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포비아②] 왜 승진을 거부하는가

승진 거부는 게으름이 아니라 합리적 계산의 결과

by 미추홀 신사

지난 글에서 나는 리더들이 침묵하는 이유를 '평판 비용' 때문이라고 말했다.

관계를 잃고, 오해를 사는 것이 두려워 주저하게 된다고.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게 있다.

정말 '두려움' 때문일까?


어쩌면 문제는, 그 두려움을 감수할 만큼의 '보상'이 사라졌다는 것 아닐까.



승진이 더 이상 '성공'의 동의어가 아닌 시대가 왔다.


누군가는 이를 '리더십의 위기'라 말하지만,

나는 '계약 조건의 비대칭성'으로 보인다.


젊은 인재들은 리더십을 거부한 게 아니다.

그들은 '승진'이라는 포장지 안에 들어있는

중간관리자 패키지의 부실함을 본다.


권한은 얇고

책임은 경계가 흐릿하며

보호는 불확실한 거래


그 거래를 거절하는 움직임이 Unbossing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 현상이 '요즘' 더 두드러지는 이유도 분명하다.

하이브리드·디지털 환경에서 결정은 더 자주 기록되고, 더 빨리 퍼진다.

책임의 경계는 흐릿해졌고, 한 번의 판단은 오래 남는다.


승진은 이제 성취가 아니라 리스크가 커진 계약으로 읽힌다.




1. 무너진 가치 제안: 책임은 커졌고, 권한은 얇아졌다


예전의 승진 계약서는 비교적 명료했다.

책임이 늘면 권한이 따라오고, 권한이 늘면 보상과 보호가 뒤따랐다.


하지만 요즘 중간관리자가 마주하는 현실은 정반대다.


책임의 인플레이션 : 실무와 관리를 동시에 해야 한다.

권한의 디플레이션 : 결정권은 제한적인데, 조율해야 하는 이해관계자는 늘었다.

보상의 정체 : 늘어난 스트레스에 비해 보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리더십이 싫다”가 아니라

“이 조건으로는 맡지 않겠다”가 된다.




2. 반전 : 조직도 'Unbossing'을 하고 있다.


Unbossing은 개인만 하는 게 아니다.

조직도 Unbossing을 한다.


기업들은 기민함을 위해 계층(Layer)을 줄인다.

그 결과, 관리자 한 명이 감당해야 할 팀원의 수(Span of Control)는 늘어난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Megamanager”라 불렀다.

Gallup 데이터에서도 리더의 평균 직접 관리 인원(Direct Reports)은

매년 증가 추세다.

특히 IT와 금융 등 변화가 빠르게 요구되는 조직일수록 이 현상은 뚜렷하다.


구조는 평평해졌지만, 관리자의 업무는 얇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두꺼워졌다.

이것은 별개의 현상이 아니다.

얇아진 권한과 두꺼워진 책임이 서로를 증폭시키며

'고립'을 가속화한 결과다.


여유가 사라지면, 가장 먼저 사라지는 건 늘 비슷하다.

코칭보호.


관리 계층의 축소는 리더가 고충을 상담하거나 멘토링을 받을 수 있는

상위 리더와의 접점도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리더십 수행 과정을 고독한 투쟁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리더가 되고 싶지 않다”는 말은

개인의 심리 문제가 아니라, 구조가 만든 합리적 결론일 수 있다.


몸이 바쁜데 마음까지 불안하면, 리더십은 성장보다 리스크로 읽힌다.




3. 리더가 되지 않아도 성장할 수 있다


성장의 루트가 하나가 아니다.


Robert Walters의 조사에서 Gen Z 응답자의 72%는

리더가 되는 길보다 '개인 성장 중심 경로(Individual Route)'를 선호했다.


기술 전문성 추구, 사이드 프로젝트, 포트폴리오, 이직 시장.

성장은 '직책'이 아니라 기회이동성에서 온다는 감각이 커졌다.


굳이 '관계 비용'과 '갈등 조정'이라는 감정 노동을 감수하며

리더 역할을 할 이유가 약해진 것이다.


물론 리더십 경험은 장기적으로 커리어에 유리하다.

하지만 그것은 경험이 자산으로 남을 때의 이야기다.


'고생하면 성장한다'는 막연한 기대보다,

회수가 불확실한 책임을 굳이 사지 않겠다는 선택.

그게 Unbossing의 또 다른 얼굴이다.




4. 결정의 리스크: 결정의 환경 자체가 바뀌었다.


과거엔 경험 많은 상사가 있었다.

비슷한 상황을 겪어봤고, 그 경험을 전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사도 답을 내본 적이 없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경험의 가치'를 희석시켰다.


IBM과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기술의 반감기는 40년 전 10년 이상에서

2020년 이후 약 2.5년으로 줄었다.


불확실성이 커지면 결정은 잦아진다.

그리고 디지털 환경에서는 결정이 쉽게 기록되고 전파된다.


결국 중간관리자에게는 이런 감각이 생긴다.

결정의 빈도는 늘었는데, 틀림의 비용도 커졌다. 그런데 참고할 선례는 없다.


그래서 리더십은 “성장”보다 “리스크”로 읽히기 쉽다.

이건 감정이 아니라 계산이다.




5. 역설: 리더는 줄어들기에, 더 비싸진다


사람들은 리더가 되기를 거부하지만,

조직은 결정을 포기할 수 없다.

AI가 발달해도 책임지는 결정은 인간의 몫이다.


Gallup(2024) 데이터는 이 위기를 말해주고 있다.

관리자의 몰입도 (manager engagement)는 30%에서 27%로 하락했다.

특히 젊은 관리자 층에서 그 하락 폭이 두드러졌다.


리더가 되고 싶어 하는 마음, 리더로서의 의욕이 말라가고 있다는 뜻이다.


공급이 줄면, 가치는 오른다.

앞으로의 리더는 '권력자'가 아니라 '희소한 기술자'로서 가치를 가질 것이다.


리스크가 큰 결정을 '안전하게' 만드는 사람.

결정이 번복될 때도 신뢰를 유지하는 사람.

불확실성 속에서 실행을 만들어내는 사람.


Unbossing 시대의 리더는, 더 적어지면서 더 중요해질 수 있다. 




6. 스포츠에선 ‘Unbossing’이 덜 보인다


스포츠에서 주장 완장이 명예인 건, 리더십이 쉬워서가 아니다.

리더십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감독은 최종 결정을 하고,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진다.

주장은 필드 위에서 팀을 묶고, 분위기를 살리고, 목소리를 낸다.

즉 ‘감독의 책임’과 ‘주장의 리더십’이 나뉘어 있다.


반면 기업의 팀장은 그 둘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성과의 책임(감독)과 팀의 돌봄(주장).

게다가 그 책임은 경기장 밖으로도 번진다.

경계가 흐릿할수록, 리더십은 명예가 아니라 소모가 된다.


그리고 주장 완장은 스토리가 된다.

중계에 잡히고, 인터뷰에 나오고, 은퇴 후에도 "전 주장"이 남는다.

기업 팀장은? 이직하면 리셋, 퇴사하면 증발.


스포츠는 승패가 명확하고 시즌이 끝난다.

반대로 기업은 성과 측정과 책임 경계가 더 흐릿하다


물론 리더 경험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시니어로 갈수록 ‘관리 경험’은 시장에서 요구된다.

문제는 자산화가 아니라 자산으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이 지나치게 고통스럽고,

그 과실이 불확실하다는 데 있다.


같은 리더 경험도

어떤 조직에서는 '이름이 남는 포트폴리오'가 되고,

어떤 조직에서는 '내부에서만 소모된 고생'으로 끝난다.


고통은 확정인데 회수는 미지수다.


그래서 Unbossing은 리더십 거부가 아니라

회수 불가능한 계약을 거부하는 선택이다.




그럼 해법은 뭘까


나는 해답이 개인의 ‘용기’에만 있다고 보지 않는다.

Unbossing은 시스템의 결과이기에, 해법도 시스템이어야 한다.


특히 '방치된 리더십'의 비용을 직시해야 한다.

신임 리더는 종종 '성과를 내던 사람'으로 뽑힌 뒤, 아무 장치 없이 중간관리자로 투입된다.


CEB(Gartner)의 연구에 따르면, 적절한 지원 없이 임명된 신임 리더의 60%가 2년 내에 실패한다.

'알아서 잘하겠지'라는 믿음은 경영이 아니라 방임이다.

그 대가는 조직의 생산성 저하로 돌아온다.


조직이 해야 할 일은 '관리자'를 임명하는 게 아니라, '리더'를 온보딩(Onboarding) 하는 것이다.




첫째, 고립을 막는 '연결' 설계 (Network)

인텔(Intel)은 신임 매니저에게 'Buddy'를 즉시 배정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리더의 역할에 'Care(돌봄)'를 명시하고,

그들이 팀을 돌보는 만큼 조직도 리더를 돌본다는 시그널을 준다.


리더에게 필요한 건 감시자가 아니라, 고충을 나눌 동료와 멘토다.

술자리 회식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안전한 구조가 필요하다.


신임 팀장들을 묶어 '피어(Peer) 그룹' 생성

월 1회 이상 '정기 코칭 세션' 제공


목표는 친목이 아니다.

'혼자 버티는 시간'을 줄여, 신임 리더의 초기 적응 기간을 단축하고

심리적 이탈을 막는 장치의 구축이다.




둘째, 리더십 경험의 '자산화' (Brand ROI)

리더 역할이 소모품이 되지 않으려면, 그 경험이 개인의 시장 가치를 높여줘야 한다.

'팀장을 하는 동안 내 체급이 달라진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

즉, '무엇을 이룬 사람'이라는 포트폴리오를 남겨주어야 한다.


방법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실질적인 '성장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1) 전문가 브랜딩 지원

외부 강연, 겸직 등 자신의 전문성을 알릴 수 있도록 과감히 허용해 보자.

리더가 밖에서 유명해지는 건 회사의 손해가 아니라, 최고의 채용 홍보다.

리더에게는 '이 회사에서 업계의 거물이 된다'는 확신도 심어줄 수 있다.


2) 학습지원

여력이 된다면 학위과정을 지원하고, 여의치 않다면 성장을 위한 'Time off' 또는

워케이션을 허용해 보자.


3) 밀도 높은 포트폴리오

작은 조직이라면 '권한의 크기'를 무기 삼아보자.

대기업에서라면 어려울

프로젝트 총괄 권한 부여를 통해 시장에서 통할 '야전 경험'을 계속 만들어줄 수 있다.


핵심 메시지는 하나다. "당신 이력서의 가장 빛나는 내용을 여기서 완성한다."


리더십 경험이 시장에서 비싼 값에 팔릴 수 있도록,

'전문가 인증'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이다.




셋째, 권한 없는 책임을 없애주자 (Structure)

결정권과 자원, 그리고 실패했을 때의 보호 장치를 패키지로 제공해야 한다.

권한 없는 책임은 리더를 비겁하게 만들 뿐이다.


리더가 체감하는 건 세 가지다.


결정권(Decision): 팀장이 최종 결정할 수 있는 범위를 정한다.

자원권(Resource): 소액 예산/외부 도움을 팀장이 즉시 요청하고 활용할 수 있다.

보호(Cover): 결정이 틀렸을 때 팀장 개인에게만 낙인이 남지 않도록,
상위 리더가 '공식적으로 ‘함께 책임진다’는 문장과 신뢰를 남긴다.



'슈퍼맨'은 없다. '시스템'이 있을 뿐


물론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그래도 리더를 해야 더 크게 성장하지 않느냐"라고.

맞는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그 성장의 과정이 개인의 희생이 아니라

시스템의 지원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Unbossing은 '리더십의 종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리더십 계약'을 요구하는 신호다.


마지막으로 묻고 싶다. 당신이 팀장이 된 첫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무엇을 이룰 수 있을까'였는가, 아니면 '내가 무엇을 방어해야 할까'였는가?


그 질문의 답 속에 우리가 풀어야 할 리더십의 위기, 그리고 해결의 실마리가 숨어 있다.




[다음 편] 그래도 링 위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 (링크)

Unbossing은 도망이 아니다. 계산이다.

그렇다면 '리더가 되겠다'는 선택도 합리적이어야 한다.


"이 모든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국 리더가 되어야 하는가?"


현실적인 한계와 변화하는 커리어 지형도(AI, 전문성) 속에서

리더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살아남는 사람'이 되기 위해

선택해야 할 '길'은 무엇인지 고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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