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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Sep 24. 2023

국은 또 왜 재탕이야?

"국은 또 왜 재탕이야?"

아침에 딸이 한마디 한다

주말 아침, 늦게 일어난 터에 밥 달란 아이말에 국을 끓일 시간이 없어 엊그제 먹고 남은 국을 데우고 있는데 큰 딸이 한마디 한다. 무슨 뜻인 줄 알면서 나는 짐짓 모른 채

"데우는 거야" 했다.

"엄마! 말이 왜  그래? 누가 왜 데우냐고 했어?

왜 재탕하냐고 했지? 엄마는 꼭 말을 이상하게 하더라? 일부러 그러는 거야?"

국이 재탕인 이유는 간단하다. 한번 먹고 남은 국을 버리 자니 아깝고  나는 또 그전에 끓여 놓고 남은 청국장찌개를 해치우느라 아욱국에는 손을 못 댔으며, 오늘 새로운 국을 끓여 놓고  나는 남은 국을 먹으려다가 계획이 어긋난 것이라고, 왜 말을 못 하니 말을 못 해! 원래 이 국은 내국이다 왜 말을 못 해!

"남은 거 버리기 아까워서 "나는 말끝을 흐리며 최대한 부드럽게 말했다. 원인은 늦게 일어난

나에게 있으니까. 꼭 아이가 나의 게으름을 힐난할 것 같아서, 나에게는 말을 어중간하게 하는 습관이 있다. 이렇게 말하면 저런 반응이 올 것이란 걸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해야 할 말을 못 하고 에둘러서 말을 한다. 남은 거 아까워서 데웠어 그냥 먹어, 이렇게 정석으로 말을 하면

"날 먹던 국 먹어? 아! 안 먹어! 반찬도 없고!"

이런 실랑이가 이어질게 뻔하기 때문에 나는 대충 두리뭉실하게 말하곤 한다."괜찮아! 그럴 수 있지"하고 넉넉하게 받아들여지는 안전한 경험이 드물어서 그렇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눈치를 보는 것이다. 큰딸의 타박은 한참을 이어졌다."엄마가 어디를 가는데 어떤 사람이 왜 걸어가냐고 물어보잖아? 그럼 엄마는 나 지금 걷는 거 아니고 뛰는데 무슨 말이냐고 하는 것이랑 같다는 말이야! 무슨 말인 줄 알겠어? 워딩이 이상 하잖아! 말이 앞 뒤가 안 맞는다고"

그사이 나는 양념장을 만들어서 참나물을 무치고 호박을 동그랗게 썰어서 밀가루와 함께  일회용 비닐봉지에 넣고 흔들어서 풀어놓은 계란 물을 입혀서 달구어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호박전을 지졌다.

"엄마 내 말이 틀려? 왜 말이 없어?"

"그래 엄마가 말을 명확하게 안 해서 싫다는 거잖아!""맞아! 그렇다고 저번부터 말을 해도 맨날 그러잖아""알았어  미안하다 이제는 명확하게 말하는 습관을 들일께"

나는 비난과 거절의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아침부터 먹던 국 준다고 투덜거리는 딸의 말을 듣기 싫어서 생략하고 건너뛰는 것이다. 거기에 보태서 엄마가 밥 차려주는데 너는 웬 타박이 그렇게 많냐고 한마디 하고 싶은데 꾹 참는 것이다.



아이들이  크면서 집 밥을 안 먹고 밖에서 사 먹거나 시켜 먹거나, 포장해 먹는 횟수가 늘어났다.

어릴 때는 엄마밥이 최고라더니 이제는 2프로 부족하다고 한다. 집밥 열심히 해 먹이는 자부심으로 부엌을 지켰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해 놓으면 직무 유기가 되니, 매일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든다. 그러나 마라탕과의 대결에서 나의 된장국은 처참히 패하곤 한다. 그래서 아욱 된장국이 남았던 것이다. 요즘은 간단한 클릭으로 배달이 안 되는 것 없이 다되니, 식비가 많이 든다. 또 학원 가기 전에 밖에서 저녁을 사 먹어야 한다. 결국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따라가면 돈이 있는 것이다.

엄마라는 자리는 무엇으로도 대체될 수 없을 텐데 요즘은 돈 앞에 자꾸 초라해진다.

그리고 전업주부인 나의 존재감은 작아지고 작아지다가 마지막 보루인 부엌에서 마저 공깃돌 만해졌다.



큰딸은 학원에 가고  둘째 딸이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했다. 마침 집에  유기농 매장에 세 사다 놓은 칼국수면도 있고 야채와 해물도 있고

육수 재료도 있었기에 집에서 끓여 준다고  했더니 엄마 칼국수 맛이 없단다. 나가서 먹고 싶다고 하기에 아빠랑 갔다 오라고 했더니  아빠랑은 가기 싫단다. 나는 집안 일도  잔뜩이고 바쁘니 아빠랑 가라고 했더니 싫다고 하는 둘째. 주방으로 와서 설거지를 하며

혹시 몰라 멸치 다시마 북어포를 넣고 육수를 올렸다. 둘째는 할 수 없이 엄마가 끓여  주는 칼국수를 먹겠다고 했다. 내 나름은 추억에 젖어 옛날 엄마가 끓여주던 칼국수를 생각하며  해물도 듬뿍 호박 감자 야채도 듬뿍 넣어서 끓였건만  결국에는 면이 풀어지고 불어서 실패했다.


둘째 말대로 밖에 나가서 맛있는 칼국수 먹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다정하게 칼국수를 먹었더라면 서로 기분도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이는 가벼운 마음으로 공부하러 독서실로 갔을 것이다. 건강 생각 한다고 집에서 해 먹이려다가 수고는 수고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들었다. 결국에는 치킨을 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칼국수는 수고와 재료가 아까와서 나와 남편이 다 먹었다.

다행히 남편의 가잠 큰 장점이 음식 타박 안 하기이다.


남편은 오래되어 조도가 낮아진 큰딸방의 전등을 갈며 잔소리 잔소리, 몇십 년 만에 청소기 한번 돌리면서 또 잔소리 비난, 말없이 집안일을 한다면 고마움을 받을 텐데 말로써 다 까먹는다.

태생이 그렇다느니, 더럽다느니, 나는 한방, 두방, 세방, 여기저기서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분명 때린 사람은 없는데 맞은 기분이 들어 서 밖에 나와서 걷는다.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생활비가 부담스러워 일을 찾아볼까 되새김질해 보고, 이제야 조금씩 찾기 시작하는 내 시간도 놓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배신하는 존재라 했다.

인간이 이기적인 존재 이기 때문이다.

나는 배신을 한 적이 있나? 생각해 보면 나는 별로 중요한 존재였던 적이 없으니  배신 역시 해본 적이 없다. 니체는 비관론자들이 인생의 사소한 즐거움에 빠진다고 했는데 비관론자인 쇼펜하우어가 식도락을 즐기며 90세 넘게 장수했다는 사실이  전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됐었는데 이제는 이해가 된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은 배신하는 존재이다. 자식마저도 그렇다. 그러니 지나치게 친절할 필요가 없으며 자기 자신만이 중요하다고 했다. 자기 자신에게 줄 수 있는 커다란 즐거움에는 맛있는 음식이었던 것이다. 모순이며 위선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차 이치에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는 틀린 것이 지금은 맞는 것이다.


내가 배신해야 할 것은 지난날의 나의 애매한 착함이다. 확실하게 말을 하고 그에 따른 대가도 당당하게 치르는 것이다. 피해자 코스프레 하며 애매한 착함 뒤에 숨는 습관을 바꿔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야 한다. 불행이라는 목도리를 두르고 피해자라는 외투를 입으면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내가 남기기 그토록 싫었던 죄책감이라는 유산을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나의. 곳간이 크고 풍요로우면

상대가 던지는 비난이 깊은 상처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이제는 밥 하는데 들이는 시간이 줄어드는 만큼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에  시간과 공을 더 들여야겠다. 그리하여, 소중한 관계들과 시간들, 그 의미들도 담백하게 떠나보내는 연습을 해나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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