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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Jun 27. 2020

엄마 양파는 빼면 안 돼?

양배추 샌드위치

어느 날 내가 리틀 포레스트를 무한 반복 재생을 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의 스트레스 지수가 가득 차고도 넘치려고 찰랑찰랑하고 있다는 신호다. 리틀 포레스트 [여름]의 양배추 샌드위치는 나의 여름 메뉴이기도 하다. 


우리 현자 씨는 아주 일찍 결혼을 했다. 그리고 이듬해 나를 낳았다. 현자 씨와 나는 고작 스물한 살 차이. 그래서 내가 19살이던 고3이 되었을 때, 현자 씨는 겨우 마흔이 되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어린 나이에 고3 수험생의 엄마라니! 

내 세포가 활발히 자라고 있던 어린 시절에, 우리 현자 씨도 어렸다. 유난히 빵을 좋아하는 현자 씨는 시내에 (시골은 "시내"라는 곳이 존재한다. 서울 사람들은 모르는 "시내") 나갔다 올 때면, 맘모스 빵을 겨울에는 붕어빵을 사서 자전거 앞 바구니에 담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우리 세 남매는 현자 씨를 오매불망 기다렸고, 현자 씨의 자전거 소리가 골목 시작부터 들려오면 신이 났다. 현자 씨는 환한 얼굴로 "빵 먹자~"며 마당으로 들어왔다. 


시골의 여름은 더웠다. 그 시절 누구나 그렇듯 파란 날개가 윙윙 돌아가는 선풍기로 무더운 여름을 났다. 물론 시원한 계곡이 많은 강원도였지만, 매일 계곡으로 놀러 가지는 않았다. 더운 여름이면 현자 씨도 뜨거운 불 앞에서 점심밥을 짓는 것이 힘들었고 우리 셋도 더운밥을 먹는 것이 힘들었다.

출처 - 영화 리틀 포레스트

그런 날이면 현자 씨는 양배추 샌드위치를 만들어줬다. 커다란 양푼에 양배추, 당근, 그리고 양파를 채쳐서 넣고 마요네즈를 듬뿍 뿌려 버무려놓고 식빵 한 줄을 열어 식빵 한 장에 속을 꾹꾹 눌러 올리고 식빵 뚜껑을 덮어 첫째인 나부터 하나씩 만들어줬다. 그리고 네 번째 양배추 샌드위치는 우리 현자 씨가 앙 물었다. 단지 양배추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이는 순간에도 엄마는 누나가 남동생들의 기에 죽을까 걱정되었는지 남매들의 서열을 지켜줬다. 엄마의 걱정과는 달리 나는 연구실 후배들이 무심코 [형]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누나로 자랐다. 

한 번도 다 만들어 접시에 내어오지 않았다. 현자 씨는 채친 채소를 가득 담은 양푼과 마요네즈 통 그리고 식빵 한 줄을 들고 마루로 왔고, 그러면 우리 셋은 지금 다시 보면 작겠지만 그때는 아주 커다란 양푼에 순서대로 둘러앉아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목이 빠져라 보고 있었다. 물론 수다쟁이 함 씨들이 조용히 있지는 않고 쉼 없이 떠들어 댔다. 어렸던 나는 양파가 너무 매웠다. 


"엄마 양파는 빼면 안 돼?"


"양파가 들어가야 맛있지."


어른의 입맛에는 알싸한 양파가 간간히 씹혀줘야 느끼한 맛을 잡아주지만, 고작 10살 정도였던 나는 양파가 씹힐 때마다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현자 씨는 단 한 번도 양파를 빼 준 적이 없다.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함께 하지 않는 식사는 늘 현자 씨 위주의 메뉴 선정이었다. 어른이 된 지금 뒤돌아 보면 가장 옳은 선택이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고, 10살이면 (물론 동생들은 더 어렸지만) 간간히 생양파 정도는 씹어줘도 되는 나이니까.


양배추 샌드위치는 나에게는 여름 방학을 알리는 신호였다. 


우리 세 남매는 엄마를 가끔 현자 씨 또 가끔은 장여사라고 부른다. "현자"라는 엄마의 이름보다는 엄마, 며느리, 누구의 아내로 너무 오랜 세월을 살아 우리가 가끔 엄마의 이름을 불러준다.

은근 엄마가 좋아한다! 진짜로! 


함씨네 비법 아닌 비법 - 양파는 골라내지 못하게 잘게 다져서 조금만 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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