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동반주

- 2024.4.6 장수트레일레이스 70K.

by 이태준 타잔

작년에는 봄에 열린 코리아50K, 가을에 열린 제주 100K 트레일런 대회에 게으르미와 함께 참가하면서 훈련도 늘 같이하였다. 게으르미는 일산호수마라톤 클럽에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갑장 친구인데 트런을 같이하면서 급격히 가까워졌다. 종교, 철학, 정치, 개인취향은 물론이고 이혼가정에서 성장하여 80년대 치열하게 대학생활을 한 것까지 서로 닮았다.

훈련은 주로 북한산에서 했는데(은평둘레길 24km, 도봉산둘레길 34km, 북한산둘레길 41km, 북한산순환둘레길 62km, 오산종주 41km) 같이 달리는 내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운동과 정치사회 이야기, 젊은 시절 과거 이야기, 가족과 친지 이야기, 시시콜콜한 생활 이야기기까지 떠들면서 뛰다 보면 힘도 덜 든다. 또한 산에서 안전사고가 생긴다 해도 옆에 동반자가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가? 둘 다 환갑의 나이이지만 산다람쥐 마냥 잘 뛴다. 실력도 비슷하여 그때그때 컨디션에 따라 한 번은 게으르미가 끌어주고 한 번은 내가 끌어주고 하면서 서로 응원하고 격려한다.

올해도 작년에 이어 코리아50K 대회에 참가하려 했지만 동작이 꿈 뜬 나로서는 접수령을 넘지 못했다. 온라인 참가신청을 하려고 막 준비하는데 불과 몇 분 만에 조기 마감되었다는 것이다. 요즘 젊은 층을 중심으로 트레일런이 유행하고 있다는 말이 실감 났다. 게으르미의 경우에는 코리아50K 대회날과 큰 딸 결혼식이 겹쳐서 아예 대회에 나갈 수가 없었다. 우리는 포기하는 대신 비슷한 시기에 개최되는 다른 대회를 찾기로 했다. 그러다 또 다른 갑장 친구 밥몽이 장수트레일런 대회를 추천하였고 게으르미와 나는 이 대회 70K 부문에 참가신청하였다.

작년 말에 대회 등록을 한 후 날씨도 그렇거니와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는 대회준비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작년 가을 이후 부상과 자격증 준비로 운동을 하기 어려웠고, 게으르미는 유독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만 되면 으레 동면에 들어가기 때문이었다. 장수 대회는 거리가 제주 100K보다 짧지만 사실 총 상승고도가 5000m로, 제주대회 4000m보다 높아 전체적으로 더 힘든 코스다. 시간은 금방 흘러가 버렸다. 대회 6주 전, 더 이상 게으름을 피우다가는 완주도 못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꼈고 2월 말 드디어 우리는 첫 연습을 시작했다. 부담 없는 은평둘레길부터. 이어서 도봉산둘레길, 북한산둘레길, 북한산순환둘레길 한 번씩 돌고 마지막으로 대회 전주에는 다시 은평둘레길로 대단원의 훈련을 마무리하였다. 훈련을 시작할 때만 해도 겨울의 매서운 바람과 곳곳에 쌓인 눈 위를 뛰었는데 마지막 훈련을 할 때는 산수유, 진달래, 개나리와 산벗꽃까지 이미 따스한 봄이 성큼 와버렸다.

북한산둘레길을 뛰던 어느 날, 게으르미가 오른 무릎에 이물감이 느껴져 동네병원에 갔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게으르미는 대회 참가 전에 무릎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인대강화 주사를 맞고자 했지만 의사는 MRI를 찍어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장수 대회 며칠 전에 큰 병원에서 찍은 MRI 결과가 나왔는데 반월상연골판이 완전히 찢어졌다는 것이다. 달리기는 절대 하지 말고 대신에 수영이나 자전거를 타라는 의사의 권유와 함께 계속 달리기를 하면 관절염으로 진행하여 조만간 인공관절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강력한 경고를 받았다는 것이다.

7년 전 변이성협심증과 폐동맥고혈압을 진단받았을 때 생각이 났다. 마라톤과 같은 심한 운동은 절대 하지 말라는 의사의 말에 한동안 나는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는 무력감. 삶의 질 문제라기보다 삶의 의미라고 느껴졌었다. 그런데, 게으르미가 지금 그런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다. 지금 얼마나 우울해하고 있을까? 게으르미가 달리기를 하지 못하면 앞으로 나는 누구와 같이 산을 달리지? 그동안 같이 산속을 누볐던 순간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산을 달리는 것 - 특별할 것 별로 없는 힘든 시간이었지만 앞으로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진한 아쉬움과 상실감이 몰려든다. 게으르미에게 전화했다.

“…. 그래도 이번 대회는 나갈 거야. 대회 후에는 치료에 전념해야겠지. 어쩌면 이 대회가 마지막으로 참가하는 트레일런 대회가 될지 몰라…”

대회 당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내가 준비해 온 아침을 게으르미, 악어(클럽 후배)와 같이 먹고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대회장을 향했다. 안개가 자욱하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오늘 날씨가 좋을 거라는 징조다. 간단한 개회식을 마치고 70K 부문 약 220명의 참가선수들이 출발선 앞에 섰다. 5시 정각 - 나와 게으르미, 그리고 악어는 후미 그룹에서 출발했다. 최대한 천천히 가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입상이 목표가 아니라 완주 자체가 목표다. 자칫 잘못하면 게으르미의 무릎이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말이다. 반농담으로 말했다.

“오르막에서는 걷고, 평지에서는 조금 빨리 걷고, 내리막에서는 천천히 걷자”

사실 무릎에 걸리는 부하는 내리막에서 가장 크다. 내리막을 내려가는 모습을 보면 대충 나이를 짐작할 수 있다. 가속도를 붙여 달려 내려가는 사람들은 대개 20~30대, 차분하게 내려가는 사람들은 40대, 천천히 내려가는 사람들은 50대, 한 발 한 발 종종걸음으로 신중하게 내려가는 사람들은 60대 이상…

무릎에 문제가 있는 것을 알면서도 나를 위해서 대회를 포기하지 않고 대회에 참가한 게으르미가 고마웠다. 그래, 같이하는 마지막 트레일레이스가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순간을 맘껏 즐기자.

해가 뜨면서 산세와 숲길의 형상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숲 속에서는 산새들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몸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아침 기운에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이 내 얼굴을 가볍게 때린다. 너무 좋다. 오계치와 팔공산을 오르면서 보는 경치도 일품이었다. 끝없이 이어진 산맥과 가득 찬 운무가 신비로웠다. 우리는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셀카를 찍고 멋진 풍경을 사진에 담느라 정신이 없었다. 후미 그룹이라 그런지 여유 있게 걷는 참가자들의 모습이 여기저기 보인다. 앞 그룹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여유로움이다.

초반부터 나는 앞으로 나가지 않고 게으르미 뒤에 붙어서 뛰었다. 자칫 내가 앞에서 레이스를 이끌다 보면 나도 모르게 페이스가 빨라져 게으르미에게 부담을 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뒤에서 보니 앞에서 뛰고 있는 게으르미의 뒷모습이 평소 같지 않게 불안정하고 자주 중심을 잃는다. 그리고 천천히 가는데도 힘들어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평소의 그가 아니다. 아마도 부상당한 무릎 때문이리라.

대회 코스는 거리에 비해 총 상승고도가 높아 난이도가 상당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대부분 트레일이 흙길이어서 피로도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레이스의 절반을 끝냈지만 피로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신덕산 마을을 지나면서 코스가 겹쳐 70K 선두권과 20K 선수들과 마주치며 눈인사와 함께 서로 파이팅을 외쳐주다 보니 다시 힘이 솟는다. 게으르미도 다시 살아나고 있었다.

50K 지점을 지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대회가 게으르미와 함께하는 마지막 대회라면 무릎의 안전도 중요하지만 대회의 추억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마라톤을 완주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마지막 5km, 10km를 걷지 않고 처음 속도를 유지하면서 완주했다면 그 성취감과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트레일런도 마찬가지다. 그래, 예전처럼 뛰어보자. 게으르미와 내가 지금까지 뛰어왔듯이 그렇게 뛰어보자. 내가 앞에 서서 조금 페이스를 올려본다. 게으르미도 내 생각을 알아챘는지 열심히 따라온다.

당초 목표는 식당 문 닫기 전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뛰다 보니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해 버렸다. 드디어 호수를 지나 종합운동장이 보이고 결승점에 도달하였다. 우리는 어깨동무를 하고 스틱을 높이 쳐들며 멋지게 결승점을 통과했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몰려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50K와 100K에 이어 게으르미의 세 번째 트레일레이스가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총 거리 68k, 누적상승고도 +4700m, 완주시간 14:11:51 (순위 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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