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 포비아③] 그래도 링 위로 올라가야 하는 이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by 미추홀 신사

난 지난 글에서 말했다.

“리더를 안 하겠다는 건 나약함이 아니라 계산이다.”

가성비 안 나오는 계약을 거절하는 건, 자본주의에서 자연스러운 권리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더 불편한 질문이 남는다.


그 계산은 ‘지금’은 맞을 수 있다.

하지만 ‘10년 뒤의 생존’을 묻는 질문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Unbossing은 당장의 고통을 피하는 데는 최적의 답이 될 수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 그 선택이 나를 어디에 세우는지까지는 보장해주지 않는다.


나는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조직이 바뀔 때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




1. ‘평생 실무자’라는 달콤한 가정


많은 사람이 리더십을 거부하며 이렇게 말한다.

“나는 정치 말고, 전문성으로 승부하겠다.”


멋진 말이다. 문제는 조건이다.

조직이 ‘IC 트랙(Individual Contributor, 전문가 트랙)’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지 않으면,

실무자의 커리어는 어느 순간 ‘천장’을 만난다.


그리고 지금은 천장이 더 빨리 온다.

과거에는 어떤 스킬이 몇 년씩 밥벌이를 보장했다.

하지만 생성형 AI 이후, 많은 기능 스킬은 평준화되고 대체 가능성이 커졌다.


냉정하게 말하면 이거다.

리더를 거부하고 실무에만 머물면, 결국 경쟁자는 두 가지로 좁혀진다.


더 젊고 더 싼 인력

더 빠르고 더 싸게 처리하는 도구(AI)


‘가성비 경쟁’으로 들어가는 순간, 나이 든 실무자는 불리해진다.

이건 의지 문제가 아니라 구조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파괴적 혁신을 말하며 이렇게 경고했다.

"오늘 당신을 먹여 살리는 기술이, 내일 당신을 쓸모없게 만들 수 있다."


'나는 전문가야'라는 자부심은, 때로는 변화를 거부하는 관성이 된다.


MIT의 에릭 브린욜프슨과 앤드류 맥아피는

『제2의 기계 시대』에서 노동시장을 세 층으로 나눴다:

1. 고도의 창의성과 의사결정

2. 반복적이지만 고숙련 업무

3. 단순 반복 업무


그리고,

노동은 '숙련 vs 비숙련'이 아니라
'대체 가능 vs 대체 불가능'으로 재편된다.


불편하게도 많은 '고숙련 반복 업무'는 그 경계에 있다.


엑셀을 잘 다뤄도,

보고서를 논리적으로 쓰는 능력이 있어도,

AI가 더 빠르고 저렴하면 그 현실과 경쟁해야 한다.




2. AI가 대신하기 어려운 것: ‘불확실성’의 처리


그렇다면 남는 건 무엇인가.


2025년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의 63.5%가 생성형 AI를 활용하고 있다.

업무 용도로만 보더라도 51.8%에 이른다.


예를 들어 마케터는 캠페인 초안을, 기획자는 보고서 초안을, HR은 JD와 면접질문을

AI로 다듬는다.


'초안 만들기'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건 하나다.

무엇을 할지 정하는 능력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은 점점 자동화된다.

대신 희소해지는 건 이 능력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는 능력

무엇부터 할지 우선순위를 세우는 능력

트레이드오프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능력

리스크를 줄이는 설계를 하는 능력


한마디로, 불확실성을 처리하는 의사결정 능력이다.


이건 책으로만 배우기 어렵다.

결정은 “상황” 위에서만 배우고,

상황은 보통 리더에게 온다.


리더가 된다는 건 희생이 아니다.

회사 자원(사람, 돈, 시간)을 활용해

결정 근육을 기르는 트레이닝이다.


단, 결정 근육을 기를 장소가 '회사'일 필요는 없다.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이거다.


'불확실성을 감당한 경험'이 당신의 이력에 쌓이고 있는가.


예를 들면

사이드 프로젝트에서 일정/우선순위/ 결과물의 품질 기준을 정해본 경험

외부 커뮤니티의 운영자로 갈등을 조정하고 규칙을 만든 경험

작은 스쿼드/스터디에서 의사결정과 실행을 묶어본 경험

후배 멘토링 경험


불확실성 속에서 때론 '직관에 반하는 결정'을 내리고,

그것을 타인이 따르게 만드는 능력.

이것이 리더십의 본질이다.




3. 덧셈의 노동 vs 곱셈의 노동


실무자의 성과는 덧셈에 가깝다.

내가 8시간 일하면 8시간의 결과가 나온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체력과 속도는 떨어진다는 점이다.


리더의 성과는 곱셈이다.

내가 직접 만드는 결과보다,

팀이 같은 시간에 더 큰 결과를 내게 만드는 설계가 성과가 된다.


불필요한 회의를 없애는 것

반복 작업을 자동화하는 것

의사결정 속도를 높이는 것

팀원이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이게 레버리지다.

“남의 시간을 쓰는 기술”이 아니라

성과가 곱해지는 구조를 만드는 기술이다.


진짜 레버리지는 '착취'가 아니라 '증폭'이다.

타인의 재능을 증폭시키되, 그들의 성장이 당신의 성장과 함께 오게 하라.


나심 탈레브는 『스킨 인 더 게임』에서 이렇게 말했다:

"리더는 팀보다 더 많은 위험을 짊어져야 한다.

그래야 레버리지를 쓸 자격이 생긴다."


즉, 당신이 팀원의 시간을 빌린다면,

실패했을 때 그 책임의 가장 큰 몫을 당신이 져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이 없으면, 당신은 리더가 아니라 그냥 '위에 앉은 사람'일 뿐이다.




4. 본 경기 전에 테스트해 보자


여기서 많은 사람이 오해한다.

내가 말하는 건 “승진 버튼을 누르라”가 아니다.


‘리더십을 먼저 체험’ 하라고 말하는 거다.


큰 링에 올라가기 전에, 작은 링에서 먼저 맞아보는 방식이다.

이 단계가 있으면 리더십은 ‘도박’이 아니라 ‘실험’이 된다.


30일/60일/90일 파일럿 테스트 (이 중 하나만 해도 된다)


① 30일 파일럿: TF/스쿼드 임시 리드


목표 1개, 회의 2개(킥오프/리뷰), 산출물 1개

“누가 무엇을 언제까지”가 문서로 남게 만든다


② 60일 파일럿: 후배 1명 공식 멘토링


월 2회, 성장지표 1개(성과/습관/스킬 중 택 1)

코칭이 아니라 “기준 설정과 피드백”을 해본다


③ 90일 파일럿: 반복업무/프로세스 개선 프로젝트 리드


자동화·회의 축소·승인 라인 단축 같은 ‘시스템 성과’에 집중

개인 능력뿐만 아니라 팀 생산성을 건드린다


파일럿 자가 테스트 통과 기준(1개만 해도 충분)


내 결정이 내 일만 바꾼 게 아니라 타인의 일을 바꿨는가

우선순위/품질 기준/갈등 중 하나를 내가 정의했는가

결과물이 문서/지표로 남았는가


이게 쌓이면, 당신은 “리더 해봤음”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감당하고 실행을 만든 사람”이 된다.




5. 결론: ‘희생’ 하지 말고 ‘거래’하라


물론 IC 트랙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조직이라면, 그 길도 유효하다.

다만 대부분의 조직에서 그런 보장은 아직 드물다.


내가 말하는 건 이거다.


리더십을 ‘희생’으로 하지 말고, ‘거래’로 하라.


Unbossing 시대에는 리더가 귀하다.

즉, 지금은 공급자(당신)가 상대적으로 유리한 시장이다.

이럴 때 계약서를 바꿀 수 있다.


리더를 맡을 때, 최소한 아래 4가지는 요구해야 한다.


권한 : 내가 최종 결정할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자원 : 사용할 수 있는 예산/인력/외부지원은 무엇인가

보호 : 실패 시 책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퇴로 : 리더 역할이 안 맞으면, '임기를 마치고' 실무자로 복귀할 수 있는가



거절이 합리적인 기준을 갖자


권한 없이 책임만(결정권/예산권 없음) → 거절 또는 재협상

실무 70% 유지 + 관리 추가 → 거절(번아웃 확정 구조)

실패 시 원복 불가(복귀 트랙 없음) → 거절

지원체계 없음(멘토/동료 리더/ 코치 없음) → 조건부(외부로라도 만든다는 계획 포함)

위 항목 중 2개 이상이 해결 불가 → 거절이 합리적


리더 자리에 앉아서 할 일은 충성이 아니다.

포트폴리오를 남기는 것이다.


갈등을 처리해 본 경험

타인의 재능을 조율해 성과를 만든 경험

불확실한 상황에서 결정을 내려본 경험


이것들이 회사 밖에서 당신을 지켜줄 갑옷이 된다.




6. 에필로그: 링 위로 올라가는 사람에게


관중석은 안전하다.

하지만 챔피언 벨트는 링 위에 올라간 사람만 가진다.


Unbossing은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

다만 도망친 곳에 낙원이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곳에는 또 다른 경쟁—더 싼 인력과 더 강한 자동화—가 기다릴 수 있다.


그러니 두려워도, 한 번은 링 위로 올라가라.

회사를 위해서가 아니다.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대체 불가능한 나를 만들기 위해서다.


단, 맨몸으로 올라가지는 마라.
리더는 순교자가 아니다. 협상가다


2편에서 말한 것처럼, 조직이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조직이 바뀔 때까지 기다릴 수만은 없다.


당신이 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작은 링에서 먼저 시험해라

둘째, 조건을 협상해라

셋째, 출구를 열어두라


이것은 감정이 아니다.

불확실한 세상에서 당신의 생존을 위한, 가장 차가운 전략이다.


그리고 당신이 이렇게 링 위에서 싸운다면,

그 경험은 결국 '더 나은 조직'을 만드는 씨앗이 된다.


그리고 그 거래가 당신과 조직 모두를 성장시키게 하라.


희생하지 말고, 협상하라.





고민하고 있는 당신을 위한 질문

당신이 지금 가장 잘하는 일, 5년 뒤에도 조직이 그 일을 당신에게 맡길까?

당신은 지난 한 달간 몇 번이나 "이전에 본 적 없는" 상황에서 결정을 내렸는가?

당신의 성과는 당신 혼자만의 것인가, 아니면 팀 전체의 생산성과 연결되어 있는가?

당신의 이력서에 "팀을 움직여 본 경험"이 있는가?

당신의 회사는 리더 경험을 "일방통행"으로 만들고 있는가?




작가의 이전글[리더 포비아②] 왜 승진을 거부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