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을 해체하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라.
기억하는 건 뭘까. 왜 우린 뭔가를 기억하는 걸까. 100년이 지나도 기억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비전을 설정한 뒤로, 머릿속에는 이런 질문들이 들어앉아버렸다. 덕지덕지 들러붙어서 자생하는 것처럼, 여기저기로 번져갔다. 그러면서 2화에서 말한 것처럼 이런저런 책을 읽어보고, 산책하고, GPT와 이야기하면서 나는 질문들을 하나씩 주워 담아 정리해 나갔다.
한 사람에게 기억되는 것을 넘어서서 다음 세대에서 그다음 세대로 기억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 어떻게 기억으로 남게 될까. 그것에 대해 생각을 해봤을 때, 나는 이렇게 정리했다.
1. 기록된다.
기록되어야 다음 세대에서 그다음 세대로 전해진다. 그렇게 기록된 내용이 전해지면서 기억된다. 다만 기록되는 내용이 시대를 넘어 통용되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볼 테니까. 기록에도 생존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가장 대표적인 기록은 글이다. 하지만 글이 아니어도 기록을 할 수 있다. 영상과 사진, 이미지, 음악. 그런 내용이 어떤 공감을 이끌고, 그게 다음 시대에도 통용된다면, 그 메시지는 100년이 지나도 생존하지 않을까.
시대가 지나도 공감될 메시지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생각하다 떠올랐다. 그나저나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소크라테스를 말하고 있잖아? 셰익스피어도, 니체나 칸트도 읽히고 있는데 하고. 한편으로는 헤밍웨이도, 카뮈의 이방인도, 도스토예프스키도 기억되고 생존해 있는 기록인 셈이다.
2. 역사의 발자국으로 남는다.
역사적으로 기록될만한 사건 또는 행동을 한 경우에 계속 기억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특별한 설명을 붙일 건 없다. 아무래도 나는 그런 쪽으로는 아니니까.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만든 것처럼,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조한 것처럼, 인류의 발자취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 사람은 당연히 기억될 수밖에.
3. 사회 안에서의 영향력
벤저민 프랭클린은 도서관 대출 시스템을 처음 시도했다고 한다. 실제로 처음 만들었는지, 그 시스템을 처음 실제로 도입해서 운영했는지에 대한 사실여부까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자서전에는 책을 대출해 주는 아이디어를 냈고, 그걸 실제로 운영했다고 적혀 있다.
그런 식으로 어떤 제도나 구조를 처음 만든 사람이 된다면, “어, 저기요. 도서관에 대출 시스템을 누가 처음 시도했는지 알아요?”라고 여자친구에게 거들먹거리며 잘난 척하는 100년 뒤의 어떤 남자에 의해 기억될지도 모른다. 아니면 100년 뒤 어떤 예능에서 “도서관 대출 시스템을 처음 시도한 사람은?”하고 퀴즈를 낼지도 모른다. 어떤 식으로든 분명 기억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긴 하다.
이 외에도 유명한 브랜드를 만들거나, 어떤 특정 문화를 만든다면, 역사적인 발자국을 남기지 않아도 기억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 시스템 안에서 어느 정도 영향력을 미치게 되는 방법이다. 어쩌면 스타벅스도 이런 측면으로 100년 뒤에 기억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2000년대 커피 문화의 시작점이었던 브랜드로 남아있을지도.
다른 방법으로 100년 뒤에 기억될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무한도전이 100년 뒤에도 여전히 어떤 짤로 돌고 돌며 예언을 맞추고 있을지도. 아무튼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내가 초점을 맞출 수 있는 건 아무래도 1번 기록하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운이 좋다면 3번이 될지도 모르지만. 어디까지나 현실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은 1번이 가장 이상적이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니 어떻게든 기록을 계속 남겨야 하겠구나. 그렇구나. 그래야만 100년 뒤에도 기억될 수 있는 커피 브랜드로 향할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이 이어진 탓에 지금 열심히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블로그 글을 적고 있는데 말이지. 이거 참.
어떤 방식으로든 기록을 남기고 쌓아갈 수 있어야겠다. 그게 내가 만들 커피 브랜드의 가장 기초, 이를테면 땅 속 깊숙이 철근을 넣는 일이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럼 이제 필요한 건, 다음 세대에도 통용될 메시지. 그 메시지가 무엇인가. 그게 중요하다. 아무리 기록을 한다고 해도 읽지 않으면 사라질 테니까. 이에 대해 한참 고민하다가 반대로 ‘나는 어떤 기록을 읽고 공감하고 있을까?’하고 물어봤다. 이런저런 책들을 읽고, 소설을 읽고, 영상들을 찾아보는 이유는 뭘까.
나아가 왜 아리스토텔레스나 공자의 말은 수 천년이 지나도 왜 여전히 통용될까. 알베르 카뮈의 소설은 왜 지금 시대에도 읽힐까. 셰익스피어나 도스토예프스키는 왜 지금도 위대한 작가일까.
그런 생각에 닿자, 결국 모든 시대에 걸쳐 통용되는 메시지는 ‘사람’ 또는 ‘나와 나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누구이고, 무엇이고, 사는 건 뭘까.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질문에 대한 힌트를 얻고 배움을 얻어 잘 살아가고 싶은 마음은, 모든 시대의 사람들이 품고 있지 않을까. 과학 기술이 발전해서 AI가 생겨나도 우리는 살아가고 있을 테고, 화성으로 터전을 옮겨 살아갈 때에도 인류는 삶에 대해 물을 것이다. 아마도. 그러니 나도 미약하게나마 ‘사람, 나와 나의 삶’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그에 대한 작은 힌트 한 조각이라도 담을 수 있다면, 그럼 어쩌면 100년 뒤에도 운이 좋게 읽힐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생각이 이어지자, 아래와 같이 정리가 되었다.
비전은 100년 뒤에도 기억될 커피 브랜드를 만드는 것이고,
100년 뒤에도 기억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나와 삶’에 대해 말하고 기록하기는 것이다. 즉, ‘나와 삶’에 대해 말하고 기록하는 커피 브랜드가 되는 것이다.
여기까지 정리하니 어느 정도 윤곽이 나왔다. 커피를 만들고 판매하는 브랜드가 찾아오는 손님들의 ‘나와 삶’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 말하자면 단순히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해서, 나의 하루에 대해’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카페이자 브랜드가 되는 셈이다. 그런 손님의 경험들이 쌓이고 기록으로 남겨지는 커피 브랜드. 그런 방향이다.
카페에 와서 커피를 마시며, ‘나의 하루’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면 어떨까. 그런 진지한 시간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런 순간을 제공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그 과정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다면. 그럼 비전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음, 여기까지 정리하는데 한 달이 훌쩍 넘어갔다.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노트에 적어 벽에 덕지덕지 붙여 놓기도 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아내는 “카페를 창업한다며…?”라고 물었다. 실은 나도 이런 식으로 하게 될지는 몰랐다. 나도 창업은 처음이라...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이런 과정으로 하나씩 구조를 쌓아 올리는 게 튼튼하고 높은 빌딩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문장의 단어 하나하나를 뜯어보고 해체하고 납득할만한 근거를 붙이고 살을 더해가는 과정은, 땅 속부터 기반을 다져서 1층, 2층, 3층 하나씩 구조를 만들어 올리는 과정과 같다고 생각했다. 이게 얼마나 유용하고 올바른 결과를 만들지 모르겠지만. 아무쪼록 나는 그런 피곤한 타입이라서, 나만의 방식으로 밀어붙여보는 것이라고. 이 방법이 맞다고 생각하기에, 그렇게 생각하며 계속 진행했다. 이런 구조가 있어야만 한다고. 흠..
나는 아래 문장을 노트에 적어, 기존에 적어 놓은 비전 아래에 붙였다.
‘나에 대해서, 나의 삶에 대해’ 말하고 기록하는 커피 브랜드.
창업 순서
1. 큰 비전을 세워라.
2. 비전을 해체하여 구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