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끊다
처음부터 술을 끊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었습니다. 혈관을 타고 흐르는 것이 붉은 피가 아니라 알콜이라는 느낌은 진작부터 있었습니다. 하지만 신체와 정신과 감정의 모든 분야에서 발견되는 과잉 혹은 결핍의 원인을 굳이 술에서 찾을 이유는 없었습니다. 갱년기나 노화라는 단어로도 어렵지 않게 모든 변화를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이미 충분히 나이를 먹고 있었습니다. TV를 보다가도 무심히 눈물이 나곤 했는데, 알콜 프리 상태에서도 더러 그랬습니다. 그러니 나이 탓에 더 무게를 두는 태도가 완전히 맹랑한 건 아닙니다.
그렇다고 술이 모든 혐의를 벗을 수는 없습니다. 어느 때부턴가 나는 모든 음식을 간단히 술과 결부시키는 재주를 부려 왔습니다. “食馬肉 不飮酒 傷人(식마육 불음주 상인_말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몸이 상한다)”은 편리한 도구입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것이 좋았던 “도깨비”처럼 나는 “음식이 좋아서, 음식이 적당해서” 술을 찾았습니다. 이유는 널려 있었습니다. 햇살이 좋아서, 바람이 불어서, 친구가 있어서, 혹은 친구가 없어서 나는 “몸이 상하지 않도록” 술잔을 비웠습니다. 옛날 춘추시대 목공의 너그러운 덕을 기리는 엄숙한 고사성어가 내게 와서 하찮은 술 밥으로 끊임없이 곤두박질 쳤습니다.
“食馬肉 不飮酒 傷人”은 편리한 도구였다
부끄럽지만 그랬습니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중에 술을 마시지 않은 날이 손꼽을 정도였습니다. 위험수위에 근접했다고, 혹은 위험수위를 넘어 섰다고 느낀 다음부터 매일 매일 기록해 왔는데, 벌써 10년째 그랬습니다. 알콜이 혈관의 주인이 된 건 당연했습니다. 옛사람은 말고기 때문에 몸이 상하는 걸 막기 위해 술을 마셨다는데 나는 술로 인해 몸과 마음이 상할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어쩌다 이틀간 술을 건너뛴 지난해(2016년) 12월 9일, 눈치만 보던 국회가 어렵사리 탄핵소추를 의결한 바로 그날 새벽. 잠에서 깬 나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생생했습니다. 꿈속의 나는 전쟁터를 떠돌고 있었습니다. 두텁게 깔린 흙먼지, 엉켜 붙은 검붉은 피, 부서진 건물 더미, 배를 드러낸 웅덩이의 잔영이 아직 눈가에 남아 있었습니다. 심지어 코끝에서는 매캐한 연기와 비릿한 피비린내까지 느껴졌습니다. 멀리 폭탄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숨이 턱에 찰 정도로 달아나 보려 애쓰지만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황량한 전쟁터, 널부러진 시체들을 피해 뛰어다녀도 제자리였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궤도 지옥에 갇힌 듯했습니다. 감각되는 모든 것이 죽어 있는 곳에서 나만 살아있다는 느낌! 무섭고 외로웠습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무한궤도 지옥에 갇힌 듯했다. 감각되는 모든 것이 죽어 있는 곳에서 나만 살아있다는 느낌! 무섭고 외로웠다.
온몸의 기력이 빠져나갈 즈음 묘한 안도감과 함께 자각몽(自覺夢)이 시작되었습니다. “젠장, 이 나이에 가위눌림이라니.” 아이를 발견한 것도 그 때였습니다. 온 몸에 흙을 뒤집어쓰고 누구 것인지 모를 피로 범벅이 된 여자아이였습니다. 울 기력도 사그라졌는지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습니다. 산 사람을 만난 것도 반갑지 않은 듯 했습니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끝을 목격한 사람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허무가 묻어났습니다.
움직이지 못하는 아이를 조심스럽게 안아 입에 물을 대어주었습니다. 입술을 조금 적시고는 이내 고개를 돌려 버렸습니다. 한참 동안 숨을 고르던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의외로 얼굴을 닦아 달라는 거였습니다. 물 적신 손수건으로 피와 흙먼지를 닦아내자 말간 피부가 드러났습니다. 가는 실핏줄과 잦아들 듯 한 숨소리는 남은 시간을 예고하는 듯했습니다.
한결 편해진 아이는 동쪽을 바라볼 수 있도록 머리를 돌려달라고 했습니다. 자리를 잡아 주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습니다. 웅얼거리는 소리가 이어지더니 마른 눈꺼풀을 뚫고 눈물 몇 방울이 흘러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소리 없이 스르르 몸을 부려 버렸습니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고 미소 띤 얼굴에는 고요가 찾아왔습니다.
아이의 죽음과 함께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꿈에서 흘린 것이 땀인지 눈물이지 모호했지만 잠 깬 이마엔 땀이 흥건했습니다. 죽음을 맞는 아이는 경건했고 성스러웠으며 그런 죽음을 대하는 나는 초라하고 볼품없었습니다.
꿈속 아이의 죽음과 술을 멀리하는 것이 어떤 고리로 연결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몸을 단장하고 부모와 신이 있는 곳을 향해 기도를 드리는 모습에서 무엇을 느꼈을까요? 삶은 곧 죽음을 예비하는 과정일까요? 어쨌든 그날 아침부터 100일의 카운팅이 시작되었습니다.
100일이 채워지고 다시 며칠이 흘렀습니다. 100여일 전 꿈이 “술과 거리두기” 외에 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내게 넘쳐나는 여러 “과잉” 중 하나가 줄어들었다는 것만은 확실합니다. 더 이상 날짜를 셀 필요가 없어졌지만 나는 여전히 술과 멀찍이 떨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