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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Oct 08. 2020

양말을 기우면서

자립경제의 꿈

1. 임팩트 맨


<48837km> 1년간 운행한 거리입니다

1년간 끌고 다닌 자동차 미터기를 보니 4만9천km입니다. 지구 둘레가 4만km라니까 한 바퀴 꽉 채우고 다시 중동 어디쯤 가 있을 거리입니다. 시속 80km로 계산하면 616시간, 26일 정도 됩니다. 1년 중 근 1달을 도로에서 보냈다는 얘기입니다. 출퇴근 거리가 길고 주말마다 장거리 운행을 한 흔적이 고스란히 박혀있습니다. 돈도 돈이지만 엄청난 공해를 일으켰습니다. 표준연비로 따져보니 3,769리터, 스무 드럼 가까운 경유를 태워먹었고, 그만큼의 매연과 미세먼지와 소음과 진동을 싸지르며 다녔습니다. 탄소배출권을 개인에게도 적용한다면, 난 자동차 하나만으로도 파산입니다. 지옥불을 피하지 못합니다.


나는 생활 쓰레기도 어마어마하게 만듭니다. 먹고 입고 자고 노는 모든 게 쓰레기로 귀결됩니다. 음식물찌꺼기나 폐기물만 그런 게 아닙니다. 재활용이란 명목으로 이러저러한 걸 분리해 내놓지만 자기만족이란 의구심을 버리지 못합니다. 매주 산더미처럼 쌓이는 재활용쓰레기 중에 어느 정도가 다시 살아 돌아오는지, 처리과정은 얼마나 깔끔한지 알 수 없습니다. 지구에 부담되지 않는 방법으로 재활용할 수 있다면 편리한 일회용품이나 비닐 사용을 막으려고 애쓸 이유가 있을까 싶습니다.


모든 사람이 식의주의 필요를 타인의 노동과 상품에 의지해 해결합니다. 판매를 위해 만들어지는 상품과 서비스는 나날이 다양해지고 생산규모는 거대합니다. 지구 차원에서 광범위하고 촘촘하게 짜여진 유통망은 좀 채 벗어나기 힘듭니다. 시장에 기대는 정도가 심해질수록 개인의 소비행위가 지구환경에 미치는 나쁜 영향은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생산과 유통과정에서 찍히는 대규모 탄소발자국을 제외하더라도 가정에서 버려지는 재활용쓰레기의 대부분은 상품의 보존과 유통을 위한 포장재이고,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처럼 그중 많은 부분은 석유화합물입니다. 유통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더해지는 포장재 때문에라도 ‘상품’ 소비는 지구에게 악입니다.


<노 임팩트 맨> 뉴욕에서 지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삶을 시도합니다


다큐영화 『노 임팩트 맨』은 도시거주자가 지구공동체에 해를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보여줍니다. 바다 건너에서 공수된 신기한 식재료와 휘황찬란한 가전제품이 아니더라도 수도, 전기, 가스 같은 인프라에서부터 테이크아웃 커피한잔에 이르기까지 삶 자체가 임팩트입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나의 숨쉬기와 식생활과 수면과 놀이와 휴식 그 어느 것도 지구와 지구의 식물과 지구의 동물,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충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심지어 언젠가 닥쳐올 죽음조차도 가스를 태워야 처리할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한 임팩트는 계속되고 죽음도 예외가 아닌 것이 우리시대가 만들어내고 있는 그림입니다.


2. 양말을 기우는 이유


적게 쓰면 임팩트는 줄어듭니다.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몸이 제 기능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물질로 만족하고, 정서를 안정시키기 위해 꼭 필요한 만큼 문화생활을 하고 주변과 유대를 맺으면서도 살 수 있습니다. 넘치는 과잉과 풍요가 보장해주는 건 없습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끊임없이 조작해내고 조장하는 욕구를 거부하고 허위의식을 제거하고 나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의외로 적을지도 모릅니다. ‘브레인’을 마사지한다는 안마의자류의 광고가 판칩니다. 인터넷에는 “죽기 전에 가봐야 할 곳” 시리즈가 넘쳐나지만 정작 내 사는 동네와 나라도 알지 못합니다. 열심히 일한 자가 휴식을 위해 굳이 해외여행을 갈 필요는 없습니다. 미니멀리즘은 지구를 위해서도 좋습니다.



<바질> 처음 시도한 바질이 잘 자랍니다. 바질은 바질페이스토를 좋아하는 아내의 전략작물입니다.


씀씀이를 줄이고 난 뒤에는 자가생산 비중을 늘립니다. 필요한 생활재를 내손으로 만들어 쓴다면 상품을 대량으로 생산하고 장기간 보존하고 장거리로 유통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일 수 있습니다. 식의주 중에 ‘식’을 자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식자재 자급율이 높은 시골은 말할 것도 없고 도시에서도 놀고 있는 자투리땅을 보기 어렵습니다. 많은 도시농부들이 앙증맞게 구획된 텃밭에서 오만가지 채소를 가꾸며 땀을 흘립니다. 건강한 먹거리가 목적이지만, 지구도 텃밭 덕을 봅니다.


생활습관을 바꾸면 사람은 조금 불편해지지만 지구는 웃습니다. 종이컵을 쓰지 않기 위해 텀블러를 들고 다니고, 냅킨이나 화장실용 종이수건 대신 손수건을 사용합니다. 갑작스럽게 장볼 때를 대비해 가방에는 에코백이 들어있습니다. 불편해진다는 건 사장된 몸의 기능을 부활시킨다는 것을 뜻합니다. 전등을 끄면 눈은 쉽게 적응해 어둠속에서도 사물을 분별하게 됩니다. 4만년 동안 두 다리는 인간의 유일한 교통수단이었습니다. 지금은 30분 동안 조깅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그 시간을 걸어서 이동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몇 몇 자출족을 제외하면 자전거도 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잃었습니다.


<양말> 두 군데를 기웠지만, 뒤집으면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


오래전부터 텃밭을 가꿔 왔지만, 소출이 신통치 않습니다. 그리고 그게 다입니다. 옷이며 가구를 직접 만들면 좋겠지만 쉽지 않습니다. 대신 오래 쓰고 고쳐 쓰기로 합니다. 양말을 기우는 건 텃밭 밖으로 자급 영역을 넓히려는 시도입니다. 한두 번 기워보니 쓸 만합니다. 표시도 나지 않을뿐더러 표시가 난다 해도 뭐라 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버렸을 헤진 양말을 되살리는 건 양말을 만들어내지는 못하는 내겐 양말을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맥락에서 전기면도기도 치웠습니다. 칼날 면도기를 쓰면 시간은 조금 더 걸리지만 전기가 필요 없습니다. 내가 양말생산자, 전기생산자가 되는 방법입니다.


3.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


<리틀 포레스트>

안 쓰고 적게 쓰고 만들어 쓰고 다시 쓰는 것, 한마디로 쪼잔한 삶은 지구와 지구의 친구들에게 좋을 뿐 아니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의 절대 양을 줄여줍니다. 돈이 적게 드는 경제, 자급율이 높은 경제를 운영하는 사람은 그만큼 자유롭습니다. 구멍 난 양말을 기우며 나는 자립경제와 자유를 꿈꿉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재하”는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은 살고 싶지 않아” 도시의 직장을 그만두고 시골로 내려왔다고 말합니다.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 인생”이라는 말을 통해 노동력을 판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노동력이라고 하지만, 거래대상은 인격 전부입니다. 노동시장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인간” 재하는 사라지고 “노동자 1”만 남습니다. 재하의 인생은 더 이상 재하의 것이 아니고, 조직과 자본의 논리가 모든 걸 지배합니다. 자기 인생을 자기가 결정할 수 없습니다.


인격을 판 대가로 돈을 받고 그 돈으로 다른 누군가의 노동이 만들어 낸 얼굴 없는 상품과 서비스를 삽니다. 도시의 익명성에 자아를 잃어버린 개인처럼 재하가 사는 상품은 바코드와 바코드에 저장된 가격으로만 기억됩니다. 엄마가 정성과 시간으로 만든 음식을 먹고 자란 “혜원”에게 편의점 도시락은 위장을 속이는 속임수일 뿐입니다. 공장에서 만들어지고 유통기한이 지난 음식이 채워주지 못한 혜원의 허기는 재하의 것이기도 합니다. 노동자 재하는 스스로의 노동으로부터 소외되고, 소비자 재하는 자신이 소비하는 물건으로부터 소외됩니다. 도시에서의 재하는 허깨비였습니다.


<재하와 혜원> 운이 좋고 눈치빠른 재하는주인된 삶을 위해 사과밭으로 내려갔습니다.


나도 그렇습니다.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그렇게 번 돈으로 삶을 살아내고 있지만 만족스럽지 않습니다. 화살을 만드는지 갑옷을 만드는지* 조차 모른 채 뛰어든 노동시장도 그렇고, 부풀대로 부풀어 오른 소비행태도 그렇습니다. 자본에 의해 조작된 욕구는 노동시장에서 자발적으로 퇴장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합니다. 운이 좋은 재하는 일찌감치 아버지의 사과밭으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나에게는 사과밭이 없습니다.


생필품의 상당부분을 자급이나 물물교환을 통해 해결하는 경제, 가급적 돈을 덜 쓰는 경제는 나에게 사과밭입니다. 노동과 인격과 자유를 팔지 않아도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사과밭입니다. 양말을 깁고, 묵은 옷을 꺼내 입고, 재활용 가구 수거장을 기웃거립니다. 요리에 관심을 갖고 전기기술과 생활용접을 배웁니다. 농사기술과 정보에 귀 기울이고 24절기를 기록합니다. 손수 집을 짓는 사이트도 즐겨찾기 목록에 올려둡니다.


지금은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한 켤레, 두 켤레 양말을 기우며 “돈”의 필요를 조금씩 줄여나간다면 더 이상 노동을 팔지 않아도 되는 시기를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적어도 노동시장에서 강제퇴출당하더라도 덜 당황하며 헤쳐 나갈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헬렌과 스콧 니어링 부부가 버몬트 골짜기로 간 까닭, 그리고 화폐경제를 최소화하고 자급과 교환경제로 살림을 꾸리기 위해 애쓴 이유를 알겠습니다.


*  맹자(孟子) 공손추(公孫丑) 上 : 화살을 만드는 사람은 화살이 사람을 다치게 하지 못할까 염려하고(矢人 惟恐不傷人). 갑옷 만드는 사람은 갑옷이 사람을 다치게 할까 근심한다(函人 惟恐傷人)


#양말 #노임팩트맨 #자급자족 #자립경제 #니어링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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