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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Jan 01. 2021

떡볶이를 좋아하지만 포크로는 먹지 않습니다.

(픽션)

1.

 

은주는 식탁에 기대선 채 이제야 한숨을 돌렸다.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아이들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십대 중반에 접어든 두 아들은 뭐든 잘 먹고 많이 먹었다. 코로나로 집에 머문 지 몇 달이 넘었다. 그러는 동안 삼시세끼 차려내는 것만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메뉴를 정하고 장을 봐서 음식을 만들다 보면 하루해가 짧았다. 월요일인 오늘 아침에도 밀린 빨래며 청소를 끝내고 점심 준비를 마치자 한 시가 훌쩍 지났다. 


점심은 떡볶이었다. 간편하게 한 끼 때우고 싶기도 했고 무엇보다 은주 자신이 먹고 싶었다. 주말 내내 기름진 음식으로 더부룩해진 속을 달래는 데는 이만한 게 없을 것 같았다. 대파와 파뿌리, 무, 다시마 그리고 이것저것 손에 잡히는 대로 냄비에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채수를 내는 동안 양념장을 준비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막상 일이 만만치 않았다. 양이 적어도 손 가는 건 마찬가지였다. 


재료가 잘 우러난 채수에 빨간 양념장을 넣어 풀면서 한소끔 더 끓였다. 마지막으로 큼지막하게 썰어 낸 떡과 어묵, 대파를 넣은 다음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밥 때가 늦어진 아이들은 그런 와중에도 포크를 빨며 식탁 주위를 맴돌았다. 예닐곱 살 꼬마들이 엄마 치맛자락 붙잡고 늘어지는 것 같은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해 은주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나타났다. 


그릇을 내려놓자마자 아이들은 ‘잘 먹겠습니다’를 외치고 달려들었다. 처음엔 들고 있던 포크로 먹더니 성에 차지 않은지 바로 내려놓고 숟가락을 가져왔다. 숟가락질 몇 번에 떡볶이는 금세 바닥을 드러냈다. 접시 긁는 소리가 끝나갈 무렵 식탁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포크가 눈에 들어왔다. 유난히 떡볶이를 좋아하지만 은주는 떡볶이 먹을 때 좀체 포크를 쓰지 않았다. 철들면서부터 늘 그랬다. 오늘도 아이들이 진작부터 포크를 들고 덤비지 않았으면 수저만 내놓았을 게 분명했다.


내던지듯 그릇을 싱크대에 옮겨 놓은 아이들이 “잘 먹었습니다”를 외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 동안 만든 걸 5분 만에 해치워버리다니.’라는 생각이 들자 살짝 허탈했다. 그러다 이내 ‘저렇게 맛나게 먹어주는 게 어디야. 고맙지 뭐’라며 마음을 고쳐먹었다. 의자에 앉으며 식탁 한쪽에 있던 냄비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냄비는 아직 따뜻했다. 떡 세 개와 어묵 두 조각 그리고 떡 크기로 어슷하게 썬 대파의 파란 줄기 몇 개가 부족한 양념 위에 앙상하게 누워 있었다. 바닥에는 주걱 자국이 선명했다. 아이들에게 양껏 담아 주느라 긁어모은 흔적이었다. 걸쭉해진 뻘건 국물 위로 어지럽게 그어진 금속성 줄을 보자 먹고 싶은 마음이 달아나 버렸다. 아니 조금 전 포크에 눈이 꽂힐 때부터 그랬는지도 모른다. 


조심스럽게 포크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떡, 어묵, 파를 순서대로 하나씩 끼웠다. 포크 끝에 아직 여유가 있는 것을 확인하고 떡을 하나 더 끼웠다. 이제 포크에는 떡 두 개와 어묵, 파 한 조각이 끼워졌고, 냄비에는 떡과 어묵, 파가 하나씩 남았다. 오랜 금기를 깨듯 천천히 포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긴장한 얼굴은 미열이 올라 발그래 해졌고 눈은 아까부터 따끔거리고 있었다. 


떡을 혀끝에 댔다. 달착지근하고 맵싸한 장맛이 미각을 자극해 왔다. 입맛이 진작 달아난 줄 알았는데 의외로 맛있었다. 떡을 입에 넣고 뽁뽁 소리가 나도록 국물을 빨았다. 입속에 들어갔다 나온 쪽은 하얀 맨살을 드러냈고, 반대쪽, 그러니까 포크에 꽂힌 부분은 여전히 불그죽죽한 장 옷을 입은 채였다. 입 안은 양념장 맛으로 넘쳐났다. 침이 가득 고여 맵고 짜고 단 맛이 중화되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눈앞이 흐릿해졌다. 포크와 떡, 냄비, 식탁 그리고 전깃불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물안경 없는 맨눈으로 물속에서 눈을 뜬 것 같았다. 눈꺼풀에 의지해 간신히 매달려 있는 물방울 너머로 여덟 살짜리 여자아이가 나타났다. 

 

© markus-winkler, 출처 Unsplash


2.

 

후텁지근한 오후였다.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은 힘이 없었고 사람들은 유속 느린 물속에서 길게 자란 수초처럼 천천히 흐느적거렸다. 무더위에 뒷덜미를 잡히기라도 한 것 마냥 시간마저 더디게 흘렀다. 또래들과 한참 놀고 났는데도 해는 여전히 머리 꼭대기에서 불을 뿜고 있었다. 시장 통 좁은 골목길에서 하는 놀이라야 늘 같았다. 고무줄, 땅따먹기, 술래잡기를 번갈아가며 했는데 생기도 없었고 재미도 없었다. 혼자 있는 게 싫어 집에서 빠져나온 아이들이 그저 시간을 때우기로 어울릴 뿐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친구들 뒤통수를 보며 어린 은주도 걸음을 옮겼다. 지금 연탄불을 갈아 놓아야 저녁밥을 제때 준비할 수 있었다. 후끈거리는 열기와 뒷골을 찌르는 냄새를 참아가며 연탄구멍을 맞추는 건 여덟 살짜리 꼬마에겐 힘들고 버거운 일이었다. 더욱이 한여름 오후에는 열기도 냄새도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한없이 느려졌다. 


한 손으로 코를 틀어막고 고개를 외로 돌려가며 겨우 연탄을 갈았다. 뚜껑을 덮고 나서야 턱까지 차오른 숨을 가쁘게 내뱉었다. 작은 심장이 콩콩 뛰는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엄마는 참 겁도 없지. 저 어린애한테 어떻게 연탄 가는 걸 시켰을까?’ 포크를 만지작거리던 은주는 마치 그 옛날 연탄불이 내뿜는 열기와 냄새가 코끝에 닿기라도 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


찬물로 목을 축인 은주는 부뚜막에 걸터앉았다. 한참 우두커니 있더니 마침내 결심한 듯 일어났다. 여전히 햇빛이 내리꽂히는 마당을 지나 바깥으로 나왔다. 대문에서 잠시 멈춰 서서는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뺐다. 손에는 100원짜리 두 개가 들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동전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내처 걷기 시작했다. 주머니 속에서 동전에 새겨진 문양을 따라 손가락 그림을 그리며 걷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도착한 곳은 시장 안에 있는 분식집이었다. 시장 사람들과 조무래기들을 상대로 김밥과 라면, 우동, 순대 그리고 떡볶이를 팔았다. 주인아주머니는 커다란 몸집에 성격이 다부졌다. 괄괄하고 서슴없는 말투 때문에 볼 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은주는 땀이 밴 동전 한 개를 건네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떡볶이 주세요.” 했다.


아주머니가 포크를 집어 들었다. 길이가 같은 떡과 어묵이 끝 선이 조금도 엇나가지 않게 꿰어지는 걸 보며 은주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다 새빨간 장옷이 뚝뚝 흘러내리는 떡볶이가 눈앞에 나타나자 화들짝 놀랐다. 매일 드나들며 사 먹으면서도 매번 그랬다. 제 손바닥만 한 포크에 제 얼굴의 절반이나 되는 크기로 꿰어진 떡볶이를 받아 들며 얼떨결에 뒤로 한발 물러섰다. “오늘은 왜 혼자야? 미경이는?” 성의 없는 질문이 날아왔지만 배시시 웃어만 보였다. 겁먹은 듯 커다란 눈이 한 번 꿈뻑 거렸다. 고개를 까딱여 인사를 한 다음 골목 한쪽 그늘진 벽을 찾아 기대섰다. 


포크 끝에 매달린 떡을 조심스럽게 혀 끝에 댔다. 달고 매운 맛이 찌릿하게 올라오더니 뒷덜미를 거쳐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무료했던 오후가 환해지고 한없이 늘어졌던 나뭇잎이 팽팽하게 살아나는 것 같았다. 때마침 어딘가에서 불어온 바람이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었다. 조금 전 마신 연탄가스의 기분 나쁜 냄새도 금세 잊혀졌다. 


포크에는 떡 세 개와 어묵 두 개가 번갈아 꽂혀 있었다. 끝에서부터 순서대로 하나씩 빼내 먹기 시작했다. 첫 번째 떡과 어묵, 그리고 두 번째 떡까지는 순조로웠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였다. 작은 입으로 포크 깊숙이 꽂혀 있는 어묵과 떡을 빼내 먹자니 꽤나 번잡했다. 요리조리 돌려가며 가장자리를 잘라 먹은 다음 몽당해진 떡을 입술로 물어 앞으로 끌어낸 뒤에야 남은 조각을 입에 넣을 수 있었다. 입에는 어쩔 수 없이 불그죽죽한 양념이 묻었고, 애써 궁리하느라 떡볶이 맛을 놓치고 말았다. 옷소매로 입가를 훔치며 돌아설 때면 매번 속이 상했다. 


‘그릇에 담아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못했다. 이미 웬만한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던 은주 입장에서도 고작 100원어치 떡볶이를 사면서 설거지 꺼리 늘리는 수고를 끼칠 수는 없었다. 더구나 우락부락한 아주머니는 한 번도 편하게 대해 준 적이 없었다. 접시 운운하는 건 애초에 안 될 일이었다. 

 


3.

 

은주가 떡볶이를 두고 포크와 씨름하는 동안 엄마는 화장품을 팔러 다녔다. 화장품과 샘플이 가득 담긴 가방을 끌고 아침에 나가 하루 종일 이집 저집 돌아다녔다. 저녁 무렵에 돌아와서는 은주가 숨을 참아가며 갈아 놓아 화력이 한껏 좋아진 연탄불로 저녁밥을 준비했다. 엄마가 발품을 파는 낮 시간에 은주는 오롯이 혼자였다. 혼자 밥을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하고 숙제를 했다. 주머니에 있던 동전 두 개는 하루치 용돈이었고 고사리 손으로 낮 살림을 산 데 대한 대가였다. 


고등학교 무렵에서야 엄마가 만들어준 떡볶이를 먹을 수 있었다. 요구르트를 거쳐 우유 배달을 마지막으로 엄마가 행상을 그만두었을 때였다. 엄마가 있는데도 엄마가 없는 것 같은 상실감도 그때 비로소 끝났다. 하얀 접시에 담긴 떡볶이는 유난히 빨갛고 예뻤다. 입가에 묻은 양념을 소매로 닦으며 시장을 빠져나올 때 머릿속에 그려보던 그림 그대로였다. 처음으로 엄마가 만든 떡볶이에 생각이 미치자 기어이 눈물이 떨어졌다.


은주 속에서 떡볶이와 포크가 화해할 수 없을 만큼 적대감을 키워가는 동안 엄마 무릎 속 연골은 닳고 닳았다. 오랜 행상의 후유증이었다. 병원에서 보여 준 사진에서는 너덜너덜한 연골이 위태롭게 붙어 있었다. 의사는 계단은 물론이고 오래 걷는 것도 안된다고 엄숙하게 선언했다. 움직일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것처럼 아팠기 때문에 의사의 경고는 사실 하나마나 한 샘이었다.


탈이 난 건 무릎만이 아니었다. 엄마는 잠을 자지 못했다. 수면제도 소용이 없었고 화살나무를 비롯해 온갖 좋다는 민간요법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게다가 가스, 전기, 수도 어느 것 하나 걱정거리 아닌 게 없었다. 전등이 깜빡거리기만 해도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했고, 윗집 수돗물 소리가 조금 크게 들려도 안절부절 못했다. 언젠가 엄마는 말했다. “너 어릴 때 집에 혼자 두고 일 다니면서부터 이렇게 된 거야. 집전화도 없던 시절 아니니? 어린 걸 두고 밖에서 돌아다니다 보니 속이 새카맣게 타버린 거지 뭐.” 연골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마음이 얇아져 버린 엄마는 사람들이 흔히 신경쇠약이라고 하는 것과 함께 중년 이후의 삶을 버티고 있었다.


문득 내려다본 손에는 아직 포크가 들려 있었다. 떡볶이는 진작부터 차갑게 식어 있었다. 조심스럽게 냄비에 포크를 내려놓았다. 호흡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가 핸드폰을 들었다. 전화기 속에서 엄마가 점심은 먹었냐고 물었다. 

“응, 애들하고 떡볶이.” 대답하자,

“밥을 먹여야지 왜 떡볶이야?” 하며 나무라는 말투가 돌아왔다.

“유난스럽게도 좋아하더니. 애들도 좋아하니?” 묻는다.

“그냥. 예전에 나 고등학교 때 엄마가 떡볶이 만들어 준 거 기억나요? 내가 하면 왜 그 맛이 안나요?”

”얘 두, 참, 뜬금없긴! 고추장 풀어 대충 만든 게 뭐가 맛있었다고 그래. 오만가지 좋은 거 다 넣고 할 텐데. 니가 한 게 훨씬 더 맛있겠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다음부턴 밥 해 먹여.“ 하고는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급한 일도 없는 양반이 별일이네’라고 생각하면서도 다행이다 싶었다. 참고 있던 울음이 곧 터질 것 같았다. 그때 작은 아이가 방에서 나왔다. 냄비에 남아 있던 떡볶이를 보더니, “엄마 안 먹어? 내가 먹을까?”하더니 말릴 사이도 없이 냉큼 포크를 집어 입에 넣어 버렸다. 

“그거 엄마가 먹던 거야” 라고 뒤늦게 은주가 말했다.

“괜찮아. 맛있기만 한데 뭐.” 작은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곤 냄비에 있던 것도 마저 후다닥 먹고는 방으로 다시 휭 들어갔다. 손으로 눈물을 훔쳐 낸 은주 얼굴에 다시 미소가 퍼졌다. 



#떡볶이 #엄마 #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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