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흘러 부산 광안리에 위치한 예술공간 '라움 프라다바코'이 내년이 되면 횟수로 벌써 3년차가 되어간다. 공간을 꾸리는 일들에 재미가 붙어 서면에 '프라다바코 플레이' 2호점 공간을 하나 더 오픈하였다. 우리 공간 안팎으로는 다양한 활동들이 일어나고 있다. 두 개의 공간이 거의 오픈하자마자 코로나라는 바이러스에 쉽지 않은 상황에 놓였지만, 나는 이러한 상황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인간과 예술의 존재, 삶과 예술의 상관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우리 공간에서는 70석 규모의 살롱콘서트나 하우스콘서트의 성격을 지닌 공연이 주로 열린다. 기획공연, 대관공연, 초청공연, 라이브 방송 공연 등 갖가지 공연을 진행하면서 다양한 성향을 가진 예술가들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새로운 에너지를 얻게 되었다. 특히, 2020년 지난 9월. 코로나 19로 한참 지쳐있었다. 바이러스로 인해 활동이 줄어 시간적인 여유는 생겼지만 그간 예정되었던 공연 및 사업들에 대처하는 방안을 찾느라, 그리고 일정을 연기하고 추스르느라 쓴 기운이 거의 다 할 때쯤이었다.
예술공간 라움 프라다바코_공간내부
가수 강샤인의 하우스콘서트
서울에서 가수 강샤인(이강윤), 그러니까 테너 이강윤의 연락을 받았다. 우리 공간에서 하우스콘서트를 진행하고자 하는 문의였다. '아, 이제는 서울에서도 찾아주시는구나.' 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지쳐본 사람은 알 마음이겠다. 한참 지쳐있던 나는 '그래, 코로나 시대이지만 이 정도면 무지 노력하고 있어. 이만하면 됐어'라는 생각으로 어떤 일에도 크게 기쁘거나 슬프거나 하는 미동이 없는 조금은 마음이 밍밍해져 있는 상태였다. 마음을 조금 달래고 싶어 우리 공간에서 열린 강샤인의 하우스콘서트를 무대 뒤 저 끝에서 물끄러미 관람했다. 가수 강샤인의 음악과 진행, 해설을 듣고 있으니 마음 깊이 잠자고 있던 열정이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연을 준비하는 것부터, 연출, 진행, 노래, 연주하는 것을 주변에 함께 해주시는 멤버들은 존재했지만, 내 눈에는 가수가 감당해내고 있는 몫이 꽤나 커 보였다. 무대에서 일어날 세세한 부분들을 예상하고 하나하나 챙기고, 그리고 무대에서 연주 및 해설을 진행하면서 호흡을 골라가며 관객과 소통하고 하는 일들이 보통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아는 터라, 그것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이날 공연 바로 전날 서울공연이 있었다고 했다. 강행군이었던 것이다.
그 정성을 팬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객석은 이미 만석이었다. 관객들은 모두 위생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썼다.
환호성은 금지입니다.
무대를 지키는 가수는 객석을 향해 말했다. 우리 모두는 눈빛으로만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고, 호흡을 나누었다. 이 특이한 광경 속에 왠지 모를 울컥함이 올라왔다.
'그래, 우리 모두는 잘 버티고 있어'라는 안도감.
'나만 열심히 하고 있던 게 아니었어. 내가 한 열심은 아주 기본적인 것이었구나'라는 위기감.
'정성을 다해 준비한 무대는 모두의 눈에 보이는구나. 말로 나눌 수 없는 것들은 예술을 통해 나눌 수 있구나'
라는 예술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진지함.
이런 복잡 다난한 생각들이 다시 나의 마음에 불을 붙여주었다.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은 무대를 지켜야 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시대에 맞게 얼른 마음을 변화시켜하던 것들을 중단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기획해서 하는 공연들은 실시간 스트리밍을 통해 대면/비대면 공연을 동시에 진행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대면이 힘들면 비대면으로라도 해야 공연을 하는 예술가들의 감각이 떨어지지 않을 수 있고, 대중들과 소통하는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있다는 나름의 결론이 내려졌다. 누군가에게 위로와 치유가 될 수 있는 이 행위들을. 우리는 상황에 맞게 이어나가야 한다.
세상의 모든 일을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다. 말로 다 해결할 수 없다. 때론 힘들고 어렵고 지칠 때 하나의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감상함으로 마술처럼 마음속 위기가 사라지기도 한다. 조금 과장해서 얘기하면, 나는 이런 행위들이 존재함으로 영혼의 기쁨으로 삶을 이어나가고 있는 1인이기도 하다. 우리 공간에서는 나의 삶이 예술행위로 연속되는 것처럼 그런 건강한 예술과 삶이 유지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김일두의 구직콘서트
물론 공간을 지키는 일이 혼자 하기에는 벅찬 일이다. 우연하게도 나는 남편과 이 일을 함께 시작할 수 있게 되어 혼자는 아닌 것에 안도의 한 숨을 쉴 때가 많다. 청소부터 고객응대까지 작은 일이지만 모두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어느 것도 소홀할 수 없다. 고단한 일이기도 하다. 무대를 서는 사람, 무대를 관람하는 사람, 무대 뒤에서 일하는 사람까지 공간 내부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의 고객이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방에서 조용히 음악을 듣고 있었다. 그 음악은 지인이 보낸 음악 김일두의 '꿈속 꿈' 새 앨범이었다. 누군가 앨범을 내거나, 공연을 홍보하는 링크 또는 행사 홍보카톡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받는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받는 메세지는 하나하나 다 보는 나는 이 부분에서는 약간 한량 스타일이다. 이 사람은 어떻게 활동을 하고, 어떤 방식으로 홍보를 하고, 예술행위를 영위해 나가는가 궁금증이 많아서 완전 모르는 타인도 검색해서 자주 찾아보기도 한다. 어찌 됐든, 김일두의 새 앨범 소식에 음악을 틀어놓고 하나씩 듣고 있었다. 근데 옆에서 음악을 함께 듣던 남편이 이건 무엇이냐고 하면서 노래가 너무 좋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가수 김일두를 형님으로 모시고(?) 있는 사람이 나의 지인이다.'라고 호들갑을 떨며 얘기했다. 그랬더니 대뜸. 그럼 그지인한테 전화를 한 통 해도 되겠냐고 하는 것이다. 왠지 그렇게 해도 당황하지 않을 지인인 것 같아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렇게 일(?)이 시작되었다.
-통화내용-
"안녕하세요."
(서로 각자 간단 자기소개)
"보내주신 음악이 너무 좋아서요... 혹시 김일두님 콘서트를 저희 공간에서 해주시면 어떠신가요...?"
"오! 일두형님도 좋아하실 거 같아요!! 여쭤보고 연락드릴게요."
그렇게 김일두의 구직콘서트가 우리 공간에서 초청공연으로 열리게 되었다. 김일두의 구직콘서트는 이때까지 총 3번이 열렸는데 그중 세 번째 콘서트가 '라움 프라다바코'에서 열렸다. 구직콘서트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있다.
『김일두 구직콘서트 구직의 거장, 실직의 유망주』
내가 바라본 김일두의 구직콘서트는 여러 아티스트들이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는 콘서트였으며, 이 코로나 시대에 유쾌하고도 감격적인 공연이었다. 김일두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모든 것을 진행했다. 실력 있고, 건강한 기운이 있는 아티스트들과 재주를 주고받았다. 이 재주는 그 사람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 일수도 있고, 만들어온 음악공연이기도 하며, 여러 가지 포맷으로 진행되었다. 직업과 연관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음악을 하면서 생업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지에 대한 뼛속까지 현실적인 대화를 관객 앞에서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기도 했다. 관객 입장에서는 좀 더 흥미로운 포맷의 콘서트가 아니었을까 감히 한번 생각해본다. 관객들이 아티스트의 CD를 살 수밖에 없는 유쾌한 상황과 그림들도 유치하지 않았고, 생업의 현장감이 그대로 느껴져 온라인에서 이루어지는 뜨거운 구매 현장이 마치 눈앞에 펼쳐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또 하나의 구직의 현장이 이어졌다. 가수 김일두가 얘기하는 창직-구직-창직-구직 선순환, 그리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지점도 기억할 만한 장면이었다. 어쩌면 철학적이고 무거울 수 있는 타이틀이 가수 김일두 특유의 유머스러움으로 가볍지만 우습지 않았을 뿐더러 김일두스러운 공연으로 완성되었다.
이처럼 한 예술가가 무대를 지키는 일은 기획부터 모객, 그리고 다음 공연을 소개하며 자신을 알리며 생업을 이어나가는 일이기에 절대 단순한 일이 아니다. 그 행위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비로소 예술가들은 생존할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것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한다. 화려해 보이지만, 무대에 서는 연주자나 가수가 화려해 보이는 이유는 경험이 쌓이는 시간들을 그대로 인내하였기 때문이다. 그 인내와 정성의 세월들은 반드시 관객이 눈치챌 수밖에 없다.
코로나 시대에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살아나가고 있다. 공연장이 줄줄이 폐쇄되고 폐업하고 있는 요즘 같은 현실에 예술가들이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들을 하고 있는지는 모두가 다 힘든 시기이니 다 알 것이라 예상한다. 그래도 우리는 이겨내야 하고 버텨내야 한다.
나는 이렇게 무대를 지키는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고 탐구하여 집안 곳곳에서 공연을 감상할 누군가를 위해 애를 쓰고 있다. 2021년에는 지금의 상황보다 절반이라도 좋아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