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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Oct 12. 2020

인과는 오차가 없다. 단지 시차가 있을 뿐

난 왜 항상 이 모양이지?

오래 전 경향신문에 소설가 김형경님 글이 실렸습니다. "삶의 십진법"이라는 제목만으론 무슨 내용인지 와 닿는게 없었습니다. 심호홉을 하고 찬찬히 읽어 내려갔습니다. 내용인 즉 "난 왜 항상 이 모양이지?" 였습니다. 불안정하고 어린, 그래서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에 불만스러운 작가는 항상 그 다음 10년후를 동경하곤 했습니다. 10대 때는 어른이 되어 있을 20대를, 20대에는 세상을 한눈에 들여다 볼 수 있을 것 같은 30대를,  30대에는 고요한 마음으로 그윽한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은 40대가 빨리 되기를 기대했답니다. 막상 그 나이가 되면 동경하던 삶은 아직 오지 않고 늘 또 다른 10년후를 기다리는 자신을 발견할 뿐입니다. 제목에 있는 십진법이란 보다 완전한 자아를 꿈꾸는 불완전한 자아의 희망과 기대가 투영된 인위적인 시간 나눔입니다. 

 

내용인 즉 "난 왜 항상 이 모양이지?" 였습니다. 불안정하고 어린, 그래서 삶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모습에 불만스러운 작가는 항상 그 다음 10년후를 동경하곤 했습니다.


딱 내 이야기 같아서 읽는 내내 시쳇말로 "심ᆞ쿵"이 계속되었습니다. 불안정하고, 세상 모든 일에 자신없고, 결정적 순간에 실수를 반복하고, 선택의 기로에서는 우물쭈물 허둥대고, 타인의 삶에 긍정적 영향이라곤 조금도 미치지 못하고,,, 어느 한 순간도 10년전의 내가 꿈꾸던 나였던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면서 습관적으로 또 다른 10년후를 기약합니다. 서른 살만 되면, 마흔만 되어봐라 등등. 요즘엔 아예  6,70대의 중간과정을 생략하고 세상 일에서 완전히 벗어나(밀려나?) 있을 80대로 가 있기를 소망한다는게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결국 "난 왜 항상 이 모양일까"죠. 죽을 때까지 풀 수 없는 문제입니다. 자존감 결여탓일수도 있고, 능력부족일수도 있고, 환경과 나의 갈등이 원인일수도 있는데, 평생에 걸쳐 차곡차곡 쌓아온 것들이라서 한방에 날려버릴 도리가 없습니다. 오래된 창고에 켜켜이 내려앉은 먼지같습니다. 어느 한순간 큰 깨달음, 말하자면 도가 트이면 가능하겠지만, 이번 생에서는 안되겠지요.  

 

돌덩이 같은 이런 문제를 가슴에 올려놓고 사는 건 유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만 그런게 아니었다는 걸 김형경님 기고문을 통해 알게 된겁니다. 유레카! 일종의 안도감 같은게 느껴졌습니다. 공범의식일수도 있고 동질감 일수도 있습니다. 비슷한 무리에 있으면 역시 편안해지나 봅니다. "나만 바보가 아니었어, 남들도 다 그래"를 확인한 것입니다. 같은 문제를 가진 사람들간에 이루어지는 집단 심리상담이 효과적인 이유가 이런 거구나 싶습니다. 

 

마음이 좀더 편해질 수 있게 된 건 라디오를 통해서입니다. 우연히 켠 라디오에서 인과응보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과에는 오차가 없다. 단지 시차가 있을 뿐이다." 지은 업은 반드시 되돌아 온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심지어 다음 생을 통해서라도 꼭 되돌아 온답니다! 인과응보와 관련해 "시차"라는 말을 들은 건 처음이었습니다. 사람의 법에는 시효라는게 있지만 하늘의 법에는 시효가 없답니다. 매 순간을 무겁게 대하라는 가르침이 준엄합니다. 

 

"인과에는 오차가 없다. 단지 시차가 있을 뿐이다." 지은 업은 반드시 되돌아 온답니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심지어 다음 생을 통해서라도 꼭 되돌아 온답니다!


캐캐묵은 먼지처럼 과거의 삶이 쌓여 지금 모습이 만들어 졌는데 안타까워하고 억울해하고 심지어 원망한들 무슨 소용이냐 싶습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 내가 만들어 가고 있는 업이 더 중요하겠지요. 오늘의 "인"이 시차를 두고 내일, 내년, 10년, 20년후에 "과"로 나타날테니까요. 10년, 20년 후에 지금처럼 자신의 모습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는 좋은 업을 쌓아나가는 길 밖에 없겠습니다. 

 

좋은 업을 쌓건 나쁜 업을 쌓건 10년, 20년 후를 꿈꾸는 건 여전하겠지요? 김형경님 역시 이렇게 글을 끝맺고 있읍니다.

"나는 또 꿈꾼다. 일흔 살이나 여든 살이 되면…."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548504&sid1=001


#김형경 #삶의십진법 #인과응보 #업 #오차 #시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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