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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차 Mar 10. 2024

3월 10일

친구야 노올자~

주말이면 고모집에 놀러 오는 첫째 조카가 몇 주만에 우리 집에 왔다. 아기 때부터 옛날 얘기를 해주면서 재웠던 까닭인지 나랑 잘 때면 늘 "고모 어릴 적 얘기해 줘."라고 한다. 

고모 이제 기억이 잘 안나라고 말을 하면, "했던 얘기 또 해줘." 하고 받아친다. 

어쩜 그렇게도 나의 어릴 적과 나의 할머니의 모습이 고대로 보이는지. 할머니와 자던 나는 할머니의 어릴 적 얘기를 듣는 게 좋아서 늘 밤마다 졸라댔고, 지금의 조카가 나에게 그러고 있다. 

주말마다 와서 온 집을 어지르고 매끼를 해먹이고 하는 통에 조금은 힘들지만 평소 고요한 내 집에 주말만큼은 웃는 소리 잔소리하는 소리가 섞여 나온다. 이미 조카가 커버린 친구들은 지금을 즐기라고 한다. 곧 너를 찾지 않을 때가 올 것이라고. 나도 안다 곧 조카는 고모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것이 훨씬 재밌을 거라는 거. 물론 지금도 친구가 먼저이긴 하다. 

"너도 곧 친구랑 주말마다 노느라 고모집에 안 오겠구나."

"아니야. 친구들도 스케줄이 있고 엄마한테도 다 허락을 받아야 하니까 주말에 친구 만나는 건 쉽지 않아."

"그래? 고모는 어릴 때 친구들도 고모도 아무도 학원을 안 다니니까 매일 놀았어."

"어떻게 만났어?"

"그때는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이고 고모랑 친구들은 모두 주택에 살았어서 그냥 친구네 집 앞에 가서 친구 이름을 부르면서 누구야 노올자~ 하면 친구가 나왔지."

"초인종을 누르고 친구 엄마한테 허락을 받았어?"

"아니, 초인종이 있는 집이 별로 없었고 대문이 열려 있어서 대문 밖에서 소리치면, 친구가 나오거나 아니면 친구 엄마가 나오셔서 놀러 나갔다. 하셨지."

"그래서?"

"그래서? 친구가 나오면 친구랑 또 다른 친구집 대문 앞에서 또 누구야 노올자! 하면 그 친구가 나와. 이렇게 여러 명이 모여서 술래잡기, 비석치기, 땡놀이, 일단이단, 땅따먹기 하면서 놀았지. 딱지도 치고 가끔은 친구 집에서 책도 읽고."


친구의 스케줄 따위는 미리 생각지도 않고 학교 끝나고 집에 오면 가방 던져 놓고 약속도 안 한 친구네 집에 무작정 찾아가서 같이 놀고는 해지기 전에 집에 들어와서 동생들이랑 만화영화 보다가 저녁 먹고 또 놀다가 내일은 뭐 하고 놀지 고민하면서 잠들던 일상. 그때도 참 좋았는데 시간이 많이 흐르고 난 지금 되돌아보니 너무나도 좋았던 시간이었다. 


다음 주말에도 조카가 놀러 오면 내가 어릴 적에 무엇을 하고 놀았는지 얘기해 줘야지. 너는 그저 신기하고 상상해야 하는 아주 먼 옛날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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