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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Oct 08. 2020

은행 한 알

모두 우주다

 강릉에서 살던 어린 시절, 해뜨는 걸 보겠다고 자전거로 바닷가에 가곤 했습니다. 철마다 다른 새벽공기를 가르며 바닷가에 이르는 길은 산에서 자란 아이에겐 늘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멀리 붉어져오는 동쪽하늘에  조바심이 나서 패달을 돌리다 보면 한겨울에도 땀이 났습니다.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바닷가에 도착했어도 정작 해는 30여분을 더 지나서야 떠오르곤 했습니다. 다시 얼어버린 몸을 달달 떨며 역시 밤새 찬바람에 몸이 굳었을 군인들을 불쌍한 눈으로 쳐다보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어느 가을, 그렇게 해를 보고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경포 호숫가를 느릿느릿 가고있는데, 발아래로 코스모스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왜 코스모스가 발 아래 있었을까요? 바닷바람과 소금기속에서 힘겹게 자랐기 때문일테지요. 척박한 환경탓에 제대로 자라지 못한 것이라고 나름대로 이유를 붙여보았습니다. 녀석들은 하나같이 바닥에 바짝 붙어있었습니다. 큰것은 손가락 두어 마디, 심지어 한마디 밖에 안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신기한건 그 작은 녀석들이 모두 꽃을 달고 있었다는 겁니다. 비록 꽃잎은 대여섯장에 불과했지만 분명 저마다의 꽃을 달고 있었습니다(코스모스 꽃잎은 보통 여덟장이지요). 저 작은 몸뚱이로 바닷바람과 소금기를 이겨내며 힘겹게 자란 것도 장한데 꽃까지 피워내다니! 신비하고 놀라웠습니다. 생명력이라고 할까요  뭐 그런것 말이죠.  


<은행나무> 집 앞에 버티고 선 은행나무 역시 당당하고 듬직하다.

고전 [장자]는 물고기와 새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곤"이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는 크기가 멏천리나 되는데, 변해서 붕새가 되었다고 합니다. 붕새 역시 크기가 몇천리나 되고 한번 날아오르면 날개가 구름같았답니다. 아시겠지만 곤은 물고기 알을 뜻합니다. 작디 작은 알이 어마어마한 물고기가 되고 다시 새가 되어 하늘길로 날아오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 속에 내재한 무한한 가능성을 선언한 것이라고 합니다. 비록 지금은 하찮아 보이더라도 우리 모두는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초자아와 무위를 통해 초월적인 존재가 될 수 있는 가능성 말이지요. 나락한알(일속조)을 호로 쓰신 장일순 선생님이 "나락 한 알에도 우주가 들어있다"고 하신 말씀과도  같은 뜻인듯 싶습니다.


<은행알> 은행나무는 장수를 대표한다. 저 작은 은행 알 하나에 수백년 수천년의 생명이 깃들어 있다.

올 가을에는 지난해에 비해 은행이 많이 열렸습니다. 잘 갈무리된 은행 알맹이를 들여다 보고 있는데, 저 작은 알맹이 하나에 수백년  수천년을 넘나드는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굳이 몇백년 세월을 자랑하는 고목에 견줄 필요도 없습니다.집앞에 버티고 선 은행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당당함이 하늘을 찌르고 땅속 깊이 뻗어내린 뿌리는 든든하기 그지없습니다. 그 모든게 저 작은 한알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바닥에 달라붙은 바닷가 코스모스, 우주를 품은 물고기 알, 장구한 세월을 자랑하는 은행 한 알! 지금 내 모습은 무엇일까요?  


햇빛을 거꾸로 뒤집어 쓴 억새가 눈부십니다.

<억새> 하얀 억새 위로 가을 깊은 오후의  햇살이 쏟아진다.                                

#은행 #코스모스 #장자 #일속조 #장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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