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20대때
음악공부를 한다는 이유로,
유학을 가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상황에 맞지 않는 꿈을 꾼다는 이유로.
유학 다녀와서도 음악으로 먹고 살기 힘들기 때문에.
그리고 넌 그럴만한 엘리트가 아니기때문에, 어중간하게 음악하고 살꺼면
직장생활하며 평범하게 결혼하고 아이낳고 사는 것이 가장 속편한 삶의 방식이라고
얘기하는. 얘기+강요하는.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어른이랍시고,
이유없이 나를 구박하는 어른들을 마주할 때면
마음에 온갖 파도가 요동을 쳐 모든 것을 엎고,
이 세상을 뒤집어 흔들고 싶었다.
그 때의 감정은 오랫동안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어쩌면 그 분노의 감정이 그 기분이 지금 나를 살게했다.
내가 나중에 너보다 더 잘살고 있다라는 것을 보여주겠다,라는 원동력으로 살았다.
이 세상이 한 아이에게 희망을 말하지 않고,
손에 잡히는 것들에 대해서만 얘기하는.
그래서 아이들의 입에서 무서운 단어들이 나오기도 하는 이 삭막한 세상은 내가 성장하는 데 공포를 주었다.
과연 이게 맞는걸까? 수년간 많은 고민했다.
살아가는 방식에 정답은 없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타인이 조금 다른 태도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먼저 인생을 산 사람이 나이가 어린 사람의 삶을 비난하는 일은 하지 말아야한다.
다른 생각이 변화를 만들고, 변화는 움직이게 한다.
변화가 두렵다면, 움직이는게 싫다면, 적어도 상처는 주지 말아야한다.
꼰대라는 말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르는 말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한 자신이 없는 사람들이 주변 사람들에게 질척대며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라고 나는 정의를 내리고 싶다.
물론 나의 경우는 나이 든 꼰대가 날 힘들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돌아보니, 나이보단 사람인 것 같다.
스스로를 사랑하면 남에게 자신의 방식을 강요하고, 비난할 여유가 없다.
모두가 건강했으면.
여전히 나는 이상을 꿈꾼다.
오늘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