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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Sep 21. 2023

나도 내가 소중해서

바쁜 아침 시간에 식탁에 앉아서 밥 먹을 시간이 없는 둘째, 주먹밥을 만들고 사과를 깎아서 아이방 책상에 놓고 아이를 깨웠다. 5분만 5분 만을 몇 번 반복하던 아이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15 분 만에 준비를 마치고 학교로 갔다.

피곤에 절은 모습으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안아 달라고 해서 잘 갔다 오라고 꼭 안아 주었다. 아이가 남간 사과 몇 알, 주먹밥 몇 알을

입안에 넣고 설거지를 하는데, 새벽에 건강 검진을 하러 갔던 남편이 돌아왔다. 건강검진 후 제공 하는 식권으로 포장해 온 죽을 먹던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내 등뒤에  대고 말을 했다.


"오늘 , 한바탕 항의를 하고 왔어!"

건강검진을 하는 중에 직원이 자신의 몸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조심성 없이 짐짝처럼 대하는 것이 화가 나서 한마디 하고 의사랑 상담까지 하고 왔다고 했다. 남편은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하려니 피곤 한건 알겠는데, 내 몸은 소중 하니 함부로 대하지 말아 달라!"라고 했다고 한다. 남편의 항의는 일견  정중하고 정당한 것처럼 보인다. 아니, 정당 하다. 가끔 남편의 정의감이 발현될 때가 있다. 상대가 여자이거나 나이 든 남자, 십 대 청소년 남자일 경우에 더 그렇다. 그 직원이 여자냐고 물으니 그렇단다. 아마도 그래서 더 수치심을 느꼈을 터였다.


결혼 후 남편은 나에게 욕을 하기 시작했다.

생전 들어 본 적도 없는 욕을 처음 듣는데, 육고기 같은 그 비릿한 음절이 낯설었다. 삼십이 넘어서 한 결혼이었으니 결혼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함께 발맞추어 걸어가는 것이 결혼인 줄 알았다. 내 이럴 줄 알았어

이렇게 허방다리 짚을 줄 알았다고, 내가 나에게 속삭였다.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고, 내가 식탁 밑에서 아이들 밥 먹고 난 자리를 치우다 남편의 욕에 서러워서  쭈그려 울면 "니 에미가 죽었니, 니 아비가 죽었니!" 했다. 그 살벌함과 막막함 이란.  니 에미, 니 아비가 다 죽은 지금은 그 말은 하지 않는다. 내가 왜 그런 욕을 먹고살았을까? 혹시나 내 잘못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남편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다. 점차  나는 내가 그런 욕을  먹을 만한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왜 동등한 입장으로 살아갈  없는 것일까?


아이들 키우느라 지쳐서 어쩌다 한번 아침밥을 쳤을 때, 남편은 밥 한 끼도 제대로 못해주냐며 욕을 했다. 아이들이 밥 늦게까지 안 자거나 아프거나 해서 새벽 7시에 출근하는 남편의 아침을 못해줬을 때 남편은 욕을 한다. "괜찮아 그럴 수 있지" 그런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다. 욕을 하도 들어서 나중에는 일상 언어처럼 착각되기도 한다.


그렇게 흠신 욕을 해댄 남편은 저녁이면 귀에

이어 폰을 꼽고 발라드 음악을 들으며 눈가가 촉촉해서 퇴근했고, 인간극장 같은 감동적인 사연에 눈물을 울컥하곤 했는데, 욕하고 던지는 모습 보다 그런 모습이 더 싫었다. 당신이 그렇게 착한 사람이면, 나는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이냐고 했다. 명절에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40명분의 설거지를 내내 하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힘들었다고 하면 고생했다는 말대신'어떤 년은 안 하냐!"라고 했다. 세상에 그렇게 다양한 종류의 "년"들이 있는 줄 결혼 후 알았다.

아기를 안고 차 뒷자리에 타면 백미러 안보인 다고 대가리  치우라고 했다. 국어 시간에 대가리는 동물이나 생선의 머리를 지칭한다고 배웠다. 누군가는 나를 한심하게 바라봤고, 저러니 저러고 산다는 비아냥도 들었다. 남편은 어디서건 나에게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다.


나는, 갈 곳이 없었다.

든든한 친정도, 쫓아와서 때러 줄 오빠도 없었다. 올망졸망 어린 두 딸만 눈을  끔뻑거리며 쳐다볼 뿐이었다. 그리고 나까지 엄마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어서 직수구리고 참고 외로움을 견뎠다.

작년 코로나를 막바지에 걸려서 후유증으로 한참을 고생할 때, 거동조차 어려운 나에게 남편은 죽 한 그릇 사다 주지 않고 문 한번 열어보지 않고" 몸뚱이 관리를 어떻게 했길래 그 모양 이냐!"라고 몇 날이고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너네 엄마는 몸이 약해서 일찍 죽을 것이니 너희들은 아빠와 셋이서 살아야 하니, 너네들이 잘해야 한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함께 살아온 세월이 무색해졌다.

아이들이 반찬을 사 오고 , 죽집에 세 죽을 포장 해왔다  

큰딸아이 고2 때 힘들어해서 자퇴를 하니 전학을 하니 마니 하고 있을 때, 몇 날몆칠 잠을 못 자서 와인 한잔 마시고 자려다가 그대로 쓰러져서 옆에 있던 선풍기가 박살이 났을 때, 남편은 잔소리만 하면서 선풍기만 한 시간 동안 만지작거렸다. 다행히도 나는 선풍기 덕분에 다치지 않고 금방 깨어났는데 나도 역시 남편한테 선풍기 박살 냈다고

구박받겠구나 걱정을 먼저 했다.

 

우리는 어쩌면, 자신이 하는 일을 잘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남편에게 당신도 당신이 소중하듯 나도 내가 소중하니 함부로 대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면 남편은 아마 다 지나간 일 갖고 따지지 말라고 할 것이다.


내 인생의 모든 잘못이 남편 때문 만은 아니다.

나는 내 인생의 공동 정범이다.

불행은 때로는 안정감과 안일함의 자기 파괴적 모순을 띄기도 한다. 남편은 이제 덜 한다.

그러나  그 덜함과 더함 사이에는 별반 차이가 없다. 자신의 필요에 의한, 자기변명과 위안을 위한 덜함이기 때문이다. 존중과 애틋함이 없는.

니체는 정신의 가장 삭막한 사막에서 사자가 고개를 든다고 했다. 낙타의 시간을 살아내야만 사자의 시간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갈곳 없이 황량했던  낙타의 시간을  잘 견뎌왔다. 지금은 사자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들은 너답지 않다고 나를 비난하였으나 나는 비난받는 내가 좋다.

나에게는 나를 존중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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