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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Feb 02. 2021

송영후. 애(送營後. 哀)


살면서 배변 활동 하나 만큼은 걱정 없었다. 매일 아침이면 전날 먹은 것들을 몸 밖으로 편안하게 내보내곤 했다. 힘줄 필요도 없이 그저 허리만 펴고 있으면 저절로 해결되었다. 옛날 절집에서는 화장실을 해우소(解憂所)라고 했다지만 그 일이 왜 ‘해결’해야 하는 ‘근심’인지 알지 못했다. 민석에게는 그저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일 뿐이었다. 그랬는데, 화장실을 못간지 벌써 며칠째다.


리듬이 깨져서인지 몸은 긴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뒤가 무거워지면서부터 머리도 지끈거렸다. 두통 역시 평생 모르고 산 것 중 하나였지만 사나흘 계속되다 보니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커다란 돌멩이가 가슴 한가운데 올라앉아 있는 것 같았다. 불현듯 답답증이 밀려오면 일부러 숨을 끌어모은 뒤에 단박에 크게 내뱉어야 호흡을 다스릴 수 있었다. 마스크 때문일 수도 있지만, 1년째 쓰고 있는 마스크가 갑자기 숨을 조여 올 리 없었다.


얼이 빠진 것 같기도 했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술에 취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린 시절 매직아이를 처음 봤을 때 그랬다. 선명하면서 몽환적인 느낌, 명징하면서도 몽롱한 세상에서 혼자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다. 불안감이 전해졌는지 아내 유미는 민석에게 장거리 운전을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민석 스스로도 자신이 이런 감정의 시간을 경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2주일 전, 그러니까 아들 석영이 입대하는 날 아침까지도 아무렇지 않았다. 석영이 집에서 마지막 밥을 먹는 것을 보면서도 동요는 없었다. 훈련소 주변에 눈이 제법 많이 내렸다는데 가는 길이 미끄럽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정도였다. 남들 다 가는 군대인데 애써 부여할 의미도 없었고 애 끓일 일도 없었다.


마음이 흔들린 건 석영의 뒷모습 때문이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훈련소 정문을 지나 작은 아스팔트 광장에 도착할 때까지 셋은 약속이나 한 듯 아무 말이 없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민석은 자식을 군에 보내는 부모심정을 처음으로 맞닥뜨렸다. 짧게 깎은 머리에 모자를 깊게 눌러 쓴 많은 아들들과 근심걱정 가득한 얼굴을 한 부모들 무리에 섞여 둥둥 떠다니는 것처럼 걸었다. 가슴이 먹먹해지더니 뒤이어 얼굴에 열이 올라 화끈거렸다. ‘부대 안에 들어와서야 실감하다니. 나도 참 미련하고 무심하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아들에게 미안하고 아내에게 부끄러웠다.


민석은 석영이 제 엄마를 안아주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둘은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서 있었다. 아들도 엄마도 말은 없었다. 그러나 밀착된 세포 하나하나를 통해 온갖 당부와 다짐이 오고 가는 게 보였다. 엄마와 포옹을 푼 석영이 민석을 향해 말했다. “아빠도 안아줄까?”


목젖에서 기어이 뜨거운 것이 올라오고 말았다. 멋진 말로 위로와 용기를 주고 싶었는데, 정작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우물쭈물하는 사이 아들의 팔이 민석의 목을 감싸 안아왔다. 두꺼운 겨울 외투가 둘 사이를 방해했다. 게다가 마스크가 한번 걸러 내는 바람에 아들의 숨결은 한없이 건조하게 다가왔다. 피붙이를 오롯이 느끼기엔 무언가 부족하고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 “……” 잠시 후 석영이 떨어졌다. 그 순간 ‘세상 한가운데 이제 아이를 내보내야 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맙고 대견한 마음 한 켠에 안쓰럽고 애틋한 마음이 교차했다. 탈 없이 커 주어 고맙고 어리고 약하게만 느껴져 딱했다. 민석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아들이 떨어져 나간 품으로는 찬바람이 밀려들었다.


엄마와 아들이 무어라무어라 말을 주고받고 있었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석영이 태어나던 날, ‘20년 후면 모병제로 바뀌겠지’라고 생각했던 걸 떠올리며 초점이 흐려진 눈으로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호각 소리가 들려왔다. 꿈결에서나 들릴 법한, 마치 물속에서 파동을 통해 감지되는 신호처럼 아주 멀게 느껴졌다. 문득 정신을 가다듬어 보니 아차 싶었다. 군복을 한 조교들이 한 참 전부터 분주하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제 시간이 되었다.


마지막 의식이 치러졌다. 석영은 전화기를 꺼내 한 번 앞뒤로 돌려보고는 민석에게 건넸다. 제 몸인 양 항상 붙어 있던 전화기를 떼어내는 순간은 엄숙했다. 숱하게 마음을 다잡아 왔겠지만 막상 현실로 닥쳐오자 흔들리는 것 같았다. 전화기를 건네면서도 석영은 민석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불안한 눈길로 먼 산을 바라볼 뿐이었다.


민석은 선언하듯 석영의 등을 다독였다. 잘 참아오던 유미가 어깨를 들먹이기 시작했다. 아들은 천천히 뒤돌아서 걸어갔다. 발걸음은 느릿했고 어깨는 잔뜩 움츠린 채였다. 맥이 풀린 것 같은 힘없는 걸음 탓에 석영의 등에 올라탄 두꺼운 흰색 털옷이 다리를 끌고 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민석과 유미는 그 자리에 붙박여서 아들을 바라보았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2분 남짓 걸렸다. 가끔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를 반복하는 모양새가 울음을 꾹꾹 참고 있는 듯했다. 그러면서도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걸음걸이와 고개짓, 주머니 깊이 찔러 넣은 두 손 그리고 주변을 떠도는 차가운 공기와 조용하고 묵직한 소음 어느 것을 통해서도 아들의 표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림자가 모퉁이를 돌아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뒤에야 민석은 유미의 어깨를 두드렸다. 돌아서자는 신호였다.


뒷모습, 그러니까 터벅터벅한 발걸음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아들에게 스쳐 갔을 오만가지 생각이 허공을 헤매다 민석의 머릿속에 들어와 이것 저것 헤집어 놓은 것 같았다. 석영이 꾸역꾸역 삼킨 눈물이 마치 민석의 목젖을 밀어젖히고 올라오기라도 한 듯 입속 어딘가에서 찝찌름한 액체가 느껴졌다. ‘정말 들어갔구나. 들어가 버리고 말았구나.’ 아들은 이제 막 시작된 청춘의 첫 토막을 잘라내 꼬깃꼬깃 접어 두어야 했다. 입에서는 단내가 났고 그때부터 매사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더디게 느껴져도 시간은 계속 흘러 어느새 2주가 지났다. 볼일을 제대로 보지 못해 뒤가 꽤나 무거워 지던 차였다. 동이 트면서부터 내린 눈이 제법 쌓이고 있었다. 마침 일요일이라 민석은 하릴없이 앉아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차분하게 내려앉는 눈 위로 세상 소음이 모두 빨려 들어간 것 마냥 사위는 고요했다.


그 때 전화기가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화들짝 놀라며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심호흡을 크게 했는데도 “여보세요”하는 목소리는 이미 평소의 옥타브를 한참 넘어서 있었다. “아빠, 나 석영이” “그래 석영이구나.”


석영의 목소리는 밝았다. 메여있는 게 힘들긴 해도 견딜 만하다고 했다. 걱정을 덜어주려는 흰소리일 수도 있지만, 민석은 ‘아무렴 어때’라고 통화하는 내내 생각했다. 그거면 된 거였다.


짧은 통화가 끝났다. 비로소 긴장에서 벗어난 민석은 잠시 후 화장실에서 묵은 근심을 덜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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