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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방에 사는 여자 Mar 13. 2024

우리 집에는 산이 없었고,  나는 방이 없었다.

나는 방이 없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방이 두 개 있었다. 안방과 건넌방, 여름에는 안방에서 아버지와 엄마, 동생들이 자고, 나와 언니는 건넌방을 썼다. 그곳에는 큰 엄마네서 얻어온 책상도 있었고, 라디오도 있어서 머리맡에 놓고 밤늦게까지 라디오를 들었다. 겨울에는 온 가족이 옹기종기 안방에 모여서 밥도 먹고 티브도 보면서 겨울을 낫다. 건넌방까지 군불을 때기에는 땔감이 부족했기 때문에 안방에서만 지냈던 것이다.



땔 나무는 산에서 해야 하는데. 우리 집은 산이 없었다. 겨울이면 엄마는 앞산이나 뒷산, 때로는 좀 더 먼 산에서 나무를 했는데, 산의 임자가 나무를 해가도 된다고 인심을 쓴 덕분이었다. 자기 산이 있는 사람들은 풍족하게 나무를 해다가 이방 저 방 군불을 맘껏 땔 수가 있었다. 시골에서는  자기 방을 갖는 경우가 드물었다. 온 가족이 한방을 쓰거나 같은 성별의 형제들끼리 방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나도 가끔은,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나무를 하는 엄마를 따라 삭정이도 꺾고 갈퀴로 솔잎을 그러모으기도 했다. 해 질 녘이 되면 아버지는 지게에 나무단을 지고, 엄마는 머리에 이고 산을 내려왔다.



집을 수리해서 입식으로 고치고 보일러를 깔아서 더 이상 나무 할 일이 없어졌을 때, 도시에 사는 내가 고향집에 전화를 해서"엄마! 뭐 하셔?" 하면  "저녁 먹고 텔레비전 보는데?" 하셨던 엄마, "텔레비전 재밌어?"내가 물으면 "재미나지  일하느라 못 보고, 겨울이면 나무 하느라 못 봤는데 이제 나무 안 해도 되니까  텔레비전 재미나게 보네!" 하셨다. 그때 나는 한 인간으로서의 엄마는 재미난 인생을 살고 싶은 것이라는 사실의 새삼 느꼈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엄마의 노동으로 일관된 생을 당연하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결혼을 두 달 앞두고 버스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갈빗뼈에 금이 가서 병원에 두 달을 입원해 계셨던 엄마는 병원 생활이 즐겁다고 하셨다. 하루 종일 텔레비전을 맘껏 볼 수 있고, 병실 사람들하고 수다도 떨고  삼시세끼 해주는 밥 먹으니 좋다고 하셨다. 엄마는 내 결혼식 일주일 전에 퇴원하셨다.



스무 살에 취직한 회사에서는 기숙사 생활을 했었는데, 한방에 여섯 명이 생활했다. 집에서도 여섯 식구가 한방에서 살았으므로 기숙사 생활이 힘들지 않았다. 춥지도 않았고 집보다 기숙사가 더 좋았다. 옷장한칸, 사물함 한 칸이 전부인 그 공간을 좋아하는 책들로 채워 넣고, 장미꽃 한 송이를 테이프로 붙여 놓기도 하고, 사진들을 붙여 놓았다. 가을에 책갈피사이에 넣어둔 낙엽을  문방구에 가서 코팅일해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를 써서 함께 붙여 놓기도 하였다.



몇 년 후 언니와 함께 자취를 시작하면서 기숙사를 나왔고, 나는 자취방 한쪽에 예쁜 화병에 국화꽃을 꽃을 줄 알았고, 벽에는 아기자기한 모양의 거울을 달고 그 밑에는 2단 책꽂이를 놓고, 화려한 모양의 스카프를 덮어서 화장대로 만들기도 했다. 나는 방 꾸미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언니가 결혼을 하고, 난생처음 혼자 쓰는 내방이 생겼으나, 도시의 스산한 삶에 지쳐갔던 나는, 밤늦은 골목길의 다정한 불빛들 사이로 불 꺼진 내방이, 연탄불 꺼진 내 자취방이 점차 돌아가기 싫은 곳이 되어 갔다. 라면에 소주를 마시며 베스트극장을  보거나, 가끔 친구들과 밤새 수다를 떨던  자취방은, 어린 시절 내가 가지고 싶었던 방은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친구랑 같이 살기도 하고, 동생과 살기도 하면서 스산한 도시의 삶을 흘려보냈다. 흔들리고 표류하는 배처럼.



결혼을 하고, 신혼 시절 집을 예쁘게 꾸미고, 쓸고 닦았다. 비로소 내가 안착할 곳을 찾았다고 느꼈다. 침대 옆에는 장미꽃도 꽂아 놓고,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장식도 했다.

그것도 잠시, 아이가 태어나고 예쁜 집은 세상 쓸데없었고, 꽃병은 일찌감치 치워졌으며

가구마다, 서랍마다, 안전 스펀치를 붙이고 고리를 걸어야 했다. 아이들과 함께 잠들고 깨던 내 몸이 내 몸이  아니던 시절이므로  내 방의 꿈은 사라져 갔다. 그리고 집안의 어느 것 하나 내 맘대로 바꿀 수 없는 상황에서 나는 주인이 아니라 이방인으로 살아가야 했다.


이제 아이들이 다 자란 지금, 나에게는 아주 작은 방이 주어졌다. 우리 집에서 가장 구석에 위치한 아주 작은 방, 나는 이방을 사랑하지 않았다. 외벽이라서 외풍도 있고 난방도 잘 들어오지 않는 방. 작고 초라한 방을 보면 기분이 나빴다. 결국에는 내가 도착한 곳이 이곳 이라니,  나를 이토록이나 홀대하는 남편이 미웠다. 그러나 나를 홀대한 것은  남편이 아니라 바로 나였었다. 그것은 불행이 원하는 모습이다.



공간을 사랑하고 아꼈던 나는 오랜 세월 그 무엇 하나 내 의지 대로 경영할 수 없는 현실에,

나를 윗목에 놓아두고 내버려 두었던 것이다.

사랑하지 않기로 작정을 하고.

이제 다시금, 봄이 온다.  이 봄에 나는,

창을 열면 멀리 푸른 산이 보이고, 아침해가 가장 먼저 찾아오는 내 방을 아늑하게 사랑할 것이다. 한 획 한 획 그림을 그리듯, 내가 좋아하고 꿈꾸는 것들로 채워 나갈 것이다.

작은 방이지만 따뜻하고 깊고 큰 방이 되어 갈 것이다.



엄마는 가족들의 따뜻한 겨울을 지키기 위해 겨우내 땔 나무를 하였던 것이다. 나는 아이들의  소중한 인생을 위하여 내 인생을 그러모아야 한다. 방을 가지기 위해서는 방을 지킬 수 있는 산이 있어야 함을,  산에서 나무를 하듯  나날을 주워 모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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