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왔다가 떠나갔다
친구가 엄청 많은 편은 아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나 스스로 나는 적당한 친구들을 사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꼭 동갑내기뿐 아니라 내 나이보다 위, 아래로도 마음이 맞으면 함께 어울리고, 그룹을 만들어서 정기적으로 만나서 술도 마시고, 집으로 초대해서 파티도 열고. 말 그대로 ‘재미있게 같이 노는’ 사람들이 나에게는 ‘친구’이다.
그런데 이렇게 친구의 의미를 동갑내기에서 더 넓은 의미로 확장시킨 데에는 나를 떠나버린 동갑내기 친구들 때문인 것 같다. 한때는 하루가 멀다고 슬립오버(sleep over)를 하고, 함께 쇼핑을 하고, 수다를 떨던 ‘베스트 프렌드’들이 어떤 이는 내가 알 수 없는 이유로 더 이상 나에게 연락도 하지 않거나, 혹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다툼을 하고 나와 인연을 끊고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젊은 날에는 먼저 다시 연락을 하고 자리를 마련해서 뭐가 문제인지 물어보고, 다시 예전처럼 지내자고 용기 내어 이야기도 꺼내봤었다. 그럴 때면 우리는 다시 친구가 돼서 예전처럼 지내지는 것도 같았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그렇게 끊어졌던 우정을 다시 붙였다고 생각했던 친구들이 결국에는 다시 나를 떠나가더라. 내가 그렇게 싫은가? 싫다는데 더 이상 붙잡고 싶지도 않고 사실 자존심도 상했다. 나도 나름 괜찮은 사람인데 매달리는 사람이 이제는 되기 싫었다. 더 이상 연락하기 싫어하는 그 사람이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되고, 나를 아껴주지 않는 그런 사람을 알고 지내고 싶지도 않다. ‘나를 네 인생에서 놓치는 건 너의 큰 실수야’라고 콧방귀를 뀌고 새로운 인연들을 만들고,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참 희한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할 일 없이 가만히 멍 때릴 때면 그 과거의 친구들이 떠오른다. 한 명은 외국에서 교환학생을 하면서 여러 즐거운 추억을 함께 쌓았던 친구인데, 결혼식에 못 와서 미안하다고 따로 축의금을 준 날이 마지막으로 만난 날이 되었다. 다른 한 명은 초등학교 때 성당에 같이 다니던 친구인데, 바로 우리 옆 동네로 신혼집을 차린다더니 결혼식을 다녀오고 나서 연락이 끊겼다. 한 명은 나는 기억도 안 나지만 내가 ‘이제 너도 결혼해야지’하고 한마디 했다고 나랑 이제 이야기하기 싫다고 했다고 다른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다.
다들 내가 우리가 만난 마지막 순간 이후로 더 이상 말도 하기 싫을 만큼 그렇게 싫어졌을까 하고 궁금증이 생긴다. 나한테 왜 마음이 상했는지 한 마디쯤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그들에게 그 한마디를 나눌 가치도 없는 친구였던 걸까? 내가 평소에 그렇게 별로였나? 나는 한 번도 우리 인연이 끊어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없었는데. 상관없다 했지만 내 의지와는 다르게 끊어져 버린 인연에 미련이 남는다. 그들이 그립다기보다는 나 자신이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이 되지 못해서 아쉽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가 그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아줬으면 좋겠고, 내가 얼마나 괜찮은 친구인지 잘 알아줬으면 좋겠다. 그렇게 만들려고 인간관계에 많은 생각을 하고,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진솔된 감정과 착한 마음을 가진 내가 되려고 한다.
괜히 어제 꿈에 나타난 과거의 한 친구 때문에 마음이 뒤숭숭해서 마음을 글로 털어놓아보았다. 남편이 전화로 연락해보라고 하는 말에, 평생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박아서 말했다. 나는 가만히 있었는데 떠나갔으니 돌아오는 것도 그 사람 몫이지, 내 몫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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