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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un 25. 2020

35년의 시간을 넘어온 할머니

수제비

2019년 코로나 이전의 평범한 여름이었다. 평일의 밤도 주말까지도 모두 내어준 프로젝트가 끝난 토요일에 작은 동생네 가족이 경기도 근교로 놀러 간다고 했다. 여름휴가도 못 갔던 터라 나도 따라나섰고, 한 시간을 넘게 달려 북한강 자락에 다다랐다. 낮잠을 자다 깬 조카 1호에게 간식도 먹일 겸 차가운 커피도 한 잔 할 겸 해서 빵도 커피도 있는 카페에 들렀다. 강릉에 본점이 있는 큰 카페였다. 차가운 커피와 우유, 그리고 조카가 좋아하는 빵도 두 조각 사서 도란도란 자리를 잡고 앉아 먹었다. 회사일에 이리저리 치인 어른인 나와 동생 부부는 가만히 앉아서 책을 읽거나 아무 생각하지 않고 있고 싶었지만 세상 호기심은 많은 5살짜리 꼬맹이는 좀이 쑤셔도 한참이 쑤신 지 이리저리 몸을 비비 꼬았다.

“고모랑 산책할까?” “좋아!” 우리는 손을 꼭 잡고 카페 주변에 자리 잡은 작은 가게들을 다니며 구경했다.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 앞에서 “우리 아이스크림 먹을까?”라고 하니 꼬맹이는 너무 좋아했다. 아이스크림을 주문하려고 줄을 서 기다리는데 초콜릿 아이스크림 사진을 보더니 조카 1호가 큰 소리로 외쳤다. 


"고모 이거 똥 같지 않아? 똥이야 똥!!"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던가? 급하게 조용히 하라고 말을 했지만 내 반응이 너무 재밌는지 까불대는 5살짜리는 멈추지 않았다. 너는 내 조카가 맞나 보다. 

출처: Pixabay


내가 조카만 하던 어릴 적에 아빠의 직장 때문에 부모님은 두 살 터울의 큰 동생을 데리고 다른 지역에서 살고 있었고,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었다. 막내 동생이 태어나기도 전이니 아마 내가 5살쯤이었을 것 같다. 누군지 기억나지 않지만 멀리서 친척분이 오셨고 할머니는 부랴부랴 점심을 준비하셨다. 오래전 강원도 산골에서는 여전히 손님이 오면 하얀 쌀밥을 대접했다. 고집도 세고 떼도 많이 부렸던 나는 수제비를 해달라고 할머니에게 대롱대롱 매달렸고 하는 수 없이 할머니는 밀가루 반죽을 하셨고 점심으로 수제비를 준비하셨다.  

동그란 점심상을 들여오면서 할머니는 연신 죄송하다고 손녀가 수제비를 해달라고 너무 졸라대서 따로 준비할 수가 없었다고 하셨다. 손님은 괜찮다고 말씀하셨고 다른 찬들과 금방 한 밥은 아니지만 따뜻한 찬밥도 대접해드렸다. 그렇게 밥상머리에 앉은 나는 또다시 할머니를 죄송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왜 그랬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으로 수제비를 뜨면서 외쳤던 그 상황이 기억이 난다. 


“할머니 이거 꾸데기같지 않아? 꾸데기야 꾸데기!!” 


(구더기가 맞는 표현이지만, 5살 즈음의 나는 '꾸데기'라고 했다.)

아! 할머니는 연거푸 애가 어려서 그렇게 말하는 거라고 죄송하다고 말씀하시면서 너무 민망해하셨고 나는 그 모습들이 다 재밌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나는 5살 조카에게서 나를 보았고 나에게서 할머니를 보았다. 할머니의 당혹스러움, 민망함, 죄송함이 35년의 시간을 넘어 나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할머니의 수제비는 투박했다. 서울의 얇은 수제비와는 다르게 밀가루가 두툼하게 씹히는 수제비였다. 따로 멸치 육수를 우려내지 않아도 고소하고 맛있었다. 감자, 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고 국간장으로 살짝 간을 하고 소금을 더해 간을 맞췄던 것 같다.  아마도 다시다도 조금 들어가지 않았을까 싶다. 때로는 할머니가 담근 고추장을 한 숟가락 푹 떠 넣은 고추장 수제비를 해주시기도 했다. 할머니의 손수제비가 생각나는 날이면 나는 엄마 고추장을 한 숟가락 넣은 고추장 수제비를 만들어 먹곤 한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할머니의 구수한 수제비는 만들 수가 없다. 



함씨네 비법 아닌 비법 - 두꺼운 밀가루 반죽+할머니표 고추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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