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창업 일기 19화

공간 구하기 -1

by Rodinpark

드디어 실질적인 행동을 시작했다. 그동안은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굴려서 글자로 정리하기 바빴다면, 이제는 시간을 내고, 직접 몸을 움직이는 창업 활동으로 전환되었다. 매물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창업 준비를 하면서 가을에는 오픈하겠다고 데드라인을 잡았었다(창업 준비 기간을 약 6-8개월로 잡은 셈이다). 가을에 오픈하려면 늦어도 초여름(6-7월) 중에는 상가를 구해야 했다. 그런데 창업 계획을 세우고 정리하다 보니 5월이 지나가고 있었다.

물론 창업 계획을 세우는 중간에 일을 병행했었다. 그래서 온전히 모든 시간을 창업 계획에 소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5월이 되자 상가를 슬슬 구해야만 하는 시간이 왔다고, 직접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한다는 압박이 생기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어느 정도 컨셉도 정해졌고, 창업 계획서와 예산 계획도 나왔었다. 그래서 이제는 본격적으로 움직일 시간이 되었다고, 이제는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병행하던 일은 5월까지만 하고, 부동산 앱에 올라와 있는 매물을 쉴 새 없이 살펴봤다. 그리고 6월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공인 중개소를 다니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지역을 어떻게 정하면 좋을지 고민이었다. 정말로 서울 전체의 매물을 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아내와 나는 함께 ‘우리가 좋아하는 느낌의 동네’를 정하기로 했다. 그동안 예쁘다고 생각했던 동네들, 실제로 우리가 좋아하는 동네, 예전에 가봤는데 좋은 기억이 있는 동네, 어떤 영상에서 봤던 좋아 보이는 동네들을 후보지로 선정했다.

홍제천을 따라 이어진 가좌, 연희 지역은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동네이다. 그리고 연희동이나 연남, 망원은 주로 생활하는 동네이고. 서촌과 광화문, 경복궁 주위, 삼청, 북촌은 (모두가 그렇겠지만) 그만의 분위기가 있어서 너무 매력적인 곳이다.

개인적으로 어쩌면 여기도 좋겠는걸?이라고 생각했던 독립문역 근처와 약수 다산동은 몇 차례 걸어 다니며 다시 살펴봤다. 이 외에도 나쁘지 않은 곳이라 생각한 곳은 합정과 상수 사이 벚꽃길 부분. 충정로역에서 경기대학교 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2차선 길, 효창공원 근처, 증산역과 새절역 사이 불광천을 바라보는 라인. 모두 언젠가 지나가면서 좋다고 생각해뒀던 곳들이었다.

우선 이곳들을 중심으로 상가를 찾아봤다. 물론 아직은 가격이나 상권 형성 같은 것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최대한 열린 마음으로 좋아하는 동네 위주로 살펴봤고, 그러면서 어떤 곳들이 어느 정도 가격으로 형성되어 있는지 알아봤다.


몇 주 동안 내내 매물을 살펴보면서 이런 느낌의 공간은 아니고, 이런 특징은 좋고, 이런 요소가 잘 어울릴 것 같아, 이런 쪽은 완전히 아니야, 같은 내용이 파악되었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한 창업 계획에 잘 어울릴 요소들을 정리했다.


1. 채광이 좋은가.

햇살이 많이 들어오지 않아도 공간이 밝게 느껴지는 곳. 공간이 음침하거나 습한 기운이 느껴지는 것보다 따스한 기운이 느껴지면 좋겠다. 밝고 따뜻한 공간이 중요. 이와 함께 창문이 크거나 창문 밖이 막혀 있지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그래야 채광이 좋을 테니까)


2. 2층, 3층, 4층

아무리 생각해도 그동안 계획한 컨셉에는 1층보다 2, 3층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4층도 고려하기로 생각했다. 이에 대해 나름 합리화를 하기로는, 전철역에서 멀리 걸어가는 것보다 전철역에서 가까운 4층이 덜 힘든 게 아니겠냐고. 그러니 4층으로 올라가도 역에서 가깝다면 그것도 괜찮은 것이다,라고 스스로를 설득했다.


3. 전철역에서 도보 10분

계획하는 컨셉에 따르면 찾아오는 손님이 다수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손님들이 찾아오려면 교통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전철역에서 걸어서 최대 10분. 가급적 걷기 좋은 길로 10분 이내, 라는 기준을 세웠다.


4. 18-24평, 150만원 이하의 임대료

회전율, 테이블 수, 월 목표 매출을 계산했을 때 필요한 공간의 크기,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최대의 임대료를 설정했다. 부동산 앱을 통해 매물을 살펴봤을 때, 이 크기에 이 정도 임대료가 흔치 않지만 없지는 않으니, 찾아보자고 생각했다.


5. 직사각형

공간이 주택처럼 여러 개의 구획으로 나눠진 것보다, 가급적 직사각형으로 반듯한 곳이면 좋겠다. 그래야 컨셉에도 잘 어울리고 공간 활용도 좋을 것 같았다. 게다가 하나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모든 자리에서도 잘 들으려면 반듯한 직사각형이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다.


6. 낡은 느낌

옛날 도서관 같은 느낌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관공서의 작은 도서관에 들어가는 느낌 같은. 신축 건물보다는 낡은 느낌이 있는 오래된 건물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벽돌 건물이면 더없이 좋겠지만.


주로 위 여섯 가지를 중요한 기준으로 생각했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적어 놓은 게 있는데. 이는 그저 참고용으로 정리해 두었고, 실제로 매물을 보면서 아래 내용을 꼼꼼히 따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메모장에 차곡차곡 정리해두고, 매물을 보러 다니면서 틈틈이 읽어서 머릿속에 새겨뒀다.


-연세 많은 건물주

젊은 건물주보다는 연세가 많은 쪽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 이유는 임대인이 상가를 운영하는 목적에 투자 성향이 얼마나 강한가. 그런 측면이 은근히 중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인데. 건물을 통해 단순 임대료 이상의 이익을 원하는, 욕심이 있는 임대인일수록 여러모로 피곤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므로 연세가 있으셔서 큰돈을 벌려는 목적보다 건물에서 나오는 임대료로 적당한 수입을 원하는 수준으로, 자산에 있어서 투자보다 안정기 쪽에 가까운 임대인이 가장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런 성향은 연세가 많고 적고와는 그다지 상관없을지도 모르지만.


-근처 함께 갈 곳이 있는 곳

카페에 온 김에 함께 들릴만한 곳이 있는지. 이를테면 산책로나 공원, 식당이나 문화시설 같은 곳들.


-내 카페이기 때문에 들어갈 수 있는 곳

말하자면 내가 아니면 들어올 사람이 딱히 없는 상가. 다르게 말하면 내 카페 컨셉이 명확하고, 이에 아주 딱 맞는 공간. 거기에 더해 다른 사람들은 잘 생각하지 않는 곳. 이런 곳을 발견할 수 있다면 아주 행운이겠지만. 아무래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가능하면 설비 공사를 적게 할 수 있는 곳 (천장, 바닥, 창문, 화장실 등)

정확하게는 내가 직접 몸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감당할 수 있는 상태인지를 살펴봤다. 이를테면 벽 마감이 너무 좋지 않거나, 바닥상태가 너무 안 좋거나, 기존에 인테리어 된 가벽이 많아 철거할 게 많다거나, 화장실 문제 등을 보면서, 손이 덜 가는 쪽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이렇게 세세하게 조건들을 정리해뒀다. 이런 기준에 부합하는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매물을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이에 딱 맞는 곳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떤 곳이든 무언가는 포기해야 했고, 그 대신 무언가는 얻는 점이 있었다. 무엇을 포기해야 좋을지, 무엇을 얻어야 더 유리할지. 그런 고민을 했는데. 그 정도를 결정하는 건 오직 실제로 현장에서 느끼는 느낌, 그런 본능적인 쪽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다.

결국에는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어떤 느낌을 받는지. 그게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변수였다. 느낌이 좋으면 앞선 조건들이 빈약해도 공간에 호감을 느꼈고, 앞선 조건들이 충분해도 느낌이 안 좋으면 괜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므로 단순히 직감에만 의존할 수는 없는 탓에, 객관적인 판단을 도울 수 있는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상가를 보고 난 다음, 중개사 분과 헤어지고 나면 천천히 걸으면서 체크리스트를 확인했다.

체크리스트는 생각보다 유용했다. 아주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건 아니지만, 상가를 보고 나온 다음 사로잡힌 어떤 기분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사고로 전환할 수 있게 해줬다. 그리고 내가 놓친 부분은 없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매물 체크리스트>

1. 공간을 보면 어떻게 그려갈 수 있을지 떠오르는가?

2. 내가 생각했던 여섯 가지 조건에 부합하는가?

3. 내가 하려는 컨셉에 어울리는 공간인가?

4. 여긴 무엇이 장점인가?

5. 내가 포기해야 하는 요소는 무엇인가?

6. 자연 채광이 좋아 내부가 밝은가?

7. 창문은 얼마나 있고 상태가 괜찮은가?

8. 천장은 어떤가?

9. 바닥은 어떤가?

10. 화장실은 어떤가?

11. 급배수가 있는가?

12. 상가의 전반적인 상태는 어떤가?

13. 위 부분을 내가 몸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14. 내가 직접 몸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은 무엇인가?

15. 설비 공사를 500만원 이내로 처리 가능할 것 같은가?

16. 공실 기간이 긴 매물인가? 왜 길었는가?

17. 구축 건물인가?

18. 건물주의 성격은 보수적인가? 진취적인가?

19. 건물주가 꼼꼼한 타입인가?

20. 근처에 회사가 조금이라도 있는가?

21. 매출 월 1000만원 이상의 카페가 근처에 있는가?

22. 전철역에서 10분 이내, 버스정류장 5분 이내인가?

23. 카페로 오는 길이 걷고 싶은 길인가?

24. 건물의 출입구는 눈에 띄는 곳에 있는가?

25. 근처에 무엇이 있는가?

26. 만약 나가고자 할 때, 수월하게 나갈 수 있는 곳인가?

27. 건축물대장 확인.

28. 근린생활시설 확인.

29. 소방시설 확인.

30. 정화조 용량 확인.

31. 전기 용량 확인.




계속 저울질하게 된다.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보면 볼수록 점점 더 저울질을 하게 되고, 합리화를 하게 되었다. 그렇게 원하는 매물을 발견하지 못하게 되면 될수록, 어쩌면 내가 원하는 곳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할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그럴수록 점점 더 저울질을 반복하고 합리화를 하게 된다.

이때가 가장 문제라고, 가장 위험하다고 알고 있었지만. 그 속에 있는 나는 장기판에 앉은 사람처럼, 두 수 앞을 내다보기 어려워졌다. 시야가 점점 좁혀져 가는 게 느껴졌다. 그럴 때일수록 체크리스트를 봤다. 감정에서 벗어나려 했다. 현재 매물이 객관적으로 어떠한지, 내가 그린 공간에 부합하는지 따져 물었다.

아주 이상적이게, 시간이 많아서 내가 원하는 상가를 발견할 때까지 찾을 수 있다면. 혹은 우연히 내가 원하는 상가를 마침 발견한다면. 또는 돈이 넉넉해서 보증금과 임대료와 공사비를 여유롭게 충당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상가를 찾는 일은 어려울 게 없겠지만.

제한된 시간 안에, 현재 나와있는 공실 중에, 한정된 자본 안에서 내가 원하는 상가를 찾고 있기 때문에 어렵다. 그렇기에 쫓기게 되고 시야가 좁아지는 것 같다. 미리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직접 해보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지 싶습니다. 이 일을 잘 헤쳐 나왔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의 유용한 방법이 있었다면, 앞서 정리한 여섯 가지의 조건과 체크리스트가 도움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음, 그나저나 만약 다시 돌아가서 상가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 어떨까요. 그때는 순탄히 헤쳐 나올 수 있으려나요. 아마도… 그때도 상당한 어려움에 부딪쳐서 애먹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공간을 구하는 건 이처럼 여러모로 어려운 것 같습니다. 이런 일에 경험이 많아서 능숙하게 ‘이건 맞아, 이건 아니야’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 그거 정말 굉장한 능력이라 생각됩니다.


그나저나 한 중개사분께서 말했는데요. 매물을 찾는 어느 분께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희는 괜찮아요. 우리 가게에는 손님들이 찾아올 거예요. 그러니 저 구석의 매물도 괜찮습니다. 보여주세요.”

중개사분이 저곳은 사람들이 아무도 안 가는 곳이라는 설명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이거 참 대단합니다. 이분도 굉장한 능력을 가지신 분인 듯합니다. 둘 중에 어떤 능력이 더 좋은가 하면… 흠, 가능하면 저는 둘 다 가지고 싶군요.



창업 과정

1. 큰 비전을 세우기

2. 비전을 해체하여 구체적인 모습을 만들기.

3. 나에게 커피/카페란?

4. 나는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가?

5. 회전율 정하기.

6. 이상적인 부분과 현실적인 부분을 구분하기.

7. 매장의 운영 흐름 짐작하기.

8. 테이블 수 결정하기.

9. 카페, 그다음을 생각하기.

10. 창업 계획서 작성.

11. 예산 계획 세우기.

12. 상가 체크리스트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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