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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Apr 08. 2021

꽃놀이


제비꽃을 좋아해요.

이름값하는 봄꽃이 매화, 진달래 처럼 대부분 나무꽃인데 비해

제비꽃은 민들레와 함께 풀꽃이죠.


아직 거칠고 찬 봄바람을 피해보겠다고

땅으로만 기어다니는 게 짠해요.

그 와중에 보라색 꽃을 피워내는데,

꽃으로 수놓인 땅바닥을 보고 있으면 묘하게 빠져들거든요.


제비꽃을 미워해요.

텃밭에 뿌린 씨앗이 올라오기 전에,

겨우 올라온 씨앗이 자리 잡기 전에

제비꽃은 온 밭을 차지해요.


미리 뿌리내린 제비꽃은

거름과 봄비를 독차지하고


미리 싹을 올린 제비꽃은

햇빛을 먼저 받아내고

바람도 앞서 채가요.


그러니 공들여 심은

상추, 열무, 얼갈이배추는

제비꽃 등쌀에 지실이 들어요.

뿌리가 깊어 잘 뽑히지도 않아요.


꽃 모양 때문에 오랑캐꽃이라고 한다는데,

농사방해꾼으로서도

딱 어울리는 이름이다 싶어요.




그래도 마냥 미워하지는 못해요.

이쁘니까요.


밭일을 끝내고 돌아서는데

땅바닥에 보라색 꽃 덩어리가 떠있는 거에요.

하나씩 펴 있어도 충분히 눈길을 끄는 꽃들이

다발로 피어있으니 어떻겠어요?


위에서 내려다 봐도 좋지만,

옆에서 보면 진면목을 알 수 있어요.

우리가 부케라 부르는,

꽃다발이 둥둥 떠 있거든요.


세상에 제비꽃다발이라니.....

오랫만의 삽질로 팔다리어깨허리가 뻐근하고 피곤했는데

순식간에 기분이 좋아지는 거에요.

이러니, 싫어라 할 수가 없죠.




엎드린 김에

민들레도 다시 봤어요.


핸드폰을 땅에 붙이고

꼭 민들레 눈 높이에서 사진을 찍어요.

울창한 정글에 노란색 꽃이

유에프오 처럼 떠 있는 거 같아요.

분홍물을 잔뜩 머금은 꽃을 힘겹게 매달고 있는 건 금낭화에요.



그리고는 배꽃을 땄어요.

하얀 배꽃을 따서 흙바닥에 던졌어요.

미안하지만 미안하지 않았어요.

마음이 아리지만 괜첞은 척 했어요.

티끌없는 하얀 꽃이 흙에 뒹굴어도 못본채 했어요.


그러다 날이 저물었어요.

마무리를 하고 뒤돌아 서는데,

자꾸만 뒤에서 잡아당기는 거에요.

몇개를 주워들었어요.

꼭지를 고무줄로 엮으니

또 부케가 만들어 졌어요.


땅에도 꽃이 많아요.

눈높이를 낮추면 꽃놀이를 할 수 있어요.

진달래, 벚꽃, 목련 다 졌어도

그래서 괜찮아요^^




#제비꽃 #민들레 #금낭화 #배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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