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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대유 이삭 캉 Mar 04. 2022

《우리는 누구나 자기만의 선이 있다》

날 배려한 거지만 배려한 것처럼 느껴지지 않은 순간이었다.

와이프에게 한바탕 쏟아낸 날.

와이프는 오늘  백신 3차를 맞았고

갑자기 먹고 싶은 음식을 711 편의점에

예약을 했다.

밤 9시 30분이 넘는 시간이지만

달밤도 구경하고 집 앞 쓰레기도

버릴 겸 후줄근한 무민이 그려진

수면바지를 입고 긴 패딩을 거치며 동냥 거지처럼

집 앞을 걸어 나갔다.


집 앞에는 711 편의점이 3개나 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니 집 앞이 아니라 번화가를

10분은 뛰어가야 나오는 장소였다.

순간 거기까지 후줄근한 무민 수면바지를 입고

거닐 생각에 짜증을 팍~  냈다.


원래 남 눈치를 많이 보는 와이프는

" 먼저 들어가(내가 사 가지고 올게)"

라고 하지만, 백신도 맞았고 이왕 나왔으니

같이 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말도 없이 혼자 쪼르르 다람쥐 마냥

모터처럼 날아가는  것이 아닌가!

순간  더 짜증이 났다.

이런 상황 때문에 백신을 맞은 날뛰는 것도 싫고

혼자 빨리 다녀와야 내가 고생 안 하니 배려한 것도 싫고

후줄근한 무민 바지를 입고 동네 거지처럼 번화가를

누리는 나 자신도 싫었다.

집에 돌아오면서는 최대한 기분을 감추고

돌아왔지만 결국 토해 내고 말았다.


"자기야, 차라리 나한테 이렇게 된 거 미안하다고 하고

그냥 먼 곳에 있는데 같이 갈래? 아님 여기 있을래? 물어보지 그랬어? 난 자기가 나 때문에 죄인처럼 뛰어서 갔다 온 거 너무 싫었어! 백신 맞은 날은 운동하면 안 돼! 나를 위해서건 뭐건 자기감정만 생각했어! 단 한 마디도 안 하고 혼자 쪼르르 가버리면 난 뛰지도 못하고 뭘 어떻게 해야 되는 거야?"


"내가 그건 생각 못 했네"


그랬다. 난 그냥 나한테 지도를 잘못 봤으니 많이 걸어가야 하는데 어떻게 할지 물어만 봤어도, 이왕 나온 거, 거지차림으로 나와도 감수하고 가려고 했는데 내 눈치 보며 그렇게 뛰어가는 거 자체가 싫었던 것.

날 배려한 거지만 배려처럼 느껴지지 않은 순간이었다.


사람은 각자의 선이 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선이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 대수롭지 않은 것일 수 있고 상대방의 선이

예민해 보이거나 까다로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난 선을 넘는 건 싫다. 가족이든 친한 친구든

선을 넘는 건 불쾌하고 기분 나쁜 감정이 오래간다.

그래서 가족이고 친한 사이일수록 그 선에 대해 말하곤 한다. 그 선을 지킬 수 없다면 함께 지낼 수 없는 것이고

누군가는 나가떨어지겠지~


중요한 건 그렇게 소통하다 보면 서로의 선을 알게 되고

그 선을 존중하게 되고 관계는 더 진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12년째 되는 부부지만 서로의 선을 지키려고 애쓴다.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그 선들을 또 찾게 되겠지.

서로의 선을 안다는 건, 알고 있을 것 같지만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그래서 정말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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