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시골의 감자의 맛
같은 강원도 시골에 살았어도 나는 다른 친구들보다 옛날 음식을 많이 알았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던 덕이 크다. 지금은 좀 많이 알려진 강원도 고유의 감자 요리들 말고도 가끔은 같은 고향인 친구들도 모르는 음식들을 나는 먹고 자랐다. 그렇게 나는 더욱 촌스러운 입맛을 차곡차곡 키워가며 자랐다. 어릴 땐 그저 신기했는데 지금은 이렇게나 촌스러운 입맛을 보유한 사람이 80년대 생 중에 나 말고 또 있을까 싶은 생각이 가끔 들기도 한다.
제철에 나는 것들을 주로 먹었던 어린 시절 시골의 간식은 단조로웠고 동시에 풍부한 맛을 가지고 있었다. 할머니는 어디서 이런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내 여름 방학의 사이사이를 채워주었을까 싶다. 할머니의 투박한 간식을 먹을 때도 늘 신기했다. 엄마도 할머니도 그저 마법사 같았다.
여름이다 보니, 그리고 강원도이다 보니 계속 옥수수와 감자 이야기가 나온다. 어쩔 수 없다. 나는 촌스러운 입맛을 가진 80년대생이니까. 여름 방학은 그저 놀기 바빴다. 더웠고 대문 밖을 나가면 그저 자연이었고 같이 놀 동생들도 친구들도 많았다.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뛰쳐나가 얼굴이 팔이 새카맣게 그을리고 손톱 밑이 새까매지도록 뛰다 보면 금방 배가 고파온다. 저녁을 먹기는 이른 시간 그러나 나는 배가 고픈 시간 얼른 동생들과 대문 안으로 뛰어들어가면 우리들 마음을 어쩜 그렇게 찰떡같이 알고 있는지 할머니는 간식을 준비해주셨다. 오후 3시 고픈 배를 부지런히 채우고 얼른 뛰어 나가야 살짝 해가 지려고 할 때 골목 사이사이로 "ㅇㅇ아 밥 먹어라." 하는 소리를 차례로 듣고 집에 들어가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뛰어놀 수 있었다. 덥지도 않은지 땀을 뻘뻘 흘렸고 결국 목을 둘러 땀띠를 달고 살았다.
할머니가 자주 해주셨던 간식 중에 감자 붕생이 있었다. 한참이 커서도 정확한 그 이름을 도저히 모르겠다. 붕쉐~ㅇ이 이렇게 이응을 조금 늘어지게 발음해야 그 느낌이 딱 온다. 할머니의 감자 붕생이 달콤했다. 감자 사이사이에 쫀득한 무언가가 있었다. 뭔지 몰랐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식감에 달콤했다. 그리고 땀으로 키로 다 쏟아버린 내 배를 채우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감자 붕생이는 포크나 숟가락이 아닌 젓가락 한 짝으로 쿡쿡 찔러 먹어야 그 맛이 산다. 압력솥 가득 만든 감자 붕생이 한창 먹을 때였던 우리 남매 셋이 금방 해치웠다. 감자 붕생이를 먹으면서 할머니가 담가준 감주를 한 잔 마시면 더더욱 그 단 맛이 입에서 터졌다. 밥알도 씹히고 좋았다. 우리 집 고추장을 좋아했던 나는 가끔은 감자 붕생이에 고추장을 발라 먹었다. 이 맛 또한 별미였다. 단짠단짠 그리고 쫀득쫀득.
조카 3호가 생긴 후로 엄마가 자주 우리 동네에 온다. 어느 날 갑자기 갑자 붕생이가 생각이 났다. 아마도 더운 여름이라 나도 모르게 내 혀끝에서 촌스러운 입맛이 발동했겠지. 아주 촌스러운 발음으로 "엄마 갑자 붕쉐~ㅇ이 어떻게 만들어?" 하고 물었다. 엄마는 레시피를 알려주면서도 연신 "어휴~ 네가 그걸 어떻게 만들어." 한다. "엄마, 엄마는 내 나이에 내가 몇 살이었는 줄 알아?" 하고 늘 맞받아친다. 마침 전기밥솥을 없애고 압력솥과 무쇠솥으로 밥을 해 먹은 지 2년이 넘어 나에게는 딱 좋은 크기의 압력솥이 있었고 엄마에게서 들은 레시피는 쉬웠다. 실은 재료는 간단했지만 그 방법은 쉽지 않았다.
감자 껌질을 벗겨 넣고 밀가루를 수제비 정도의 되직한 반죽은 아니지만 전을 부칠 때처럼 묽어서도 안 되는 몽실몽실한 반죽을 만들어서 휘익 붓고, 압력솥에 불을 올린 다음 감자가 다 익으면, 물론 열어보지는 못한다 그러나 감자가 다 익으면 감자와 밀가루를 휙휙 재빠르게 깨서 뭉친다. 밀가루가 너무 덩어리 져서도 안되고 흩어져서도 안된다. 아!! 할머니가 그리고 엄마가 감자 붕생이를 만드는 것을 단 한 번도 지켜보지 못한 자의 최후가 이런 거다. 아주 간단한 재료에 아주 간단한 레시피인데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 결국 엄마는 큰 동생네서 감자 붕쉐~ㅇ이를 만들어 우리 집으로 왔다. 방금 만들어서 따뜻한 감자 붕생이를 들고 올케와 함께 놀러 왔다. 물론 큰 동생네서 우리 집까진 걸어서 10분이 걸릴까 말까 한 한 동네서 산다. 더운 여름날이라 올케와 차를 타고 왔겠지만, 나는 부랴부랴 마켓 컬리 서 주문해둔 바질 페스토에 펜네를 삶아 비벼 치즈를 솔솔 뿌렸고, 두부면에 토마토, 양파, 파프리카를 넣어 비빔면을 간단히 준비했다. 촌스러운 맛과 조금은 도시스러운 맛의 조화.
엄마의 감자 붕생이는 밀가루가 아닌 감자가루가 들어갔고 조금 더 쫀득했으며, 마침 아빠가 정선에서 햇감자를 구매해 한 상자 택배로 보내줬기에 감자에서도 분이 팡팡 터졌고 달콤했다. 딱 정선의 감자 붕쉐~ㅇ이 맛이었다.
함씨네 비법 아닌 비법 - 감자밥과 마찬가지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꼭 강원도 정선의 감자로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감자와 밀가루가 살짝은 압력솥 바닥에 누른 것이 좀 더 고소하고 맛있다. 여름 감자만으로도 충분히 달지만 좀 더 간식의 맛을 느끼고 싶다면 뜨거운 김이 올라올 때 설탕도 솔솔 뿌려서 같이 휘적휘적 섞어주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