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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Sep 15. 2023

장 보따리로 근력 운동 하는 여자

운동 겸 산책 겸 공원을 돌았다.

한 시간쯤 돌고, 늘 하던 코스대로 마트에 들렀다. 저녁 10시가 넘은 시간이면 떨이로 세일하는 제품들이 꽤 있다. 낯에는 천정부지로 비싸던 것들이 50% 세일을 하기도 한다. 유독 채소 값이 비싼 요즘 한단에 거의 오천 원이나 하던 열무와 얼갈이가 뭉뚱그려 3단에 9천 원이라고 쓰여 있다.


오예! 열무김치나 담아 볼까? 아니면 물김치 담고, 된장국을 끓여 볼까?  큼직한 봉투를 집어 들었다. 무겁다. 운동 나왔다 들른 길이니 케리어도 가져오지 않았던 터, 이러니 팔뚝의 힘줄이 이렇게 불끈불끈 하지!  열무 2단과 얼갈이 1단이 들어 있는 봉투를 들고, 아차! 대파도 떨어졌지, 어? 아욱이 한단에 천 원이네! 아싸! 참 양파도 떨어졌구나! 생강이랑 쪽파도 사야지! 이렇게 짐 두 꾸러미를 들고, 매고 마트를 나서니, 꼭 이럴 때 등장하는 환장 콤비처럼 눈앞에 다정한 부부가 걸어간다. 무거운 장바구니는 남편이 들고 아내는 달랑 시금치 한 봉지 달랑거리며 남편 팔짱을 끼고 걸어간다.

혹시나 이때쯤에는 아내가 장을 봐서 돌아오려나,  남편이 마중 나오는 이변이 생겼을까? 건널목 건너편을  둘러본다.


 남편이 저쪽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녹색불로 바뀌자 중간까지 건너와서 "뭘 이렇게 많이 샀어? 무겁겠네" 다정하게 말하며 짐을 받아 든다."응, 운동 갔다 들렀는데, 채소가 엄청 싸더라고" "어우, 그래도 그렇지! 나 안 나왔으면 어쩌려고!" "요즘, 채소가 얼마나 비싼데! 오늘 득템 했어" "그러네, 싱싱한데 잘 샀네""오늘, 웬일인지 몰라! 아이스크림도 샀어!""내가 좋아하는 거 샀어? ""당신이 좋아하는 거 당연히  지!" 물론, 아이스크림은 샀다. 그것만 빼면 다 상상이다.


남편에게 마트는 갔다가 와야 하는 곳이다.

나에게 마트는 가는 곳이고,  오는 곳이다.

그리 멀지 않은 마트, 남편과 길을 나서면 빨리 정신없이 걷고,  횡단보도  녹색 불이 깜빡이면,  빨강 불로 바뀌기 전에 정신없이 백 미터 달리기 하는 우사인 볼트처럼 냅다 뛰어서 건너야 한다. 내가 뒤따라 간신히 세이프하듯 건너면            

"그것도 빨리 못 건너? 하여간 꿈 떠 가지고"라는 구박도 들어야 한다. 신호등이 빨간색이어도 차만 안 오면 대충 건너야 한다. 내가 신호를 지키라고 하면, 그렇게 고지식해서 세상을 어떻게 사냐고 한걱정이고, 마트에서 "이거 살까? 저거 살까?"물어보면 "알아서 사! 싼 걸로 사  다 똑같어" "물가 비싸다, 비싸" "매일 이렇게 돈이 드니 큰일이다!"한숨을 푹푹 쉰다. 장보따리를 들고 돌아오는 길에는 뭘 이렇게 무겁냐고 투덜투덜, 궁시렁의 연속이다. 마트에서 집까지의 거리가 적도 끝 마냥 멀게만 느껴진다.


널목에 녹색불이 들어오고 나는 열무 봉투를 힘껏 집어 들고, 성큼성큼 건너간다. 이렇게 차들이 멈춰있는 건널목을 건너갈 때, 차 안의 저들에게 나는 그저 그렇게 짐보따리를 들고 건너가는 아줌마로만 보이겠지? 무거워도 뒤뚱거리지 말고 좀  우아하게 걸어볼까나? 등을 너무 구부렸나? 허리 좀 곧게 펴보자! 목을 스트레칭하듯 길게 빼고 하늘을 보니 반달이 떠 있다. 달 예쁘네 좋다 좋아. 달도 저렇게 예쁘게 떴는데 이 길도 허리 펴고 신나게 건너가 보자! 일부러 근력 운동도 하는데,  팔뚝에 근육 좀 붙으면 어떠랴!


현관문을 여니, 남편은  격투기에 몰두해 있었다. 컴퓨터 화면 속에는 근육질의 남자들의 싸움이 한창이었다. "인간아! 그렇게 힘 자랑  하고 싶으면 마중이나 좀 나와보던가!" 꼴 보기 싫은 뒤통수에 열무다발을 냅다 던지고 싶으나, 시끄러운 게 싫은 나는, 삭제 버튼을  누르고 머리를 부르르 한번 흔들고는 조용히 뒷 베란다로 나가서 열무를 씻어서 소금에 절였다. 닥터 차정숙처럼 귀싸대기 한번 찰지게 날려주고 싶다. 그 와중에 남편은 냉동실에 넣어둔 아이스크림을 잘도 찾아서 먹는다.

창밖은 달빛이 곱다.

이 하루 빈 배로 노 저으며 잘도 건너간다.

가면 저곳도 이곳이 되니, 나는 이곳의 강을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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