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기장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바코 Nov 11. 2022

진지하지 않을 준비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차분히 누르고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요 며칠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좀 많이 삐딱해졌다. 나만 이런 것도 아니고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데, 왜 이렇게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은 건지. '쫌 그래도 되지 뭐. 삐딱해지는 게 그렇게 내 잘못인가?'라고 마음을 아주 편하게 먹고 맘 놓고 투덜거리고, 이 친구 저 친구를 붙잡고 함께 욕을 한 바가지 퍼부으며 내 감정에 다른 사람들을 동원시켰다. 그렇게 막상 며칠을 지내고 나니, 별로 기분이 좋지 않다. 화를 다스릴 때 쓰는 방법들이 있는데, 그 모든 방법이 통하지 않는 걸 보니 내가 이 시기쯤 배워야 하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눈을 감고 찬찬히 생각해본다. 요사이 나만 유난을 떨고 있다는 걸 느끼니 새삼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뭐 쫌 어떤가. 내가 이런 사람인 걸!


모든 일들이 지나가면 그뿐인 일이지만, 순간순간 왜 이렇게 감정이 실리는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때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고1 풋내기 소녀시절. 하늘 같은 고3 선배와 눈이 마주쳤는데, 그 길로 복도 끝에 몰려 머리를 쥐어 박혔다. 그 이유는 나의 머리가 단정하지 않다는 이유로 기합을 주듯이 선배들이 몰려와서 꾸중을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에 무섭지 않았다. 선배들은 엄청 진지한데, 난 진지 하지 않았다. 웃음이 나왔다. 그래서 웃음을 참다 참다 실소를 했는데, 요즘 유행하는 말처럼 "웃어?"라고 하더니, 클래스가 어디냐는 둥, 간이 배 밖에 나왔다는 둥, 어이가 없다는 둥, 별소리를 다했다. 그러다 도망치듯 나는 교실로 돌아와서 친구들한테 신기한 일을 겪었다는 듯 신나게 썰을 풀었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라고 물어보는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해프닝은 별 일이 아닌 듯 끝이 났다. 


이 해프닝이 왜 떠올랐을까? 


그냥 대충 하면 별 고통은 없을 것인데, 내가 너무 모든 일에 힘을 주어 열심히 하려 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쥐어박히면 그냥 '그러든지 말든지'라고 깔깔대면서 넘겨 버리면 되는데... 사람도, 일도, 음악도, 잘하려고 애쓴다고 다 잘되는 것이 아닌데... 세상을 내 힘으로 바꾸려고 할 때, 고통이 찾아오는 것 같다. 때로는 고통이 또 다른 변화와 시작을 동반해주기도 하지만, 주변의 여러 사람이 함께 힘들어지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한 번씩 나는 고통스러운 일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가만히 못 있겠는 정의감에 불타오른다. 하지만 나는 정의로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감당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까 마음만 앞서고 논리 정연하게 세상을 뒤흔들 수 있는 재주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참아야 하는데, 그것이 안돼서 스스로가 힘든 것이다. 그런데 이 답답함은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니까 똑같은 말인데, 다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그냥 사는 것이다. 나만 유난스럽게 떠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 진지한 것을 덜어보기로 결심했다. 가볍고 날렵하게 움직여 보기로!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을 구분하여, 지혜롭게 말이다. 그렇게 마음에 깨달음을 띵~하고 주셨다. 


그리고 '그래 쫌 어떤가?' 나에 대해 관대한 만큼, 상대방에게도 조금 더 관대해져 보기로 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2022년 성찰의 일기(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