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천어 축제 논란에 부쳐
산천어 축제 논란에 부쳐
어린 시절, 산골에서 자란 우리에게 물고기 잡기는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개울을 휘젓고 다닐 땐 추위도 더위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밥 때 놓치는 건 흔한 일이었고, 사금파리에 찔린 발뒤꿈치에서 피가 흐르는 것도 모른 채 몇 시간을 물에서 보낸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푹 빠져 놀았습니다.
당시에는 귀한 물건인 족대(반도라고 불렀습니다)와 제 키보다 크고 무거운 지렛대(대꼬라고 불렀습니다)를 둘러메고 도랑(또랑으로 불렀습니다)으로 가는 길은 언제나 신났고 언제나 설렜습니다. 웃고 떠들며 개울에 도착하면 첨벙대며 물에 들어가 고기를 잡았습니다. 눈 녹은 물이 흘러든 봄물은 여지없이 차가웠고, 장마가 쓸고 간 뒤에 맞이하는 여름 물은 넉넉했으며, 하늘 빛을 닮은 가을 물은 맑고 깊었습니다. 얼음을 깨고 발을 들여 놓은 겨울 물은 그냥 얼음 같았습니다.
잡은 고기는 구워먹습니다. 엄지와 검지를 아가미에 집어넣어 아래로 죽 잡아당기면 얇은 뱃가죽이 벗겨집니다. 내장을 끄집어내고 대충 헹궈 낸 다음엔 나무 꼬챙이에 하나씩 꿰어 모닥불에 걸쳐 놓습니다. 오돌오돌 떨면서 고기가 익기를 기다리지만, 사실 고기 맛을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뚜구리’라 불렀던 동사리는 성체라고 해 봐야 고작 십여 센티인 데다 머리통만 큰 가분수 형태라 살점이 별로 없습니다. 더군다나 애어른 할 것 없이 훑고 다니는 통에 큰 놈들은 이미 씨가 말랐으니 우리에게 얻어 걸린 운 나쁜 뚜구리는 대게 손가락 크기 정도 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작은 걸 어설프고 개구진 아이들이 불장난을 하며 굽다보니 시커멓게 타버리기 일쑤입니다. 통째로 들고 뜯어보지만 입술이며 옷에 온통 검댕만 묻을 뿐 소득은 신통치 않습니다.
어른들 흉내 내느라 날로 먹어보기도 했습니다. 작은 걸 골라 나름 깨끗하게 손질해 고추장에 찍어 통째로 털어 넣습니다. 우물우물 씹어 봅니다. 껍질째다 보니 미끄덩거려 잘 씹히지 않습니다. 뚜구리는 뼈가 억샌 축에 속하다는 걸 그 땐 몰랐습니다. 술 없이 먹는 회는 맛이 없다는 것도 몰랐습니다. 어렵사리 몇 번 씹어 보다가 고추장 맛이 빠지면 ‘퉤’ 뱉어 버립니다.
돌이켜보니 우리는 ‘놀이’를 위해 물고기를 잡고, 죽이고, 배를 가르고, 구웠고, 종내는 먹는 ‘흉내’를 냈습니다. 먹는 건 애초에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를 잡는 ‘재미’에 빠져 사시사철 물에서 허우적거렸습니다. 그렇게 100만 마리 쯤 되는 뚜구리가 내 손에서 죽었습니다.
겨울에 물고기를 잡다가 개구리가 얻어 걸리면 같이 구워 먹었습니다. 눈밭에 던져두어 뻣뻣해진 개구리는 우선 껍질을 벗겨야 합니다. 뒷다리 끝에 있는 물갈퀴를 조심스럽게 찢어냅니다. 그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잡아당기면 탱탱한 근육과 흐물흐물한 껍질이 쉽게 분리됩니다. 다른 쪽 다리를 마저 벗겨낸 다음 사타구니에 모아진 양쪽 다리의 껍질을 당겨 상체도 벗겨 냅니다. 허리를 뚝 잘라 윗 쪽은 버리고 뒷다리만 모아 불에 굽습니다.
껍질이 벗겨진 개구리 뒷다리는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역동적인 근육은 나신인 상태에서 훨씬 더 도드라집니다. 가지런하고 늠름한 근육과 그 사이에 남아 있는 붉은 핏기는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일깨워 줍니다. 하지만 잠깐입니다. 모닥불 위에서 뒤틀리고 오그라드는 모습은 미안한 마음을 금방 잊게 만듭니다. 당연하게도 개구리 뒷다리 구이 역시 먹을 게 없습니다, 아무리 조무래기들이래도 손톱만한 살점 두어 개는 이빨 사이에 낄 뿐입니다.
내가 자란 시골에서는 겨울에만 개구리를 먹었습니다. 개구리가 활동을 시작해 파리를 잡아먹는 여름에는 눈에 띄어도 거들떠보지 않았습니다. 겨울 개구리와 여름 개구리는 완전히 다른 존재였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여름 개구리가 죽임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아닙니다.
심심하고 무료한 여름 오후, 개구리를 한 마리씩 잡아 둘러앉습니다. 한 손에는 빨대 모양의 마른 풀이 들려 있습니다. 사타구니에서 몸통 방향으로 대롱을 찔러 넣고 입으로 바람을 불어 넣습니다. 배가 빵빵해진 개구리는 바닥에 내려놓아도 쉬 움직이질 못합니다. 한참을 허우적거리다가 구멍 뚫린 똥꼬로 바람이 조금씩 빠지면 느릿느릿 움직입니다. 바람을 넣고 빼고를 몇 번 더 하다가 지치고 탈진한 개구리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던져 버리고 다른 놈을 괴롭혔습니다. 겨울과 여름을 걸쳐 1만 마리 정도의 개구리가 내 손에 죽었습니다.
당시에는 도롱뇽도 흔했습니다. 특히 봄에 새물 들어온 곳에는 어김없이 도롱뇽 알이 있었는데, 거기를 뒤져보면 도롱뇽이 있었습니다. 족대질을 할 때도, 샘물이 올라오는 개울가에서 물막이 공사(?)를 하며 놀 때도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도롱뇽은 아이들에게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끈적거리는 촉감이 께름칙합니다. 무심결에 집었다가 살갗에 있던 점액질이 묻어나면 괜히 움찔하며 내동댕이 쳐버립니다. 물속에 사는데 도마뱀처럼 네발이 달렸다는 것도 쉽게 손이 가는 걸 꺼리게 만듭니다. 결정적으로 도롱뇽은 먹을 수 없었습니다. 알집과 더불어 약으로 쓴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어린 우리에겐 관심 밖이었습니다.
물에서 놀다가 지루해지면 도롱뇽을 괴롭히며 시간을 보냅니다. 가재만큼 느린 도롱뇽은 쉽게 잡힙니다. 한 마리씩 차지하고 서너 놈이 둘러앉습니다. 얕고 잔잔한 물에 돌로 경기장을 만들고 경주 시합을 시킵니다. 네발로 기는 놈, 꼬리로 헤엄치는 놈, 돌 밑으로 숨어들어가는 놈, 되돌아가는 놈 제각각입니다. 한참 동안 손을 타 기진맥진해지면 놀이도 끝이 납니다. 무슨 심보인지 도롱뇽을 큰 바위에 올려 둡니다. 지친 도롱뇽은 물을 찾아가지 못합니다. 바위위에서 말라 죽거나, 새가 와서 채 가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천 마리 쯤의 도롱뇽이 내 손에 죽었습니다.
벌이나 뱀은 무서워서 죽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개울이나 길가에서 벌집을 발견하면 그 즉시 없애야 했습니다. 무서워서 벌벌 떨며 연기를 쬐어 벌을 쫒아냅니다. 벌이 도망가고 나면 벌집을 떼어냅니다. 그리곤 벌집 속에서 꼬물거리는 애벌레를 끄집어 내 바위위에 나란히 늘어놓습니다. 며칠 전 땡비에 쏘인 복수는 그렇게 처절한 응징으로 끝납니다.
길가다 뱀을 맞닥뜨리면 대부분 도망을 갑니다. 그런데 어쩌다 용기백배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운 나쁜 뱀은 처음엔 돌로, 나중엔 막대기 세례를 받고 처참하게 짓이겨 집니다.
케케묵은 기억을 다시 떠올린 건 ‘산천어 축제’ 때문입니다. 해야 한다 말아야 한다 찬성과 반대가 맞서고 있습니다. 고소고발도 이루어진 모양입니다. 찬성 측은 ‘축제는 축제일뿐’이라고 합니다. 도시 사람에게 자연 속에서 추억을 쌓을 기회를 주고, 지역주민에게는 돈을 벌어다줍니다. 이미 성공한 축제로서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겨울 축제를 이제 와서 터부시할 이유가 없습니다. 반대하는 쪽도 분명한 이유를 댑니다. ‘동물학대’라고 합니다. 비록 양식(養殖)이긴 하지만 5일이나 굶긴 물고기를 낚시 바늘과 미끼가 득시글거리는 곳에 밀어 넣는 것 자체가 잔인합니다. 생명을 파괴하는 카니발에 불과합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송어축제’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에게도 내 어린 시절의 놀이문화를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가족은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빈손으로 돌아 나오는 꽝조사에게 주최 측이 나눠주는 두 마리를 받아 근처 천막에서 구워 먹었는데 별난 맛은 아니었습니다. 그날 이후 두 번 다시 발길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기를 못 잡은 게 억울해서 만은 아닙니다.
내가 본 현장은 욕망과 생명이 충돌하는 아수라였습니다. 물고기를 잡으려고 얼음 구멍에 고개를 처박고 있는 사람, 팔뚝만한 송어를 낚아 올리고 환호하는 사람, 물건과 음식을 팔려고 분주한 사람, 상기된 얼굴로 우왕좌왕 오가는 사람과 사람들이 거기 있었습니다. 한쪽에선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가 끊임없이 얼음 밑으로 투입되었고, 한쪽에선 꼬맹이에게 낚여 올라온 물고기가 얼음위에서 뻣뻣하게 굳어가고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물고기들와 버려지는 물고기들. 얼음바닥에는 흥건한 피가 고여 있었습니다. 아름답지 않았습니다. 천렵과 살생에 익숙한 나에게도 낯설고 기괴하고 처참한 풍경이었습니다.
축제라는 이름으로 살생을 유혹합니다. 생명을 탐하는 추억을 켜켜이 쌓아 올리고, 그렇게 쌓인 추억은 생명을 더욱 가볍게, 함부로 해도 되는 그 무엇으로 치부하게 합니다. 생명을 대하는 우리시대 감수성이 딱 그랬습니다. 추억 팔이도 결국 ‘돈’ 문제라는 생각에 이르면 섬뜩해집니다. 돈을 벌기 위해 무수한 생명을 팔았고, 추억을 사기 위해 무수한 생명을 죽였습니다. 한마디로 죽음의 굿판을 벌인 겁니다. 이 모든 난장판을 공공의 이름으로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산천어축제라고 다르지 않을 겁니다.
먼 옛날 고대사회에서는 동물 희생제를 통해 우주와 인간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고 했습니다. 희생은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죽음은 성스러웠습니다. 그래도 폭력과 살생을 견디기 힘든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희생당하는 동물도, 희생을 강요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고통스러운 희생제를 평화적인 방법으로 대체하는 데서 종교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그 길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산천어 축제에 관한 논쟁이 반가운 건 그래서입니다. 우리의 생명 감수성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리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적어도 물고기들이 죽어나가는, 아니 물고기들을 죽이는 우리 행동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우주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대의명분도 없이, 오로지 재미와 놀이를 위해 물고기를 집단으로 죽이는 건 아무래도 정당성을 얻기 힘들어 보입니다. 논쟁이 한 걸음 더 나아갔으면 하는 바램으로 켜켜이 쌓인 살생의 기억을 끄집어 냅니다.
내 손에 죽어간 숱한 생명들을 다시 떠올립니다. 뚜구리나 개구리, 도롱뇽 외에도 많은 목숨을 내손으로 끊었습니다. 집에서 키우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 죽인 경우도 있었고, 덫으로 산토끼를 잡은 적도 있습니다. 지금도 시골에 손님들이 올 때면 이따금 족대질로 꺽지며 퉁구리를 잡아 매운탕을 끓입니다. 바다, 민물 가릴 것 없이 낚시도 여전히 좋아합니다.
토끼를 잡을 일은 더 이상 없겠지만 천렵과 낚시를 당장 멈출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한 번 더 생각하고 움직여야겠습니다. 내 손을 생명의 기운으로 채울 것인지 선혈 낭자한 죽음으로 채울 것인지는 오로지 내 선택에 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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