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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un 24. 2020

현자 씨의 불친절한 레시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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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자랐다. 엄마보다도 할머니가 좋았고 두 살 터울의 남동생이 태어났을 때 유난히도 젖을 떼지 못하던 나는 결국 할머니의 젖을 물었다. 이미 밥을 먹던 20개월이나 된 나는 그저 젖을 무는 것 자체가 주는 안정감을 잊지 못했던 것 같다. 아직도 할머니 품에 안겨 젖을 빨던 그 시간의 평안함이 힘들 때마다 문득 기억이 나는 걸 보면 말이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내가 서른이 되기 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죽음이라는 건 시간이 흐르면 일어나는 당연한 일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동생들이 결혼을 하고 조카가 태어나고 나도 나이가 조금은 들었다. 가끔 어릴 적 할머니가 해준 음식들이 생각이 났지만 나는 여전히 삶을 회사에 얽매어 놓고 하루하루를 바삐 살아가는 평범한 회사원이 되었고, 그저 그리워만 하고 있다. 


조카가 둘이나 태어났고, 고 녀석들이 무럭무럭 자라 약간의 간이 들어간 음식을 먹게 된 어느 날 문득 이렇게 또 시간이 흐르면 우리 현자 씨의 맛도 어쩌면 그리워 만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어릴 적 할머니의 음식은 내 배 만이 아니라 내 마음도 따뜻하게 채워줬는데, 이렇게 바삐 살다 보면 조카 녀석들은 음식이 주는 따뜻함을 모른 채 그냥 맛있고 배부른 것으로만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고모인 내가 왜 했는지 모르겠지만 걱정과 동시에 슬펐다. 


아주 긴 시간이 흘러 어느 날 현자 씨의 맛이 그리워지면 그리워 하지만 말고 비슷하게 그 맛을 흉내 내고 싶어 졌다. 그리고 점점 잊혀가는 내 고향의 그 음식들도 다른 누군가가 기억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함씨네 비법 아닌 비법이 담긴 불친절한 레시피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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