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풍연 Oct 08. 2020

神이 머물다 간 순간

운수 좋은 날

네거리를 고속으로 직진하던 차가 같은 방향으로 진입하기 위해 우회전하는 차를 들이받습니다. 공포는 먼저 귀로 전해져 옵니다. 눈은 놓칠 수 있어도 귀는 피해가지 못합니다. 브레이크 파열음에 이어 바퀴와 도로가 마찰하며 내는 고주파가 고막을 때립니다. 곧바로 차와 차가 부딪히는 소리! 쿠구궁!


찰나가 지나자 시각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기 시작합니다. 자동차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속 직진차는 저속 우회전차와 부딪힌 뒤에도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합니다. 진행방향 그대로 360도 회전하더니 한참을 더 미끄러져간 다음에야 멈춰 섭니다. 운전솜씨 덕분인지 비스듬한 충돌에 의한 자동적인 뒤틀림 현상인지 분명치 않지만 휴일 오전 한산한 지방도로 한가운데서 완벽한 드리프트가 연출됩니다.


다친 사람이 없습니다. 엄청난 속도와 굉음에 가까운 파열음이 있었지만 안전지대에 차를 세운 두 운전자와 동승자들은 멀쩡히 내려 상대의 안위를 살핍니다. 큰 부상이, 심지어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겠다는 짐작은 다행히 빗나갔습니다.


엄청난 속도와 굉음에 가까운 파열음이 있었지만 안전지대에 차를 세운 두 운전자와 동승자들은 멀쩡히 내려 상대의 안위를 살핍니다.


반대편 1차로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나는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합니다. 최초의 브레이크 소리가 귀에 닿는 순간부터 운전자들의 안전이 확인된 그 짧은 시간 동안, 나 역시 생사를 넘나들었습니다. 충돌방향이 조금만 틀어졌다면 직진차는 현란한 드리프트 대신에 달려오던 속도 그대로 내 차를 덮치고, 나를 뭉개고, 옆자리 아내를 몰아붙였을 겁니다. 다행히 나는 여전히 운전석에 앉아있고 차도 아내도 아무 일 없습니다.


귀와 눈에 비해 심장은 반응이 더딥니다. 아찔한 순간이 지난 뒤에야 긴장을 고조시킵니다. 박동이 급격하게 빨라지더니 현기증까지 밀려옵니다. 심장이 뒷북을 친 데는 사고가 나의 일이 되었을 때 닥쳐 올 고통과 공포가 그제서야 머릿속에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부모님과 아이들 얼굴도 스쳐 지나갑니다. 청각과 시각에 의해 수집된 정보가 뇌에 전달되고, 다시 아드레날린 분비량을 늘리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는 걸 그 때 알았습니다. 갓길에서 한참 심호흡을 하고 난 뒤에야 겨우 핸들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해 연말연시를 드라마 “도깨비”에 빠져 살았습니다. 두 가지가 기억납니다. 육신과 분리된 영혼이 자신의 죽음을 담담하게 바라보는 장면이 하나입니다. 저럴 수도 있겠구나 싶었고, 드라마처럼 슬픔과 고통은 남은 자들만의 몫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죽고 나서 삶에 미련을 두는 따위의 찌질함이 없다면 살아있는 오늘 하루가 더 유쾌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神이 머물다 간 순간”입니다. 누군가로부터 느닷없는 도움을 받는 순간을 두고 작가는 神과의 접속을 이야기합니다. 나비의 몸을 빌린 神이 어깨에 잠시 내려앉으면 인생이 바뀝니다. 누군가는 직장을 구하고 누군가는 죽음을 면합니다.


이번에도 神이 다녀갔음에 틀림없습니다. 사고 당사자인 두 운전자와 동승자, 우연히 현장에 있던 나와 아내, 그리고 다른 구경꾼들의 어깨에 인분(鱗粉)이 흔적으로 남았을지 모릅니다. 아내는 그 해 운세를 다 썼다고 아쉬워했습니다. 내 생각은 다릅니다. 평생의 운이 날아갔다 하더라도 감사할 일입니다.


드라마에서는 神이 사람 일에 개입하는 것을 막간 에피소드 정도로 다뤘지만 기본에 충실했습니다. 勸善懲惡의 단순한 논리입니다. 평소 착한 일 한 놈에게는 로또 같은 행운을, 더러운 짓 한 놈에게는 마른 하늘에 우박을 퍼 붓습니다. 예전 같으면 운빨로 돌리고 말았겠지만 지금은 인간사를 두고 저울질하며 神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 합니다. 그날 사고를 낼 뻔한 두 운전자는 전자에 해당합니다. 그들의 지나온 삶 곳곳에 보험증서가 널려 있을게 분명합니다. 구경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의 크고 작은 행실이 모여 참사를 막아내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지나온 삶 곳곳에 보험증서가 널려 있을게 분명합니다. 구경꾼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마다의 크고 작은 행실이 모여 참사를 막아내지 않았을까요?


<전등사> 연등아래 선명한 그림자를 디딤돌 삼아 따라가면 정토에 다다를 것 같습니다.


교차로를 떠나 오랜 절집에 들렀습니다. 때 이른 연등이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빛납니다. 마사토가 정갈한 마당에는 연등만큼이나 선명한 그림자가 박혀있습니다. 징검다리 건너듯 따라가면 정토에 이를 것 같습니다. 한 칸씩 걸음을 옮기며 생각해 봅니다. 몇 번을 되짚어도 神이 내게 다녀갈 이유가 떠오르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음덕으로 소환되어 날아가던 나비가 가루를 몇 개 떨어뜨렸고, 그 중 한 두개가 내 머리에 닿은 것뿐이었습니다. 시쳇말로 줄을 잘 섰습니다.


이미 신은 다녀갔는데 나는 그에게 내밀 보험증서가 없습니다. 가불을 한 샘인데, 어떻게 갚아야 할까요? 갚기나 할 수 있을까요? 평생의 큰 빚을 지고 말았습니다. 어떻게든 보시를 해야겠는데 마땅한 방법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니 20여 년 전에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달리는 고속버스에서 아내와 나는 잠들어 있었습니다. 우당탕탕 소리와 함께 버스의 큰 몸체가 휘청거리며 급하게 속도를 줄였습니다. 몇 차례 충돌이 있은 후에 가까스로 멈추어 섰습니다. 앞유리가 통째로 무너져 내린 버스는 까마득한 낭떠러지를 향해 위태롭게 서 있었습니다. 앞바퀴를 버티고 있던 콘크리트 가이드가 아니었으면 승객 모두는 대형 참사의 주인공이 되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뉴스에서는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를 유발한 트럭 운전사가 크게 다쳤다고 했습니다. 사고 직 후 승객들의 안전을 살피던 버스 기사 얼굴에 흥건하던 피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때도 우리들 중 누군가를 위해 神이 다녀갔습니다.


* 인분(鱗粉) : 나비나 나방의 날개에 붙어 있는 작은 가루


#전등사 #교통사고 #도깨비

작가의 이전글 무릎 이야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