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커피/카페란?
비전이나 목표 같은 것을 붙잡고 며칠을 생각했더니, 그래서 뭘 하고 싶은 거야?라는 질문이 돌고 돌아 다시 왔다. 다만 이번에는 질문의 모양새가 조금 달랐다. 너는 어떤 모습의 카페를 하고 싶은데? 그런 생각이 불쑥 들었다.
아무래도 카페를 해볼까? 아니면 이제 슬슬 카페를 해보려고요.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내가 만들고 싶은 카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아른거리기 시작하는 법이다. 이를테면 창문은 이렇게 나와서 햇살도 비치고, 이런 색감의 인테리어에, 이런 테이블도 있고. 그래서 손님들이 와장창 들어와서 가득 채워진 모습에, 바쁘게 땀 흘리며 일하는 내 모습까지, 행복회로가 열심히 돌아간다.
네가 생각하는 카페의 모습이 무엇이냐고. 그런 행복회로가 대뜸 작동하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만약에 카페를 차린다면 말이지, 하고 상상을 해왔던 터라 금방 생각해 냈다. 평화롭고 한가로운 카페에서 한적하게 앉아서 책이나 읽고 음악을 듣다가, 마시고 싶은 커피를 잔뜩 마시는 그런 모습이다. 세상에 맛있는 커피를 모두 한 봉지씩 사서 이리저리 내려 나눠 마시는… 음, 여간 돈 벌기는 어려운 상상이지만. 아무튼 그런 카페를 운영하면 좋겠다고 상상은 해봤는데 말이지.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드는 생각이지만. 비전이나 목표는 목표라 치고, 내가 하고 싶은 커피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좋은 커피들을 잔뜩 모아서 이리저리 마시는 일이라면 아주 만족스럽겠지만, 그렇게만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니 적당히 타협을 하면서 나는 나대로의 방식을 찾아야만 한다.
사실 나는 어떤 커피를 만들어야 할까에 대한 고민도 오래전부터 생각을 해왔는데(오래전부터 생각하는 게 많아서 문제입니다). 커피는 결국에는 마시는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 그게 나의 커피 지론이다.
이런 주장을 하게 된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스페셜티 커피를 하면 할수록 나도 모르게 산지로 향하게 된다는 걸 깨닫게 된 시점부터였다. 마치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산지 중심적 사고를 가지게 되는 나와 사람들을 발견했다. 그때부터 나는 이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해서, 의도적으로 자세를 반대로 고쳐 잡았는데. 말하자면 마시는 입장에서 즐기기 좋고 특별하고 맛있는 스페셜티 커피는 무엇일까. 그건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었다. 그런 과정에서 12g 원푸어라는 추출 방법도 생각해 내고 나만의 방식을 쌓아왔는데.
아무튼 마시는 입장에서 유익한 커피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그걸 잘 만들 수 있으면 좋겠다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커피를 만들고 있다. 지금도 여전히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사실 예전만큼 열정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카페를 운영하다 보면 분명 그런 입장에서 다시 한번 애써서 만들지 않을까.
그나저나 마시는 입장을 고려한 커피는 뭘까. 그것 또한 너무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오직 고객 중심 사고를 바탕으로 츠타야를 운영해 온 마스다 무네아키라면 분명 ‘그럼, 그건 당연히 고객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고 말고요. 산지는 산지, 고객은 고객. 단연코 고객에게 좋은 커피여야 합니다’라고 단언하며 호통칠 것 같다. 그래서 고객에게 좋은 커피가 무엇이냐고 오.
내가 하고 싶은 커피가 무엇인지 말하다 보니 떠오르는데. 나에게 커피가 어떤 의미(가치)를 주는지 진지하게 고민을 한 적이 있다(이것도 오래전부터). 커피가 왜 좋은 걸까.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한 것인데.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냥 재밌어서. 배울 게 많다. 새로운 게 계속 생겨난다. 그런 지식과 기술적인 것 말고는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서 커피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생기면, 종종 커피를 왜 하시나요? 왜 좋나요? 같은 질문을 하고는 했다. 그러면 사람들은 대체로 ‘그냥 재밌다’ 또는 ‘커피를 통해 누군가를 만나는 게 좋다’ 같은 대답을 받고는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나는 그런 쪽은 아니라서(누군가를 만나는 건 언제나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속 시원한 답을 찾지 못했는데. 작년 가을 즈음에 우연히 조금은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커피와 관련해서 적었던 글들을 하나하나 꺼내 읽다 보니, 나는 커피를 마실 때의 기분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을 깨달았다. 커피를 마시고 있을 때의 그 기분, 분위기, 공기감 같은, 그때의 순간이 주는 평온함이다. 이에 대해 여러 차례 글로 적은 나를 발견했다.
무심히 흘러가는 하루하루들 속에서 잠시마나 커피를 통해 평화로운 순간들을 만날 수 있다고. 어쩌면 그것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커피의 기능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사람들이 왜 그토록 커피 타임을 즐기는지 납득이 되었다. 평온한 순간으로 잠깐의 환기를 찾는 셈이다. 물론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그 기능만 있는 건 아니겠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걸 알았다.
평화롭고 정적이고, 잔잔하게 흘러가는 기분으로 커피를 마시는 시간. 아마도 내가 카페를 차린다면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그 안에서 평화롭게 앉아서 살랑거리는 햇살도 쐬고, 음악도 듣고, 책을 읽다가 맛있는 커피를 잔뜩 마시는.
나는 어떤 커피를 하고 싶은지. 나는 어떤 카페를 하고 싶은지. 그 카페는 어떤 가치를 품고 있는지. 창업의 과정에 올라서서, 이에 대해 다시 한번 꺼내어 생각하고 정리하게 되었다.
창업 순서
1. 큰 비전을 세워라
2. 비전을 해체하여 구체적인 모습으로 만들어라.
3. 나는 어떤 커피/카페를 하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