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달빛아래 별그림자 Jun 24. 2020
큰 거실을 두고 증조할아버지방에 다닥다닥 붙어 앉아 검은 눈동자를 반짝거리며 증조할아버지만 바라보고 있는 증손주들
가장 큰 중학생부터 막내 네 살 까지
증조할아버지의 일제강점기 시절 이야기 군대 이야기 전쟁 이야기를 즐겨 듣던 녀석들
오늘은 또 어떤 이야기의 시작을 하려나 궁금한 듯 눈으로 할아버지를 재촉하며 모여앉았다
그런 녀석들이 귀여우신 할아버지께서는 "민규가 올해 16인가?"하고 물으신다
"네 할아버지 내년에 17. 고등학교 가요 "라고 답을 하니
할아버지께서 " 열일곱? 할아버지는 열일곱에 장가를 들었지 "하신다
아이들은 "헐 ~대박 " 헝아 장가가는 거야" 하며 킥킥거리고
할아버지께서도 "우리 민규도 장가가야지 "하시며 환하게 웃으신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할머니랑 어떻게 결혼하셨어요?"
어느 때보다 신나고 빨리 이야기를 내놓으시라 눈으로 강한 레이저를 발사하는 녀석들이다
60년 이상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할아버지 기억 속엔 어제 일처럼 생생한 듯 바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하루는 옆 마을에 중신 서는 분이 와서는 참한 처자가 있다 하더라
베도 잘 짜고 바느질도 잘하고 못하는 게 없는 참한 처자가 있다는 이야기만 듣고 보지도 않고 혼인을 하게 됐지
아 근데 이런 와보니 베를 짜 본 적도 없고 집안일은 해본 적도 없고 아무것도 할 줄 몰러 이런 참....
너희 할머니가 속여서 할아버지한테 온겨 "
말씀하시며 할머니를 바라보신다
할아버지 옆 이부자리에 누워계신 할머니는 할아버지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저 천장만 바라보고 계실 뿐 아무 말씀이 없다
할머니가 자리에 누워계신지 2년째 할머니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도 2년째다
가끔 하늘을 향해 헛손질을 하는 것외에 늘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곳에 누워있는 우리 할머니 .....
그런 할머니가 무섭거나 가까이 가기 불편할 수도 있을 텐데 이렇듯 녀석들은 하루에도 수십 번 그 방을 드나들며 과자도 먹고 tv도 보고 놀기도 하며 할머니 곁을 지키는 녀석들이 기특하고 고맙다
할머니는 음식을 선택할 수도 아무거나 드실 수도 없이 그저 주사기를 통해 환자식을 조금씩 흘려 드리면 삼켜낼 뿐이다
오늘도 나는 할머니 옆에 누워 마른 손과 볼을 비벼본다
욕심일지 모르지만 이렇게 라도 좋으니 계속 있어달라 기도하며 말이다
3년을 누워만 계셨던 할머니는 우리곁을 그렇게 떠나셨다
할머니가 가시던 그날도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비가 내리는 날이면 난 더욱 할머니 생각이 난다
비 오는 날을 좋아했지만 천둥번개를 너무 무서워해 이불속에 꼭 숨어 천둥번개가 다칠때까지 나오지도 않던 우리할머니가 너무그립다
어릴적 난 비오는걸 싫어했다
비 오는 장마철은 더욱이 더 싫었다 왜냐하면 비가 오는 날이면 칼국수를 먹는 날이였기 때문이다
어릴적 난 칼국수가 참싫었다
비가오는날 이면 오늘또 칼국수겠지
하며 오후쯤 집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마루에 할머니의 칼국수판이 펼쳐져있다
또 칼국수구나 나는 직감한 채 투덜거리며" 할머니 또 칼국수 할 거야?"묻는다
할머니의 반죽은 이미 시작되었고 밀가루와 콩가루를 넣고 꾹꾹 치대기 시작한다
" 뒷곁에 가서 호박 하나 따올래?" 하며 어깨와 허리를 들썩들썩 거리며 반죽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신나 보인다
그리고는 아주 큰 도마를 펴고는 내키 만한 홍두깨로 반죽을 밀기 시작하면 달덩이 만해졌다가 큰 둥근 쟁반 만해졌다가 나중엔 우리 밥상만큼 커진다
거기에 가루를 뿌리고 착착 접어두고 또한 장 또한 장 그렇게 몇 장을 만들어두고는 할머니의 칼질이 시작된다
할머니 칼질 몇 번에 기다란 국수 가락이 커다란 쟁반의 몇 쟁반이 만들어진다
그리고는 커다란 가마솥에 불을 지펴두고는 할머니는 우산을 쓰고 장독대에 담가 둔 집간장을 퍼내어 오신다
그때면 약간 꼬리 한 집간장 냄새가 난다
집간장에 마늘을 퉁퉁 다져 넣고 쪽파를 송송 썰고 깨소금 고춧가루 들기름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놓으셨다
이때 할머니의 양념간장은 꼭 2종류로 만드신다
할아버지와 할아버지 형제들은 고추를 드시지 않기에 고추를 넣지 않은 것과 고추가 들어가야 향과 맛도 좋다는 아버지를 위한 고추 넣은 양념간장 이렇게 두 가지를 말이다
남편과 아들의 입맛을 둘 다 맞춰주고픈 할머니의 배려랄까
커다란 가마솥에는 이미 커다란 멸치와 황태머리가 들어가 푹우려져있다
그걸건져내고는 거기에 집간장을 몇 바퀴 두르시고는 면을 넣는다
어느 정도 지났을까 내가 따온 애호박을 채 쳐 넣으시고는 마늘 파로 마무리하신다
이때 엄마는 곁들일 반찬을 준비하고 우리는 상을 차린다 이날만큼은 늘 요리를 맡아하시던 엄마도 한걸음 뒤로 물러나 할머니의 보조가 된다
안방에 큰상 2개 마루에 2개
우리 옆집엔 나의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우리 앞집엔 할아버지 둘째 동생이
우리 뒷집엔 할아버지 셋째 동생이 살고 계시기에 자주모여 식사를 함께하였고 이렇듯 손칼국수 같은 별식을 먹는 날이면 더더욱 모여 식사를 했기에 큰상이 네 개나 필요한 것이었다
안방의 윗목 큰상에는 나의 증조 할아버지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작은할아버지들
아랫 목상에는 아빠와 아빠의 사촌 어르신들과 나의 남동생
그리고 마루에는 할머니 작은할머니들 그리고 엄마
그리고 또 다른 상에는 나와 언니 그리고 고모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렇게 모두모여 칼국수를 먹기에 엄청난 양의 반죽을 하며 칼국수를 밀어야 했던 것이다
다들 맛있다 맛있다를 연발하셨고 긴 하얀 수염을 쓸어내리시며 증조할아버지께서도 참맛이 좋구나 하신다 증조할머니도 잘했다 잘했다 하시며 맛있게 드신다
나만 툴툴거리며 이게 왜 맛있는 거야 난 라면이 더 맛있더라 저놈의 홍두깨가 사라지면 이 칼국수 안 먹을 텐데 하며 저걸 몰래 내다 버릴까 아니면 가마솥 아궁이에 넣어버릴까 하며 홍두깨를 째려보곤 했다
그땐 잘 몰랐지만 나만 빼고 다들 맛있다는 칭찬에 우리 할머니 입꼬리가 씩 하고 올라가는 웃음을 숨겼던 이유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우리 할머니는 앞서 말한 것처럼 베를 짜 본 적도 집안일을 해본 적도 없이 곱디곱게 아씨로 사셨던거다
그러다 갑자기
5남매 중 장남의 아내 큰며느리가 되신 것이다
아씨 우리할머니도 중신서는분께 속아서 오신건지도 모르겠다
뭘 해야 하는지 할 줄도 모르는 며느리에 반해 증조 할머님의 살림 실력은 보통이 아니셨으니
언제나 증조할머니의 부엌은 반들반들했고 마루는 광이 났으며 증조할아버지는계절별 한복을 입으셨는데
특히 여름에 입으시는
흰모시한복에는 단 한 번도 얼룩 하나 묻은걸 본 적이 없었으며 매일 빨아 칼주름을 다려 할아버지께 아침마다 새 옷을 내놓으셨으니 살림 실력을 알만하지 않은가
증조할머니는 아무것도 못하는 며느리를 가르치기보다는 내가 할 테니 너는 거들거나 다른 것을 하라 하셨기에 우리 할머니의 실력은 나아지지 않았고 그러다 며느리를 맞았는데 그 며느리의 살림 실력또한 뛰어났으니
이때다 싶으셨는지 바로 옆에 집을새로 지으시고는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두 분이 새집으로 이사를 하셨다
며느리가 들어와 요리와 살림도 잘하니 우리 할머니는 더 부엌과 멀어졌던 것이다
그런 할머니가 가장 잘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칼국수였던 것이다
그날만큼은 누구 못지않게 실력을 뽐낼 수 있는 날이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그 많은 반죽을 하면서 힘들기보다 들썩들썩 어깨춤이 나왔던 것이었고 맛있다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웃음이 새어 나왔던 것이다
언제나 부엌은 내구역이 아닌것처럼 멀었고 잘하는 며느리앞에 서시는건 더불편 하셨을 거였기에 칼국수가 아니면 부엌에 들어서지 않으셨다
그걸 알았기에 엄마는 더 자주 칼국수를 해주십사 했던 것이었고 그날만큼은 손을 놓고 보조를 자처하셨던 것이었다
지금은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는 할머니 칼국수
할머니만의 걸쭉한 국물 칼국수에 양념간장을 넣어 휘젓으면 뽀얗던 국물은 어느새 주황빛으로 물이 든다
공장에서 나온 일률적인 모양새가 아닌 딱 우리 식구들이 좋아하는 국수 면발 굵기를 만들어 내셨다
찰지고 부드러운 면발에 금방 마늘어낸 겉절이를 올려 돌돌 말아 한입에 넣으면 후루룩 달려오는 국수가락이 가끔 내 콧등을 친다
가끔 씹히는 호박은 너무 흐물 하지도 않으며 달콤한 맛이 났고
할머니국수엔 할머니만의 냄새가 있었다
구수하고 담백하고 향긋한 할머니만의 냄새~
어디서 맛볼수도 맡아볼 수 없는 할머니의 칼국수 !!!
그땐 왜 그리 칼국수가 싫어 툴툴거렸는지
지금은 이토록 먹고 싶어도 먹을 수가 없는데 말이다
집을 새로 지어 둘러앉아 먹던 마루도 사라지고 없지만 그 옛날 그 집만큼 할머니품도 그립고 할머니 냄새도 그립다
여름 장마철이면 유독 더
할머니의 양념간장에 찰진 칼국수 한 그릇 후루룩 하고 싶다
마루에 앉아 커다란 반죽을 밀며
"뒷곁에서 호박 하나 따올래?" 하던 할머니의 목소리도
너무도 그립다
할머니 지금도 난 할머니가 보고싶어
미안했어 고마웠어 할머니
할머니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