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포비아①] 리더가 되기 싫어진 시대

'결정'이 ‘외로움’으로 느껴질 때

by 미추홀 신사

후배가 가져온 결과물을 열어본 순간이 있다.

문제는 보이는데, 말이 늦게 나온다.


예전엔 달랐다.

불편함은 곧바로 좌표가 됐다.

“여기.” “이 문장.” “이 숫자.”

내가 고치면 빨랐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내 손이 아니라 내 입이 멈춘다.


감각이 죽은 게 아니다.

그 순간, 내가 멈춘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이 말을 내가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요즘 리더포비아는 종종 여기서 시작된다.

“책임이 무서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더 정확한 말은 이쪽이다.

책임 회피가 아니라, ‘불안과 평판 비용’을 피하려는 움직임일 수 있다.


“내 의견이 기록되고, 떠돌고, 오해될 가능성을 감당하고 싶지 않다.”


온라인에서 말은 맥락을 잃기 쉽다.

서로 다른 청중이 한 화면에 겹치고, 의도는 잘려 나간다.

이를 '맥락 붕괴(context collapse)'라고 부르기도 한다.


리더는 ‘발언이 많은 사람’이 아니다.

리더는 판단을 남기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 시대의 판단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다른 견해를 갖는 것”의 비용이 달라졌다.

예전의 비용이 주로 관계였다면,

지금은 관계에 더해 평판이 붙는다.


팀 안에서의 불편함

팀 밖에서의 오해

캡처된 한 카톡 한 줄

맥락 없는 공유

‘저 사람 원래 저래’라는 낙인


의견을 관철시키는 순간, 누군가는 멀어진다.

예전에도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그 거리가 ‘기록’으로 남는다.

리더십이 고립처럼 느껴지는 건, 관계만 잃는 게 아니라 평판까지 걸리기 때문이다.




이 현상이 한국에서도 유효한가?

나는 그렇다고 본다. 근거는 이미 잡히고 있다.


대학내일 20대 연구소(19~36세, 850명)의 조사에서,

중간관리직을 맡을 의향이 “있다(36.7%)”와 “없다(32.5%)”가 비슷했다.

또 “리더 역할을 맡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다”는 응답이 47.3% 였다.


잡코리아 설문에서도 MZ 직장인 과반이 “임원 승진 생각이 없다”라고 답했다.


이걸 단순히 “요즘 애들은…”으로 요약하면 놓치는 게 많다.

지금은 리더가 되지 않아도 생존이 가능하다고 느끼는 환경이 생겼고,

동시에 리더가 될 때 감당해야 할 비용이 더 잘 보이는 환경이 됐다.



그런데 역설이 있다.

리더는 정말 불필요해졌을까?


구글은 한때 “관리자는 필요 없다”는 가설을 실험했지만, 결론은 반대였다.

그래서 그들은 Project Oxygen을 통해 “좋은 매니저의 행동”을 정리했다.

그 목록 안에는 이런 항목이 있다.


Make strong decisions. 강한 의사결정.


조직이 돌아가려면, 결국 결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결정은 더 자주 필요해진다.

그런데 결정을 맡으려는 사람이 줄어든다면?


리더의 가치는 ‘권력’이 아니라, 더 실용적인 형태로 희소해질 수 있다.


결정을 ‘안전하게’ 만드는 능력.

맥락을 남기고, 오해를 줄이고, 갈등을 흡수하고, 실행을 성립시키는 능력.




여기서 리더포비아는 한 가지로 뭉개지지 않는다.

적어도 두 층이 겹친다.


불확실성의 층: 틀릴 확률이 커진 시대

평판의 층: 틀림이 ‘기록’으로 남는 시대


그래서 리더십의 비용이 이렇게 보인다.


외로움(관계를 잃는 비용)

평판(오해와 낙인의 비용)

책임(결과의 비용)


리더를 피하는 건 ‘귀찮음’이 아니라, 때로는 합리적인 계산이다.




그럼 해답은 뭘까?


“용기를 내라”는 말은 가볍다.

이 시대에는 용기보다 설계가 먼저다.

설계는 사람의 불안을 줄이는 장치를 미리 깔아 두는 일이다.


1) 결정은 ‘짧게’가 아니라 ‘따뜻하게’ 남긴다


장면: 회의 끝. 누군가가 묻는다. “그래서 어떻게 갈까요?”


이때 우리는 종종 급해진다.

짧게 끝내고 싶어서, 한 문장으로 정리한다.


그 한 문장이 나중에 혼자 떠돌면, 오해가 된다.

그래서 나는 결정을 길게 설명하지 않고, 짧은 맥락만 붙인다.


“이번 주는 A로 가보죠.
이유는 B예요.
대신 C가 맞는지 수요일에 한 번 확인하고, 아니면 바로 조정할게요.”


이 정도면 충분하다.

결정은 남고, 사람은 덜 불안해진다.




2) 의견은 ‘반박’이 아니라 ‘확인’으로 다룬다


장면: 대화 중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말한다. “저는 조금 다른 생각이 있어요.”


이때 대화가 날카로워지기 쉬운 건,

사람이 아니라 의도가 공격으로 해석될 때다.


그러니 먼저 이렇게 말해보자.


“좋아요. 그 지점을 같이 확인해 볼까요?"


그리고 질문을 세 개만 두어보자.

상대를 겨누지 않고, 상황을 정리하는 질문이다.


“우리가 지금 가장 해결하고 싶은 게 뭐죠?”

“그게 맞다면, 어떤 신호가 먼저 보일까요?”

“확인하려면 이번 주에 무엇을 집중해서 함께 살펴보면 될까요?”


이 질문은 논리로 압박하기 위한 게 아니다.

서로를 안전하게 만들기 위한 확인의 언어다.




3) 리더십은 ‘직책’이 아니라 ‘작은 돌봄’으로 시작한다


장면: 나서긴 부담스럽고, 그래도 실행해야 하는 한 주.


이럴 땐 리더십을 크게 잡지 않는 게 좋다.

대신 이번 주에 세 번만 한다. 딱 세 장면만 만든다.


결정 1번: 미루던 선택 하나를 정하고, 짧게 맥락을 남긴다.
(“A로 가보죠. 이유는 B. 수요일에 C 확인하고 조정할게요.”)


정렬 1번: ‘이번 주의 기준’ 하나를 맞춘다.
(“이번 주 ‘완료’는 어디까지로 볼까요? 그럼 무엇은 안 하기로 할까요?”)


코칭 1번: 한 사람에게 15분만 시간을 준다. 결과물을 보며 이렇게만 묻는다.
“지금 제일 어려운 지점이 어디예요?”
“내가 도와주면 제일 효과적인 건 뭐예요?”

그리고 마지막에 한 줄만 남긴다. “나는 이 부분을 가장 중요하게 봐요.”



리더십은 ‘이끄는 기술’이기 전에,

사람이 불안해지지 않게 길을 살짝 밝혀주는 습관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응급처치’다.

근본은 조직이 해야 한다.


이 조직은 리더에게 ‘평판 비용’을 얼마나 떠넘기고 있는가?

의견을 내도 안전한 규칙(기록/공유/맥락)이 있는가?

결정이 잘못되었을 때, 사람을 벌하는가, 과정을 리뷰하는가?


리더포비아는 개인의 용기 부족이 아니라,

이 질문들에 대한 조직의 답에서 만들어진다.


다음 편에서는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려 한다.

개인의 선택만이 아니라, 조직이 중간관리층을 다루는 방식(권한·보상·보호·평판)까지 포함

왜 지금 세대는 unbossing을 선택하게 되었는지.


마지막 질문


당신이 의견을 관철시키려다 포기했던 마지막 순간은 언제였나.

그때 포기한 건 ‘일’이었나, 아니면 ‘관계’였나.





다음 글에서는 리더 승진 패키지의 손익분기점이 무너진 이유를 다룹니다.

[리더 포비아②] 왜 승진을 거부하는가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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