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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Oct 08. 2020

2년동안 술 안마시면 일어나는 일,,,

금주 2년만에 바뀐 것들

1. 금주 2년


술을 안 마신다거나 못 마신다거나 혹은 끊었다는 말을 하면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그게 가능해?”가 하나인데, 예전에 술 마시던 때의 나를 아는 분들이 대게 그렇습니다. 담배 끊는 건 봤어도 술 끊는 건 못 봤다며, 죽을병이라도 걸렸냐는 걱정이 으레 뒤따릅니다. 치명적인 건강상 이유 없이 끊기는 어렵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무슨 재미로 살아?” 혹은 “천년만년 살려고 그래?”다. 여기에는 인간관계를 맺고 좋게 유지하려면 술이 꼭 필요한데, 그렇게 무미건조하게 살아서 되겠냐는 핀잔이 섞여 있습니다. 오랜 벗은 술친구를 잃어버렸다고 한탄합니다.


반응은 두 가지입니다. “그게 가능해?” 와 “무슨 재미로 살아?” 혹은 “천년만년 살려고 그래?”입니다. 


보름이 지나면, 걱정과 핀잔, 때로 원망을 들으며 술을 멀리한 지 만 2년이 됩니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그 사이 술 마시던 기억은 아득해졌습니다. 첫 잔을 털어 넣을 때 입속 세포 하나하나를 흔들어 깨우는 칼칼함, 식도를 타고 내려가며 등줄기를 훑어 오르는 짜릿함, 오랜 자기부정과 연민으로부터 잠깐이나마 풀려나게 하는 몽롱한 해방감, 불콰하고 즐겁고 신나고 과장되고 심각하고 슬프고 처량하고 불쌍한 얼굴들이 만들어내는 왁자한 분위기, 그리고 기름지고 맵고 짜고 단 안주들의 향연이 언제였던가 싶습니다.


기억만 흐려진 게 아닙니다. 술 마시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습니다. 술자리에 끼어 있을 때면 더러 내가 술잔 비우는 상상을 하게 되는데, 절로 얼굴이 찡그려집니다. 쓰고 자극적이고 불쾌한 걸 왜 마시는지,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기억이 날아가고 욕구가 사그라진 것 외에 2년의 시간은 나를 어떻게 바꾸었을까요?


2. 20대 몸매


온 몸에 기름기가 빠졌습니다. 한 때 68kg까지 올라갔던 몸무게가 최근 59kg이 되었습니다. 2년 전부터 따져도 족히 3~4kg은 줄었습니다. 감량은 대부분 지방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체지방량이 4.7kg로 평균치를 훨씬 밑돕니다. 올챙이처럼 볼록하던 똥배와 그 속에서 출렁이던 복부지방이 눈에 띄게 홀쭉해졌습니다. 요즘 들어 바지를 입을 때마다 허리춤이 헐렁했는데, 이런 까닭이 있었습니다. 근육량은 32kg로 보통입니다. 


구석구석 늘어지던 물살과 지방이 빠지자 몸매가 바뀌었습니다. 가벼워 진건 말할 것도 없고 울퉁불퉁 물컹덜컹하던 피부가 한결 매끈해졌습니다. 얼굴 가득 번드르르하던 개기름도 옛말이 되었습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했을 때 체중이 58kg이었으니 과장하면 30년 전, 20대 초반으로 돌아간 듯합니다. 


체형과 함께 체질도 달라졌습니다. 알레르기가 사라진 게 증거입니다. 언제부턴가 나는 알레르기 때문에 고생을 했습니다. 이삼일 간격으로 불시에 찾아오는 알레르기는 정해진 곳 없이 온몸을 훑고 다녔습니다. 가려움증이 올라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껍질을 벗겨내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손을 대면 벌겋게 발진이 올라와 보기에도 흉했습니다. 환절기 비염도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약을 먹으면 금방 가라앉았습니다. 대신 어디든 약을 갖고 다녀야 했고, 약이 떨어지면 불안했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약이 필요 없습니다. 마지막 먹은 게 1년쯤 전입니다. 가려움증은 사라졌고, 비염도 가벼운 감기처럼 오는 듯 마는 듯 지나갑니다. 술에 들어있는 숱한 첨가제가 원인이 아니었을까 짐작 하고 있습니다. 술 자체가 내 몸의 면역체계를 흩트려놓았을 수도 있습니다. 뭐가 됐건 이제 체질은 달라졌습니다. 알레르기를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해방의 기쁨을 알지 못합니다. 이것 하나만 해도 술을 멀리한 건 잘한 일입니다.


<산골> 먼 산을 배경으로 안개가 피어오르는 산골은 내가 텃발을 일구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흘리는 땀은 근육이 되고 지방을 분해시키고 제철 채소를 만들어냅니다.


 술 말고도 내 몸을 변화시킬 만한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텃밭 농사는 잔 근육과 큰 근육을 쉴 새 없이 움직이게 만듭니다. 삽과 괭이로 땅을 일굴 때 흘리는 땀에는 온갖 노폐물과 함께 오래 동안 고이 모셔왔던 지방도 섞여 있습니다. 육식을 줄이고 제철 채소를 늘린 식단은 세포가 바뀔 때마다 내 몸의 구성을 조금씩 바꿔 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형과 체질 변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은 분명 기름진 안주와 더불어 알코올 공급을 중단한 겁니다.


3. 초딩 입맛


매운 것을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식사 때마다 청양고추를 찾았고, 국과 찌게에는 고춧가루가 아낌없이 뿌려졌습니다. 고추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해장국과 국밥은 즐겨 찾는 메뉴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아빠 손에 이끌려 국밥집을 드나든 큰아이는 아직도 선지해장국을 좋아합니다. 모두 2년 전까지의 일입니다.


요즘은, 땡초는커녕 라면의 매운 맛도 버거워 합니다. 매운떡볶이는 고사하고 흔한 떡볶이를 먹을 때도 땀을 흘립니다. 시뻘겋고 걸쭉한 국물은 더 이상 내 머릿속 메뉴판에 자리가 없습니다. 대신 새롭게 찾은 맛도 있습니다. 돈가스입니다. 바삭하게 튀겨낸 돈가스를 보면 군침이 돕니다. 이따금 접하는 햄버거와 떡갈비에도 침샘이 격렬하게 반응합니다. 예전엔 쳐다보지도 않던 음식입니다. 


오랫동안 알코올에 노출된 입맛은 음식이 품고 있는 다양하고 미묘한 맛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그저 맵고 짜고 단 자극에 반응할 뿐입니다. 나야 애초부터 단짠단짠한 음식을 즐기지 않았으니 자연히 매운 쪽으로만 꽂혔고, 청양고추를 동원해 마비된 입맛을 강제로 깨우려 했습니다. 매운 맛을 즐긴다는 과시욕도 한 몫 거들었음에 틀림없습니다. 


알코올로부터의 자유는 죽어있던 미각을 되살아나게 했습니다. 마비와 자극이 사라지자 혀의 감각이 돌아왔습니다. 깨소금과 들기름에 버무린 산나물, 된장으로 조물조물 무쳐낸 텃밭채소, 맑은 무와 콩나물국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음식에 끌립니다. 이런 나를 두고 식구들은 초딩 입맛이라고 놀리며 즐거워합니다. 그러면 나는 원두커피 봉다리에 적혀 있는 커핑노트의 갖가지 맛을 언젠가는 느끼고 말겠다며 응수합니다.


알코올로부터의 자유는 죽어있던 미각을 되살아나게 했습니다.


4. 생명연장


간에 해로운 것만큼 알코올은 뇌에도 좋지 않습니다. 기사*에 따르면 술은 뇌 조직 가운데 해마를 쪼그라뜨립니다. 해마는 기억과 학습을 담당합니다. 술로 해마가 쪼그라들면 사리분별을 못하고(인지능력), 쉽게 흥분하고(자제력), 뭐든 금방 잊어버립니다(기억력). 해마가 일시적으로 작동을 멈출 때 경험하게 되는 소위 “블랙아웃(필름 끊기는 현상)”은 알코올의 공격으로 시냅스*가 차단된 뇌가 죽어가는 과정으로 설명됩니다. 감정의 과잉과 우울감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정서 장애도 술과 관련이 있습니다. 술이 들어갈 때 느끼는 기분 좋거나 기분 나쁜 취기는 한마디로 뇌의 위축과 사멸을 댓가로 합니다. 


* 코메디닷컴, 술 마시면 뇌에 나타나는 변화 4(2018.11.16.)

* 신경 세포의 신경 돌기 말단이 다른 신경 세포와 접합하는 부위


기사에선 해마니 시냅스니 했지만, 모두 아는 얘기입니다. 술 마시는 모두가 알면서도 술 마시는 모두가 무시합니다.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2년 전까지 나는 정확하게 그랬습니다. 그래서 끊었습니다. 더 이상 술이 나를 뒤흔들게 내버려둘 수 없었습니다. “적당히” 하면 좋았겠지만, 중도(中道)를 배우지 못하고 의지박약한 내게 다른 선택지는 없었습니다. 


24시간, 1년 365일 깨어있는 시간이 2년째 이어지며 내 몸과 내 정신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났습니다. 널뛰듯 요동치던 감정의 기복이 줄어 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정신을 놓거나 자제력을 잃어 스스로 어쩌지 못하는 시간은 이미 내 시간이 아닙니다. 그런 점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시간의 확대는 생명이 활동하는 시간의 연장, 즉 생명연장에 다름 아닙니다. 같은 나이를 살아도 더 오래 삽니다. 천년만년 살지는 못해도 매 순간을 더 또렷하게 살 수 있습니다. 나에게 생명연장의 꿈을 실현시키는 건 메치니*프가 아니라 금주입니다.


24시간, 1년 365일 깨어있는 시간이 2년째 이어지며 내 몸과 내 정신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늘어났습니다


5. 에필로그


앞으로 술 광고에서 술 마시는 장면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소리도 안 된답니다. 이제껏 밤 10시만 지나면 TV는 온통 술판이었습니다. 여기를 돌려도 캬, 저기를 틀어도 벌컥벌컥. 개인의 건강 측면에서 보면 술과 담배는 똑같이 해롭습니다. 그렇지만, 해악이 미치는 범위로 보면 술이 더 나쁩니다. 음주운전을 비롯해 온갖 사회적 악행이 술을 빌미로 혹은 술로 인해 벌어집니다. 그런데도 자본의 논리와 힘에 밀려 규제는 느슨했습니다. 늦었지만 잘된 일입니다. 


“술에서 깨다”는 뜻의 한자어는 “각성(覺醒)”입니다. “깨어 정신을 차린다”는 뜻의 각성에는 “깨달아 알다”는 뜻도 있습니다. 깨어 있는 맑은 정신으로 깨달아 알아야 하는 건 사람과 자연과 우주의 이치, 즉 지혜(智慧)입니다. 불가에서는 지혜의 결핍을 뜻하는 무지(無智)를 모든 고통의 원인으로 봅니다. 결국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자면 무지에서 벗어나야하고, 지혜를 얻자면 궁구해야 하고, 애써 궁구하기 위해서는 맑은 정신이 필요합니다. 깨어 있어야만 깨달을 수 있고, 깨어 있어야만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머잖아 나는 도사가 됩니다. 믿거나 말거나....


#술 #금주 #알러지 #생명연장 #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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