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왜 감자 수제비에 진짜 감자가 들어 있어요?

감자 옹심이

by 홍차

서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날이었다. 학교 근처 어느 식당에서 감자 수제비를 주문했다. 오랜만에 쫀득한 감자 수제비를 먹을 생각에 들떠 있는 나를 반긴 것은 뽀얀 국물에 담긴 뽀얗고 넙적한 밀가루 수제비와 큼지막하게 썰려 푹 익힌 감자였다. 이게 뭐지? 왜 감자 수제비에 진짜 감자가 큼지막한 덩어리로 들어 있지? 나에게는 너무나 충격적인 모양새였다.


우리 집의 수제비는 두 종류였다. 감자 수제비와 그냥 수제비. 그냥 수제비는 밀가루로 반죽을 해서 뽀얀 국물이거나 고추장을 풀어 얼큰하게 끓인 고추장 수제비였다. 강원도에서는 감자만 먹어? 소리를 하도 들어서 그놈의 감자!라고 외쳐보았지만 감자가 진짜 흔하고 많고 맛있다. 고추장 수제비던 뽀얀 수제비던 애호박과 감자는 늘 한국인의 마늘처럼 들어가 있었다. 채썰기 모양이든 넙적하게 썰은 모양이든 감자가 덩어리째 들어가 있는 수제비를 우리는 그 누구도 감자 수제비라 부르지 않았다. 우리의 감자 수제비는 식감도 모양도 만드는 방법도 달랐다.

나에게 있어서 감자 수제비는 동그랗고 살짝 회색빛이 도는 쫀득하고 국물도 살짝 쫀득하기까지 한 느낌으로 걸쭉했다. 특별히 무언가가 들어가지 않고도 맛있었다. 이런 감자 수제비를 먹고 자란 내가 서울에서 처음 만난 감자 수제비를 마주한 순간은 2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너무나 충격적인 모습이었다. 무언가 주문이 잘못 들어갔구나 싶어서 재차 확인을 했으나, 감자 수제비가 맞다고 하셨다. 너무 이상했다. 나는 그동안 무엇을 먹고 자란 것인가?


내가 어릴 적 먹고 자란 감자 수제비는 감자 옹심이었다. 나는 옹심이라는 말은 감자 수제비의 강원도 사투리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강원도는 감자가 많이 나오는 지역이다. 집에서 조금 더 시골로 들어가면 감자밭이 흔했다. 그래서인지 집에는 늘 감자가 박스로 있었고 밭에 감자를 심어 먹을 양을 키우기도 했었다. 정선의 감자는 6-7월이 딱 맛이 좋을 때다. 감자 옹심이는 우리 집 여름 저녁 단골 메뉴 중 하나였다. 그 더운 여름에 뜨거운 감자 옹심이라니 싶지만 낮시간 내내 땡볕 아래에서 뛰어놀며 땀을 흠뻑 흘린 우리에게는 따뜻한 음식으로 속도 데워주는 보양식 같은 음식이었다.

나는 감자 옹심이를 유난히 좋아했다. 엄마가 해준 감자볶음도 좋았는데 감자 요리 중에서는 옹심이가 단연코 1등이다. 요즘은 감자튀김을 더 많이 먹긴 하지만.

그렇게 자주 먹은 감자 옹심이를 엄마나 할머니가 만드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해가 길었던 여름날은 숨이 턱까지 차도록 뛰어놀아도 환했으니 늘 엄마와 할머니가 애타게 우리들을 불러야 겨우 밥상머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니 감자 옹심이 만드는 장면을 단 한 번도 보질 못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던 20여 년 전에는 감자 옹심이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서울에서 찾을 수 없었다. 강원도가 고향이 아닌 친구들에게 아무리 설명을 해도 알지를 못했다. 경기도로 이사 와서 살던 어느 날 동네에 감자 옹심이 식당이 생겼다. 어릴 적 엄마와 할머니가 해준 그 맛은 아니지만, 그래도 먹을만했다. 어디 강원도가 아닌 곳에서 이런 음식을 먹어보겠는가!

고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같이 다닌 친구와 고향이 경상남도 마산인 대학원 친구가 마침 동네에 놀러 왔던 적이 있었다. 오랜만에 생각이 나서 우리 동네 감자 옹심이 식당엘 갔다. 강원도 친구는 오랜만이라며 너무 맛있다며 먹었으나 경상남도가 고향인 친구는 이런 신기한 음식은 처음 먹어 본다며 식감도 맛도 익숙지 않아 힘들어했다.


날이 점점 더워지니 쫀득한 감자 옹심이 한 그릇이 생각난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만드는 법을 자세히 물어봐야겠다.



함씨네 비법 아닌 비법 - 감자 옹심이의 킥은 바로 강원도 정선 감자이다. 껍질을 까고 가능하면 강판에 감자를 갈아 면 보자기에 넣어 꼭 짜서 물과 간 감자를 분리시킨다. 감자 물은 한 시간 정도 그대로 두면 바닥에 감자의 녹말이 가라앉는다. 가라앉은 녹말에 수분을 빼준 간 감자 덩어리를 잘 섞어 치대 동그랗게 단팥죽의 새알심처럼 만들어 놓는다. 다시물에 간을 하고 애호박과 파 양파를 넣고 잘 빚어 놓은 옹심이를 넣어 끓인다. 너무 뜨거우니, 한 입에 옹심이 알을 쏙 집어넣어 먹으면 낭패를 볼 수가 있다.



에필로그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감자 옹심이 만드는 법을 자세히 듣고는 인생 첫 감자옹심이에 도전했다. 강판은 없으나, 나에겐 강력한 믹서기가 있었기에 든든했다. 3kg의 감자를 모조리 손질하여 갈았다. 3~4인분의 양이 되었다. 엄마는 계속 "네가 어떻게 하려고 그래. 넌 못해."를 얘기했지만, 엄마가 감자 옹심이를 만들던 그때보다 지금의 내가 최소한 스무 살은 많을걸? 이라며 도전했다.

첫 도전치 고는 나쁘지 않았다. 함께 먹어준 동생 부부도 먹을만하다고 했다.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엄마는 사진을 보고선, 생각보다 잘했다고 했다.


IMG_6815.HEIC
IMG_6818.HEIC
IMG_6819.HEIC
왼: 감자를 손질해 믹서기에 간다. 가운데: 면주머니에 넣어 꼭 짠다. 오: 꼭 짠 감자를 그릇에 담고 감자물은 면보를 덮어 한 시간 정도 그대로 둔다.


701B5E0F-FC7F-4F41-9C75-9550C18A48B4.heic
F3E52903-2582-4E6F-B0A9-63067FD68B63.heic
69F4DD0C-ED96-4FF6-B022-B81866E0E4EA.heic
왼: 한 시간 후에 물을 버리면 바닥에 하얀 감자 녹말이 가라앉아 있다. 가운데: 감자 녹말에 꼭 짠 감자를 섞어, 옹심이를 빚어 끓인다. 오: 현자씨의 신김치와 먹으면 맛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그 이름은 바로, 감자 붕생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