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앤트맨과 와스프'와 함께 한 짧은 고찰
지난 주말에 앤트맨과 와스프를 보았다. 이 영화의 후기는 보나 마나 넘쳐날 것이고, 전문적이고 객관적이 평가를 할 재주가 없어 앤트맨을 보면서 느낀 개인적인 고찰을 읊어보려 한다. 앤트맨은 몸이 작아지기도 하고 때론(?) 커지기도 한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몸이 개미처럼 작아지고, 탑승하고 있던 자동차의 크기도 쪼그라든다. 나도 작아지고 싶었던 순간이 있다.
5년전쯤이다. 이 작은 땅덩어리를 벗어나 독일을 건너가 유학생활을 했을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열심히 독일어를 공부했다 생각했는데, 막상 가보니 처음부터 다시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피아노 연습도 마찬가지였다. 나름 열심히 준비해서 내가 좀 대단하게 치는 줄 알았는데, 독일을 가보니 날고 기는 친구들이 대다수였고 나는 코끼리 뒷다리를 만지는 수준이었다. 그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어느 독일 교수님 집에서의 일이다. 독일 음대의 교수님께 야무지게 이메일을 써서 나의 음악을 들어달라고 야심 차게 그 집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집에서 나오는 길의 나의 마음은 비참하기 짝이 없었다. 남들 보기에 화려한 기교와 난이도가 높은 곡은 독일 음대 입시에는 별 소용이 없었다. 알차고 꼼꼼한 음색과 깊은 음악성을 표현하기에는 훈련이 부족했다. 한국에서는 그런 것들이 잘 포장되어 콩쿠르에서 입상하거나 실기성적을 받는데 문제없었지만, 독일에서는 얄쨜이 없었다. 나에게는 충격이었던 교수님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더 비수로 꽂힌 이유는 너무나 냉철한 말투에서였다.
나의 실력이 생각보다 터무니없음에 대면하는 순간들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존재 자체가 실없이 느껴지기 시작해 우리의 자존감을 건드리는 순간, 어디론가 숨고 싶어진다. 하지만 자존감이 무너질 필요가 없다. "나의 가치 = 내가 가진 능력"으로 생각하는 오류 때문에 우리는 한없이 작아지고 싶어진다. 아마 이런 관점으로부터 앤트맨의 기원이 시작되지 않았을까?라는 추측은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영화 속 앤트맨은 누군가에게 쫓겨 몸을 피해야 할 순간에 작아진다. 하지만 현실 속 일상에서는 누군가에게 쫓겨 작아지고 싶은 순간보다는 스스로의 생각에 틀에 갇혀 쪼그라드는 순간들이 더욱 많다. 타인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에게 관심이 없으며, 나의 실수에 몰두할 시간이 없다. 결국 우리가 숨고 싶고, 작아지고 싶은 순간은 타인의 시선 때문이 아닌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나의 모습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참고로 '앤트맨과 와스프'의 쿠키영상은 2개다.
이 글의 쿠키영상은 1개인데, 독일에서 겪은 짧은 에피소드이다. 그 시절엔 쪼그라들고 싶은 순간이었지만, 영상 속 나는 웃으며 얘기하고 있다. 쪽팔리는 순간은 한순간이지만, 얻는 깨달음은 이렇게 나의 인생에 커다란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인생의 여정은 길고도 넓다. 지금 이 순간 마음껏 쪼그라들고, 양껏 배우자.
https://www.youtube.com/watch?v=kR75ig1R7ts&index=3&list=PLo2oUPRtUmna7V6YmwUiSj0lxQ6BL4b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