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게이션
2012년, 가을을 앞두고 용인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땅 집에 사는 게 소원이었던 나는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습니다. 이사 갈 동네 역시 아파트가 많았지만 외곽에는 오래된 시골마을이 있었습니다. 그곳이라면 땅을 밟고 살면서도 도시 편의시설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다른 식구들도 저마다의 이유로 땅 집 생활을 바라고 있었기에 의견은 쉽게 모아졌습니다. 여름이 끝나기 전 우리는 “마당 있는 집”을 구하기 위해 고기동을 헤매고 있었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서울 근교, 그것도 신도시의 대명사인 분당과 수지 좁은 틈바구니에 어떻게 이런 곳이 남아 있나 싶었습니다. 도시화의 물결에서 비켜난 고기동은 누구나 추억하는 시골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광교산과 바라산을 병풍으로 둘러 세운 채 골짜기를 따라 길게 자리 잡은 마을은 편안했습니다. 전원주택이 많았는데 원주민(?)의 농가주택도 더러 있었습니다. 그림 같은 집을 짓겠다고 그림 같은 산허리를 허무는 폭력에 눈살이 찌푸려지고, 깍두기처럼 네모진 빌라가 부드러운 풍경에 날카로운 흠집을 내도 당시 고기동은 포근했습니다. 승용차 두 대가 어깨가 맞닿을 정도로 아슬아슬 지나야 하는 좁고 구불구불한 도로조차 정겨웠습니다.
이사는 10월말이었습니다. 아직 가을, 모든 게 좋았습니다. 창문으로는 아이들이 다닐 작은 학교가 보였고 집 앞 은행나무는 바람 따라 노란 이파리를 우두두 뿌려냈습니다. 마을 입구 저수지는 아침마다 물안개를 피워 올렸는데, 멀리 불곡산을 막 넘어온 햇살이 내려앉으면 꿈결 같았습니다. 새소리에 잠을 깨고 멀리 개 짖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습니다. 땅 집에서 처음 맞는 가을은 낙엽 타는 냄새처럼 구수했습니다. 세상 관심에서 비껴난, 그래서 더 귀한 비밀정원에 들어앉은 기분이었습니다. 이때까지였습니다. 딱 이때까지만 좋았습니다.
집은 야트막한 산의 북쪽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참나무와 밤나무도 섞여 있었지만 산의 주인은 소나무였습니다. 북향과 소나무! 환상적인 복식조의 위력을 알지 못한 게 화근이었습니다. 땅 집에 눈이 멀어 주변을 살피지 못한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한 겨울 눈 내린 밭을 눈여겨 본 사람은 한 뼘 남짓한 밭이랑도 남쪽과 북쪽이 다르다는 걸 압니다. 이랑 남쪽은 해가 나면 곧바로 눈이 녹아 검붉은 흙이 드러납니다. 하지만 북사면(?)은 하얀 눈이 겨우내 깨끗합니다. 봄이 되어 태양의 고도가 높아지고 지열이 올라야 비로소 녹습니다. 얕은 밭이랑조차 남과 북이 이렇게 다른데, 산이라면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무리 작더라도 산의 북쪽에 앉은 집이라면 겨울 한 철 햇빛구경은 언감생심입니다.
독야청청 소나무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습니다. 산은 어느 종중 소유였는데 가꾸지 않아 멋대로 자란 소나무는 아름드리 굵기에 몇 십 미터 키를 자랑했습니다. 한겨울에도 잎을 창창하게 매달고 땅으로 한 줌 햇빛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바늘 꽂을 자리도 찾기 어려웠습니다. 동지섣달 촘촘한 솔잎을 뚫고 내려온 햇빛이 우리집 지붕에 머문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고작 3시간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이 많았습니다. 우리 차는 웬만한 눈에서는 굴러가는 4륜이었는데 폭설로 세 번이나 운행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경유 응결점인 영하 18도 아래로 내려가 시동이 걸리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소나무 산의 북향 집에서 보낸 첫 겨울은 춥고 어둑했고 무서웠습니다. 추사의 세한도(歲寒圖)는 사제간 의리와 선비의 지조를 그린 걸작이라는데 나는 松栢에 둘러 쌓인 냉골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는 주인 얼굴만 떠오릅니다.
참사는 추위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듬해 여름이 되자 쉴 새 없이 비가 내렸습니다. 습한 기운이 온 집을 휘감았습니다. 공기는 축축했고 물기가 내려앉은 바닥은 미끄러웠습니다. 옷과 이불에는 곰팡이가 창궐했고 쇠붙이는 녹이 올라 모조리 붉게 변했습니다. 16리터 제습기가 몇 시간 만에 가득 채워지는 아쿠아월드에서 사는 건 한겨울 추위만큼이나 끔찍했습니다. 비가 많이 내리기도 했지만 움푹 페인 지형과 북향 때문에 수분이 날아가지 못한 탓이 컸습니다. 첫 겨울과 여름이 지난 후 아내는 말했습니다. “나 죽으면 아파트에 묻어줘.”
참혹한 경험이 아내로 하여금 “아파트 매장문화”의 선구를 개척하게 했다면, 나에게는 네비게이션 모드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집터를 보지 못해 가족을 사지(死地)로 끌어 들였다는 자책에 내 관심은 온통 방향에 쏠렸습니다. 어디를 가도, 무엇을 봐도 남향과 북향을 구별해 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국도를 달릴 때도 그랬고, 등산을 갈 때도 그랬습니다. 이 마을, 저 집의 위치를 살펴보고 혼자 품평하곤 했습니다. ‘이 동네는 양지바른 곳에 잘 자리 잡았군. 좋아!’ ‘저 집은 북풍한설을 어찌 견디려고 저기에 터를 잡았을까. 쯧쯧.’ 네비 모드를 바꾼 건 그 연장선이었습니다.
“회전뷰”는 운전자 관점입니다. 자동차의 직진 방향을 항상 화면 위쪽에 두고 운전자의 시선은 직진방향으로 고정됩니다. 자동차의 움직임을 따라 “지도”가 계속 회전하는데 착안해 회전뷰라고 이름붙인 듯합니다. 운전자의 시선과 화면에서의 진행방향이 같기 때문에 편리한 반면 내가 동서남북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직관적으로 알 수 없습니다.
고정뷰는 반대입니다. 북쪽을 위로 하여 화면상 지도가 고정됩니다. 항상 정면을 바라보는 운전자의 시선과 달리 화면에서는 자동차와 운전자의 항로가 상, 하, 좌, 우로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서울에서 동해바다를 향해 가는 경우, 회전뷰에서는 어떤 경우라도 차가 직진, 즉 위로 나아가지만 고정뷰에서는 크게 보아 화면 오른쪽으로 움직입니다. 고정뷰에서는 화면에서의 자동차 위치를 통해 동서남북 방향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익숙한 회전뷰를 버리고 고정뷰로 갈아탄 이유입니다.
새로운 모드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시각을 바꾸는 작업이라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좌회전해야 하는데 우회전 한 경우도 있고, 제대로 가고 있나 의심스러워 차를 세우고 확인한 때도 있었습니다. 시행착오 끝에 익숙해지자 내 눈은 볕 좋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을 쉽게 구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나라 땅 어딜 가나 고택(古宅)과 구시가지는 산의 남쪽이나 강의 북쪽에 있었습니다. 인구가 늘어나고 집터가 부족해지자 북향 땅에도 집을 짓기 시작했고 강의 남쪽에도 식당이며 러브호텔이 들어섰습니다. 세상사람 다 아는데, 나만 모르고 고생을 했던 겁니다.
몇 년이 흘렀습니다. 익숙해졌다고는 하나 고정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 이유를 궁리하다가 네비 모드에는 단순한 편리와 불편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로 세상을 대하는 태도입니다. 운전자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옮겨놓은 회전뷰에서는 지도 즉 세상이 끊임없이 움직입니다. 나는 세상 한 가운데 고정돼 있고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내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세상이 존재하고 내가 인식하는 것이 전부인 세계가 구현됩니다. 코페르니쿠스 이전 사람들의 세계관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곳은 회전뷰 세상이 아닙니다. 객관적 실체로서의 세상이 있고 그 속에 부분으로 내가 존재합니다. 내 시각과 인식에 따라 세상이 마구 돌아갈리 없습니다. 세상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내가 방향을 틀고 시각을 바꾸고 인식을 고쳐야 합니다. 고정뷰는 이런 세상입니다. 고정뷰 속 운전자는 목적지에 가기 위해 계속 방향을 조정합니다. 현실 세계의 실사판이자 코페르니쿠스 이후 세계를 보는 시각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현실세계를 재현한 고정뷰는 불편하고 운전자의 시각으로 세상을 재구성한 회전뷰는 편리합니다. 주관적 입장만으로 세상을 판단하는 손쉬운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제한된 경험과 지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재단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공동체와 자연의 일부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겸손한 개인이 아니라 모든 것에 우선하는 오만한 개인이 투영된 듯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회전뷰가 거북해졌습니다.
최종 목적지를 대하는 태도도 다릅니다. 회전뷰 속의 나는 네비가 시키는 대로 당장의 방향에만 집중합니다. 차안대를 차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와 같습니다. 목적지는 네비가 알아서 할 일이고 나는 관심 둘 필요가 없습니다. 편하긴 한데 시스템 에러에 취약합니다.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도 알아차릴 도리가 없습니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지만 어디에 있는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우리네 삶과 닮았습니다. 숨 쉴 틈 없이 꽉 채워져 있는 것 같아도 방향을 잃은 삶은 허무합니다. 아니 방향을 잃었다는 것조차 모르기 십상입니다.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삽니다.
고정뷰 세상은 다릅니다. 매 순간 상하좌우로 방향을 바꿔가며 목적지를 탐구합니다. 어디에 있는지, 방향은 잘 잡았는지 끊임없이 성찰합니다. 차안대의 좁은 시야와 근시안에서 벗어나 멀리보고 주변을 살핍니다. 고정뷰 세상에서 사는 나에게는 잘못된 삶의 방식이나 방향을 바로잡을 기회가 있습니다. 빠르게 변하는 요즘, 중심을 잡지 못하면 길을 잃기 쉬운 세상에서 고정뷰의 관점은 더욱 절실합니다.
3년이 지난 후 우리는 패배를 선언하고 아파트로 귀환(?)했습니다. 따뜻하고 편리하고 깔끔한 도시 생활에 새삼 감사하며 살고 있지만 이따금 헛헛합니다. 가을이면 고기동 집에서는 은행알을 욕심껏 줍곤 했는데, 몽글한 껍질의 촉감이 선합니다.
내가 쓰는 스마트폰 네비는 회전뷰 단일모드만 지원합니다. 다른 앱도 그렇다면 고정뷰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네비를 장만해야 합니다.
2015년 5월, 경향신문에 “지도 고정 모드”라는 컬럼이 게재되었습니다. 착안점이 같은데, 그 컬럼에서 생각을 빌려온 건 아닙니다. 이 글의 네비모드에 관한 부분은 멋모르고 시작한 북향집 살이의 슬픈 경험에 따라 자가 발전되었습니다.
* 차안대 : 경주마용 눈가리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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