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의 목을 비틀다
오른손에 있던 오골계가 먼저 늘어졌습니다. 닭장에서 잡을 때는 시끌벅적 요란했는데 막상 모가지가 손에 들어오자 싱겁게 끝났습니다. 조금 전까지 펄펄 날아다녔다는 게 믿기지 않습니다. 윤기 나는 검은 깃털이 매력적인 오골계는 5분도 안 돼 죽어 버렸습니다.
왼손 토종닭은 달랐습니다. 내 손으로 생명을 끊고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만큼 오래 버텼습니다. 실제로 10분이었는지 20분이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오만가지 생각, 그러니까 녀석이 병아리로 처음 왔을 때 텃밭을 파헤치던 작고 깜직한 발가락, 초란을 낳았을 때의 감격, 해 지기 직전 닭장으로 돌아오면서 실룩거리던 뒷 태, 횃대에 올라 꾸벅꾸벅 졸던 모습을 하나씩 주워 넘기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생명 가진 모든 것의 섭생은 결국 타자(他者)의 생명을 대가로 한다는 생각도 그 때 처음 했습니다. 모가지를 쥔 채 꼼짝없이 상념에 갇혀있는 동안 닭은 마침내 죽음의 문턱을 넘었고 울대에서는 더 이상 꿀렁임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손에서 힘을 뺐을 때는 뻐근하게 팔이 저려왔습니다. 물먹은 솜처럼 축 쳐졌어도 닭은 아직 따뜻했습니다.
내 오른손에 목이 졸려 죽은 오골계는 동네 어느 형님이 키우던 닭이었습니다. 이전에도 한두 번 봤지만 그게 다였습니다. 그 정도 스치는 인연으로는 감정이 개입할 여지가 적었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칼날 같은 살생의 기억이 정수리에 박히긴 했지만 숨은 금새 끊어졌고 내 감각은 무뎠습니다. 생명이 사그라지는 절체절명을 그 정도 감각으로 감당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습니다.
왼손에 죽은 토종닭은 내가 키운 녀석이었습니다. 부화한지 두 달된, 중닭 직전의 병아리를 데려다 1년 넘게 거두었습니다. 모이를 대느라 농협 농자재마트를 드나들게 만들었고, 싸구려 방수포와 철망으로 허접한 닭장 만드는 수고를 안겨 주었으며, 산란의 고통과 날계란의 고소함을 맛보게 해 준 녀석이었습니다. 애지중지는 아니었지만 내손으로 건사해 왔으니 소 닭 보듯 할 수 없는 건 당연했습니다. 갖은 감정이 막무가내로 쳐들어와 절명의 시간은 길어졌고 찰나는 영원처럼 정지되었습니다. 10여분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긴 시간이었고, 2kg의 눈금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게였습니다.
그날 우리 일행은 내 토종닭 두 마리와 다른 분의 오골계 두 마리를 잡아먹었습니다. 냄새를 없애고 보양의 기운을 더하겠다고 엄나무와 느릅나무 같은 온갖 약재를 때려 넣고 오랫동안 고았습니다. 어수선해서인지 죽은 토종닭의 눈 때문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는 먹는데 집중하지 못했고 애꿎은 막걸리만 축냈습니다. 같이 삶은 대파가 별미였다는 기억은 있는데 고기 맛은 기억에 없습니다.
오른손과 왼손의 죽음이 다르게 느껴진 건 “관계” 때문입니다. 내 손으로 키운 토종닭은 어쩌다 마주친 닭 한 마리가 아닙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생명가진 모든 것과 생명 갖지 않은 모든 것에 정령이 있다고 믿습니다. 게다가 주인과 그 주인에 속한 모든 것은 정령을 매개로 꽁꽁 묶여 있다고 합니다. 매일 눈빛을 교환하고 모이를 거둬 먹였으니 세상 여느 닭과는 애초에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저울의 눈금으로 설명되지 않던 무게는 나와 녀석 사이의 정령이 닭에 올라 앉아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오골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손수 키우지는 않았지만 목숨을 끊고 내장을 들어내는 과정에서 나와 녀석 사이에는 특별한 관계가 만들어졌습니다. 한 생명을 앗아가는 동시에 다른 생명의 유지를 예비하는 관계입니다. 이보다 더 특별한 관계는 없습니다. 벌거벗은 채 진열된 닭고기를 카트에 주워 담는 “쇼핑” 과정에서는 생길 수 없는 관계입니다. 육가공업체의 위탁에 의한 공장식 사육은 농가와 닭의 관계를 단절시키고, HACCP 인증업체의 최신식 설비에 의한 대량 도축과 가공은 오골계를 잡을 때 내 정수리에 꽂힌 섬뜩함이 들어설 기회를 막습니다.
먹기 위해 닭을 죽임으로서 맺어진 살생의 관계는 역설적이게도 생명의 관계입니다. 마당에서 뛰어 놀던 닭을 잡아 고기로 장만하는 과정은 서릿발 같은 생명을 경험하게 했습니다. 살아있는 생명과 살아있는 관계가 형성되었고 이런 관계는 죽임과 그 이후의 단계, 즉 먹는 행위에까지 이어졌습니다. 내가 토종닭과 오골계에 감정을 이입하게 된 건 우리 사이에 생명의 관계와 살생의 추억이 개입한 까닭입니다.
한 번 더 역설적으로 살생의 추억은 생명을 존중하는 근원이 됩니다. 살생의 추억은 내 밥상에 오른 먹거리가 한 때 살아 숨 쉬던 생명이었음을 자각하게 합니다. 밥 한 알, 콩나물 한 가닥, 김치 한 조각도 생명입니다. 볶음멸치 한 마리, 고등어 구이 한 조각도 생명입니다. 후라이드 반 양념 반도 생명입니다. 돼지수육 한 접시, 쇠고기 장조림도 생명입니다. 이 모든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 바로 다듬어진 정육(正肉) 이전의 모습에 대한 기억, 곧 살생의 추억입니다. 내 귀한 음식이 살아있는 생명으로부터 왔음을 아는 이상 그 너머에 있는 모든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촘촘하게 분업화된 도시에 살면서 자기 손으로 식재료를 장만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먹기 위해 닭을 잡는 경험을 아무나 할 수는 없습니다. 식재료 준비를 넘어 ‘요리’ 자체도 시장의 손에 넘겨버렸습니다. 대기업이 만들어 편의점에서 파는 전자렌지 음식은 그 극단입니다. 식재료와 식사 준비는 철저하게 외주화(外注化)되었고 살생의 추억이 끼어들 여지는 없어졌습니다. 이런 판국이니 생명의 기억도, 생명의 관계도, 궁극적으로 생명에 대한 존중도 엷어집니다. “치느님” “폭풍흡입” 같은 가벼운 말 씀씀이와 들이 붙듯 음식을 털어 넣고 과장된 표정을 짓는 TV 속 화면은 생명에 대한 무분별하고 과잉된 소비를 보여줍니다.
각자의 삶에서 살생의 추억을 소환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생명의 관계를 복원할 방법은 있습니다. 바로 자기애(自己愛)의 확인과 실천입니다. 생명은 세포가 생로병사(生老病死)하는 과정입니다. 세포의 자리바꿈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오늘의 나는 어제의 내가 아니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내가 아닙니다. 매순간 새롭게 태어나는데 그런 나를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내가 먹는 음식입니다. 어제 먹은 음식이 오늘의 나를 이루고, 오늘 내가 먹는 음식이 내일의 나가 됩니다. 그러니 자신을 아끼는 사람은 눈 앞의 음식을 귀하게 여기고, 자신을 대하듯 그 원천인 모든 생명을 존중할 수밖에 없습니다.
맹자는 이양역지(以羊易之)를 통해 측은지심을 가르칩니다. 성인에게는 우연한 마주침조차 생과 사를 가르는 결정적인 “관계”가 됩니다. 하물며 직접 내 몸을 이루고, 앞으로 내 몸의 일부가 될 수 있는 치명적인 관계를 함부로 대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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