무심히 말했다.

"와, 황금들판이네 벼가 다 익어가네 좀 있으면 추수하겠어"

"이야, 아파트 들어선 거 봐라, 야 벌써 다지었네, 여기 분양할 때 피 주고 샀어야 했나? 내가 전에 말했지? 이제 이쪽이 뜰 거라고, 우리 동기 여기 입주했잖아 몇 억 올라서 돈 벌었어!" 남편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혜안에 대한 감탄과, 부러움을 섞여 있었다.

"이젠 시골도 시골이 아니네 여기저기 공장 들어서고" 자꾸만 변하고 있는 시골이 아쉬워 지나가는 풍경에 눈길을 주며 나는 말했다.

"여기 창고자리 하나 사야 하나? 진짜 다 갈아엎어 놓으니까 넓긴 넓다. 공사 시작 한다고 하고 몇 년을 미루더니 이제야 하긴 하나 보네"

남편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한다.

"배 과수원도 그렇고, 여기 살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누군가는 일생을 살아왔고, 누군가에게는 고향이었을 마을은 모두  사라지고 있었다. 남편은 왼쪽을 나는 오른쪽을 본다. 그래도 가을이라고 하늘이 높다.

"이제 이쪽 땅값이 많이 올랐겠네, 그때 사놓을걸" 남편이 낮게 조린다.




남편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운전이다

그다음 싫어하는 것은 멀리 가는 것, 부득이하게 어디론가 가야 할 때는 시댁에 행사가 있을 때이다.

"애는 성적 좀 나와?"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는 법, 슬슬  시동을 건다. 시작이다. 예견된 공격이지만 이곳은 도로를 달리는 차 안. 그 말인즉슨,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매번 이런 식이다.

 머릿속을 부지런히 회전시켜 쓸만한 대답을 골라낸다. 나의 취향에 맞는 애매한 대답.

 "뭐 성적이야 나오겠지, 한 만큼" 적당히 방어를 해본다. "나오겠지가 뭐야! 애랑 얘기도 안 해본 거야? 집에서 뭐 하는 거야!"에라 모르겠다! 나는 마음속으로 음소거 버튼을 누른다. 남편은 입만 벙긋 거린다.



또 시작이다. 그나마 시댁이 한 시간 거리라 다행이다. 이 피할 수 없는 공격에서 운전대를 잡은 남편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무사히 시댁에 도착해야 한다는 생각과, 이제 다 큰 아아들이 차를 함께 타지 않았다는 사실에 큰 안도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아이들의 안전도 걱정되어 남편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공격을 무조건 듣고 참고만 있었다. 남편이 극도로 화가 치솟아서 핸들을 확 꺾어버리면 어쩌나 걱정될 지경이었다.

말대꾸라도 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그러면 아이들이 불안해하니까. 생명을 담보로 한 위협이었다. 지금은 그냥 남편과 언성을 높이는 게 싫다. 지겹고 지친다. 조용히 살고 싶다.

그래서 지극히 사적인 거리 두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수많은 잔소리들은 한 귀로 흘러들어와 한귀로 흘러 나간다. 귀가 두 개라 다행이다.

시댁이 부산쯤 되었다면 나는 아마도 온전하게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엄마가 리더십이 있어야지!"

자식을 리더십으로 키우냐?

"애들이 다 왜 저 모양이야!"

애들이 가 어때서!

"다 뭐가 되려고"

뭐라도 되겠지

"누굴 달아서"

당신과 나를  닮았지

"지 에미 닮아서 느려 터져 갖고, 으구 속 터져"

그나마 날 닮아 다행이지!

"너는 사람이 말을 하는데 왜 대답이 없어! 어?" "아  창밖에 하늘 보느라고"

"너는 한 가해서 좋겠다!"

나이가 오십이 넘었는데 아직도 호칭이 너냐?

내가 왜 한가해? 하루 종일 집에서 잠만 자는 재수생 덕분에 득도해서 사리가 계란 한 판 나올 판이구먼!

"그려! 나 남편 잘 만나서 놀고먹으며 한가하게 살고 있어 ""그래 엄마가 저리 생각이 없으니"

생각 없으니 당신과 살지.

"오늘 차들 많네! 내가 서둘러서 빨리 나온 덕분에 늦지 않게 가는 줄 알아"

 새벽부터 일어나서 아이들 먹을, 아침 밥 해놓고 오느라 허겁지겁 나온 건 나요, 남편아!

단풍놀이 가는 것도 아니고, 시댁 가는데 뭘 그리 좋다고 달려가겠냐? 짜샤!

"이봐? 왜 말이 없어? 사람이 말을 하면 대꾸가 있어야지!"상상 속의 나는 남편의 말에 따박 따박 대꾸를 하지만, 현실의 나는 침묵의 보살도 아니고, 답답한 이 화상이다.



새가 날아가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새는 구름 속을 유영하는 것 같다.

저기 어디 가을 하늘 어디쯤, 키드키득 거리는 웃음소리가 따라온다. 한여름의 놀이터에서, 저녁을 먹고 난 후,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만들던

두꺼비집에서, 모래를 잔뜩 묻히고 들어온 운동화에서, 거실 한가득 뿌리고 놀던 밀가루에서, 흘러나온  아이들 웃음이 나를 따라온다. 교문 앞에서 엄마를 향해 달려오던 그 웃음, 와락 안기는 보드라운 살결, 나는 두 손 모아 그것들을 받아서 행복 창고에 비축해 놓는다.

성질 급한 남편이 무작정 달려오느라 미쳐 차에 지 못했던 그 순간들을.



남편과 나는 가뭄에 콩 나듯, 어쩌다 한번  같은 차를 타고 도로 위를 달린다. 남편은 왼쪽을, 나는 오른쪽을 본다.

가끔은 정면을 보거나, 앞 뒤, 양 옆을 본다.

사이드 미러, 백미러, 자기만의 작은 거울로 세상을 보느라, 크고 소중한 보따리는 애초에 잊었는지 모른다. 소중한 것들은 항상 보이는 것보다 가까운데 있었음을.  아이들이 더 자라서 자신만의  차를 타고 떠난 어느 좋은 가을날, 나도 멋진 드라이브를 떠날 것이다.

나의 가을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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