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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Mar 29. 2021

이런 하루, 이런 밥상

산골의 어느 봄 날

하루 종일 햇볕이 맑았습니다.

하루 종일 바람이 빛났습니다.


먼산 흰 눈이 찬기운을 뿜어내려도

아랫마을 매화향은 산수유를 앞세우고 서슴없이 치받습니다.


묵은 검불 걷어내고 거름을 냈습니다.

도라지씨를 뿌리고

겨우내 산돼지 등쌀을 견뎌낸 움파를 옮겨 묻습니다.


땅의 봄을 달리는 2월!


곤즐박이는 나를 맴돌고,

나는 곤즐박이를 맴돌았습니다.


물속에서도 빛난 햇살,

다슬기는 나뭇잎을 백골로 만들었습니다.


방아, 머위, 삼나물은 이미 촉을 내밀었고,

명이는 진작에 잎을 키워냈습니다.


머위 잎 여린 잎과 무는 데쳐

나물로 무쳤습니다.


잎보다 먼저 올라온 머위꽃,

밭에서 캐낸 어린 우엉은 튀겨냅니다.


엇갈리는 겨울과 봄을 한 상에 올리고 보니

잊있던 술생각이 납니다.


오래 숙성된 막걸리!

아내는 탁주로

나는 맑은 술로 잔을 채웁니다.


씽그럽게 속을 훑더가는 술,

입술만 적시고 물려도

봄 밤 상차림이 가득찹니다.


묵은 옥수수로 당분을 보태고,

산수유 맑은 물로 하루를 적십니다.


이튿날 새벽,

창문으로 달빛이 들어옵니다.


푸른 새벽이 하얀 아침으로 넘어가는 동안

맑은 햇빛과 빛나는 바람을 되새김질하며

봄 꿈으로 되돌아갑니다.


햇빛에 바래고 다슬기가 먹어치워 백골이 된 나뭇잎
머위꽃은 잎과 같이 올라오는데, 튀김으로 먹으면 좋고 쌉싸름한 맛이 장아찌로도 일품입니다
무나물, 머위나물, 우엉튀김, 머위꽃튀김, 배추된장국, 막걸리로 봄 상을 차려냈습니다.
6개월동안 냉장고에 있던 막걸리를 꺼냈습니다.나는 맑은 술만 따르고, 아내는 흔들어 탁주 형태로 따릅니다.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입술만 적시고 물립니다.
산수유 꽃으로 차를 우립니다.생각만큼 향이나 깊이를 느끼지 못합니다. 산수유꽃은 눈으로만 보기로 합니다
이튿날 새벽에 달이 창을 넘어왔습니다. 달빛이 새벽을 푸르게 물들입니다.


* 본문에서 2월은 음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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