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왜 이러지?

홍콩 TRANS LANTAU BY UTMB 트레일런 대회후기

by 이태준 타잔


2022년 8월 화대종주, 9월 Korea50K, 10월 UTNP(영남알프스 9봉)에 이어 올해 5월 Korea50K를 마치고 나니 트레일런에 재미가 붙으면서 어느 순간 프랑스 샤모니에서 매년 열리는 UTMB 세계챔피언쉽 대회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그때 친구 강빵으로부터 홍콩 대회(Trans Lantau by UTMB)에 같이 나가자는 제안을 받았다. UTMB 챔피언쉽에 나가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필요조건으로 유효한 점수(UTMB Index)와 UTMB에서 주관하는 대회에 참가할 경우 부여되는 러닝스톤이 있어야 하는데 홍콩 대회 직전 참가할 트랜스제주대회에서 주는 러닝스톤 3개로는 뺑뺑이에 당첨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놈의 돌멩이를 더 줍줍 하기 위해서 해외 대회에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나서 일주일쯤 지났을까, 등록을 하려고 홈피에 들어가 보니 100km 종목은 이미 마감되어 버렸다. 어차피 100K(킬로미터)가 아닌 100M(1마일은 약 161킬로미터)에 도전해 보고 싶었는데 장거리에 대한 경험도 쌓을 겸 눈 딱 감고 그냥 등록해 버렸다.

2023년 10월 7일에 열린 제주대회(Trans Jeju by UTMB)는 에이지 2위라는 좋은 성적으로 완주하였지만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깊었다. 3주 이상 한의원과 정형외과를 오가면 허리와 왼쪽 무릎치료를 받았지만 회복은 더디기만 했고 그 와중에 춘천마라톤대회에 참가해서 갑장 친구들과 환갑기념 마라톤을 어렵게 뛰고 나니 무릎과 허리 상태가 더 나빠졌다. 2주도 채 남지 않은 홍콩대회, 다른 뾰족한 수도 없어 강빵의 충고대로 “쉬는 것이 최고의 치료이다”라는 생각에 조깅조차 하지 않고 대회 전날까지 빈둥거렸다.

저가 항공을 이용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항공료는 싸지만 대부분의 부가서비스는 모두 유료이다. 먹는 거, 짐 부치는 거, 좌석 선택하는 거, 하다못해 문자예약 서비스까지…. 그래서 비용도 절감할 겸 부치는 짐 없이 예약을 했었다. 그런데 대회를 얼마 앞두고 강빵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스틱은 어떻게 할 것인지… 스틱은 생각조차 못했는데, 헉~ 스틱은 수화물 안에 넣어 비행기를 탈 수 없는데, 대략난감이다. 처음에는 강빵더러 “그냥 스틱 없이 하지 뭐”라고 자신있게 대답했지만, 전화를 끊고 곰곰 생각해 보니 좋지 않은 무릎 상태로로 스틱 없이는 완주가 불가능하다는 나름 결론에 도달했다. 부치는 짐을 추가하기 위해 온라인상으로 예약을 변경하려 했지만 매번 에러가 떠서 할 수 없이 항공사에 전화를 해 보지만 누군가 받고는 이내 끊어 버린다. 이래서 저가항공인가 투덜거리며 혹시나 하고 홧츠업에 메시지를 보내니까 신기하게도 답이 온다. 그리고 한 시간 이상 이것저것 물어오는 질문에 답하고 나니까 마지막으로 하는 말이 “누군가가 내게 전화할 것이니 기다리라고…” 난, 바로 처리해 줄 것을 기대했는데, 이 친구 한 시간을 허비하고 나서 하는 말이 또 기다리라고??? 그러고 나서 조금 있다가 항공사로부터 또 다른 메시지가 도착했다. 방금 전 도와준 직원의 친절도가 어떤지 평가해 달라는 것이었다.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흐흐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노력이 가상하니 에따 모르겠다 별 다섯 개다.

11월 10일 - 대회 당일,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 모두 두꺼운 외투를 입고 거리를 다니지만 난 홍콩의 날씨에 맞추어 가벼운 옷차림으로 집을 나선다. 탑승동에서 만난 강빵은 이미 식사까지 끝내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저가 항공이라 점심이 안 나온다는 강빵의 말에 정신이 퍼뜩, 서둘러 점심식사를 했다. 이제 내년이면 나도 백수가 되는데 앞으로는 이런 저가항공에 잘 적응해야 할 텐데 35년간 회사를 다니면서 몸에 밴 습관이 잘 고쳐지지 않네.

홍콩 공항에 도착하니 후덥지근한 날씨에 머리가 아파온다. 기온이 30도 가까이 높은 데다 습도까지 높은 아열대 해양성 기후에 아직 몸이 적응하지 못해서이리라. 대회 출발지인 Mui Wo로 한 시간여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해는 져 버렸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휘황찬란한 불빛이 비치는 대회장은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배번을 찾아들고 저녁을 먹으러 주변을 뒤져보지만 식당이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공항에서 가까운 Tung Chung에서 저녁을 해결했어야 하는데… 후회해 보지만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게 우리 인생인 걸. 한참을 뒤지고 나서야 문이 열린 조그만 식당을 발견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밤 10시 – 조금 후에 시작하는 대회를 위해 뭐라도 먹어서 에너지를 충전시켜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100K에 출전하는 강빵은 출발시간이 다음 날 아침 9시여서 홍콩공항 안에 있는 호텔로 되돌아가고 나 홀로 이 섬에 남겨졌다. 어두운 길 한쪽에서 옷도 갈아입고 대회 준비를 하다 보니 좀 외롭기도 하고, 좀 처량하기도 하네. 한 아주머니는 주욱 펼쳐놓은 많은 트레일런 물품을 한 번 쳐다보고 내 얼굴을 물끄러미 한 번 쳐다보더니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지나간다.

대회장으로 가보니 벌써 많은 선수들이 출발준비를 마치고 유쾌한 에너지를 뿜어내고 있었다. 사진도 찍고 친지들과 왁자지껄 떠들면서 곧 시작될 대회를 위해 몸과 마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국제트레일러닝 대회치 고는 전체 인원이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삼백여 명쯤 될까? 젊은 한국 사람들도 보였다. 드디어 “아유 레디?”라는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출발 카운트가 시작되었다. 몸은 천근만근 무겁고 컨디션은 엉망이지만 뛰다 보면 좋아지겠지 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나도 무리에 뒤섞여 출발했다.

첫 CP까지 9.8km는 오르막이 거의 없는 해안 주변 임도 또는 좁은 포장길이 많았다. 최대한 천천히 뛰어 보지만 몸 안의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고 괴롭힌다. 더위를 먹었나, 두통도 여전하다.

두 번째 CP까지 9.2km는 조그만 오르막과 내리막이 반복되었다. 산 위에 오르면 조금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살 것 같다가도 다시 내려오면 후덥지근하다. 벌써 몸은 기진맥진, 숨이 차고 가슴도 답답하다. 이 가슴 답답함은 뭐지? 심장에 또 문제가 생겼나, 자꾸만 불안해진다. 포기할까? 아니지, UTMB를 가려면 어떻게든 완주는 해야 해. 그럼, 걷더라도 완주는 해야지…

세 번째 CP까지 10.7km는 길게 이어진 오르막과 마지막에 내리막 코스. 계단이 징그럽게 이어져 있는 난코스이다. 뛰기를 포기하고 걷기 시작한 지도 한참 지났건만 몸이 회복되기는커녕 걷기조차 힘들어 앉아서 쉬는 시간이 자꾸만 길어진다. 앉아서 쉬고 있는데 어느 젊은 한국인 커플이 내 앞을 지나가면서 하는 대화가 귀에 들어왔다.
“오빠, 나 더위 먹었나 봐~~ 힘들어 죽겠어”, “나도 힘들어, 알바를 얼마나 했는지 몰라”, “나, 포기할 까봐~~”, “안돼, 완주해야지!!!”

고도가 높아지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비가 그치고 나니 운무가 눈앞을 가려 헤드랜턴을 밝게 조정해도 한 발자국 앞도 안보였다. 아무도 없는 밤길을 혼자 처벅처벅 걷는 게 오늘따라 청승맞게 느껴진다. 이럴 때일수록 무리를 지어서 다녀야 하는데 내 속도가 쳐지면서 비슷한 그룹은 이미 다 앞서 가버렸고 가끔씩 새로운 그룹이 지나가도 내가 따라갈 힘이 없으니 난 계속 혼자일 수밖에 없었다. 야간에 무리 지어 다녀야 하는 이유는, 함께 레이스를 하다 보면 외로움과 두려움을 잊고 심리적으로 편한 상태가 될 뿐 아니라 여러 개의 헤드랜턴이 모이면 어두운 산길이 대낮처럼 밝아져 혼자일 때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렵게 어렵게 CP에 도착하니 새벽 4시가 되었다. 계속 가야 하나, 아님 무리하지 말고 깨끗이 포기할까 고민스러웠다. 앞으로 100km가 더 남았는데 100km는 고사하고 20km도 이 몸 상태로는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설사 간다고 해도 몸에 남을 후유증을 생각하면 포기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아니야, 이건 게으르고 무리하지 않으려는 좌뇌의 선동이고 자기 합리화일지도 몰라.... CP 한 켠에는 레이스를 포기하고 편하게 앉아 쉬고 있는 유럽인이 눈에 들어왔다. 부러웠다. 그래, 담에 다시 시작하자. 포기하고 나니 마음이 평온해진다. 자고 있을 강빵에게 DNF (Did Not Finish) 사실을 알린 후 비상 블랑켓을 덮어쓰고 긴 의자에 누워 잠을 청해 본다. 산모기가 성가시게 달라붙는다.


아침 6시가 되니 버스가 다니기 시작한다. 숙소가 있는 Mui Wo로 가는 버스 방향이 헷갈려서 운전기사에게 “Is this bus going for Mui Wo?” 물으니 맞단다. 그런데 버스 안에서 누군가가 껄껄 웃고 있었다. 헐~ 강빵이 타고 있었던 것이었다. 9시 출발이지만 잠이 안 와서 일찍 나섰단다. 순간 내가 보낸 카톡 소리에 잠이 깬 건 아닌가 미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 시간에 서로 만나지 않았어야 했는데 우연과 우연이 겹쳐졌다.


대회장에 도착하여 강빵과 기념사진을 찍고 무사 완주를 기원하는 파이팅도 해주고 출발선을 넘어 힘차게 뛰어나가는 선수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호텔로 돌아왔다. 당초 완주 후에 잠깐 샤워나 하려고 방을 예약했는데 하루 먼저 체크인을 하자니 좀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마치 패잔병처럼 내 자신이 측은하게 느껴졌다.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아저씨는 연신 신나게 떠들면서 커피와 따뜻한 식사를 내어오고 방을 하나 마련해 주었다. 그것도 추가 비용 한 푼 안 받고 모두 무료로 말이다.


목욕을 하고 나서 작은 시골 마을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있는데 강빵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인도 대회를 포기했노라고…. 헉!!! 어째 이런 일이, 초반에는 몸이 이국적인 기후와 풍토에 적응할 때까지 그냥 천천히 걸으라고 신신당부했건만, 너 만은 완주하리라 굳게 믿었는데..., 컨디션도 안 좋은 데다가 구토가 계속 나와 더 이상 뛸 수 없었단다. 왠지 내가 일찍 포기한 것 때문에 강빵도 멘탈이 약해져 포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나 강빵이나 레이스를 완주한 후 잠깐 들러 샤워나 하려고 예약했던 호텔이었는데, 운명의 장난처럼 둘 다 DNF 하여 그 좁은 방 작은 더블 침대에 두 사람이 길게 누워 잠을 청하려니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그러면 또 어떤가, 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홍콩에서 좀 쉬다가지 라고 생각하니 좀 마음이 편해졌다. 그날 밤, 둘 다 피곤했던지 꿀잠을 잤다.


다음 날 이른 아침 강빵과 함께 팬티만 걸치고 바닷가로 나갔다. 수심이 깊지 않고 안전 펜스도 쳐져 있어서 수영하기에는 그만인 해수욕장이었다. 수온도 따뜻해 몸에 닿는 바닷물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바다 쪽으로 수영해서 나가보니 목이 긴 백학처럼 생긴 하얀 새들이 펜스 위에 길게 줄지어 앉아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내가 수영을 할 수 있음에 감사했고, 비록 레이스를 중간에 접었지만 아름다운 홍콩의 아침바다를,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어 행복했다. 야호~~, 신난다.


아침을 먹고 홍콩 시내 관광을 하려고 오전 10시쯤 호텔을 나서는데 많은 선수들이 결승선을 향해 하나둘 들어오고 있었다. 50K, 100K, 130K 선수들이 모두 비슷한 시간에 뒤섞여 들어오고 있는 것이었다. 옷은 땀에 찌들고 다리와 신발은 흙투성이였건만 결승선을 향하는 이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더욱이, 내가 6시간 만에 경기를 포기하고 이틀 동안 빈둥거리는 내내, 그 긴 시간 동안, 이들은 산속에서 악전고투하면서 달리거나 걸었던 것 아닌가?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박수를 치고 엄지 척을 내밀었다. 기록과 순위보다 완주 자체가 아름다운 승리인 것이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이들이 진심으로 존경스러워 보였다. (끝)


100M 대회 출발전
100K 대회 출발전
Mui Wo 앞 바다
홍콩시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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