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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풍연 May 10. 2021

낮별이 뜨다

- 큰구슬붕이 군락지 - 


작년 이맘때였어요.

난생처음 큰구슬붕이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더랬어요.

불현듯 맞닥트린 앙증맞고 화려한 꽃송이!     


여기저기 자랑하고 난리도 아니었죠.

그만큼 강렬했고 화려했고 신비했어요.     

 

딱 한그루에 딱 두 송이뿐이었다는 거,

그리고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는 거,

이게 큰 아쉬움으로 남았어요.     


귀해서 꼭꼭 숨어 있는 건가? 하면서 

님 볼 날 기다리듯 

다시 봄이 되길 기다렸어요.     



봄이 무르익은 날,

전날 하늘을 막아섰던 황사가 말끔히 사라진 오후,

라면으로 점심을 때우고 번 시간에 

개울을 건넜어요.     


작년 그 자리,,,, 

아무리 둘러봐도 없어요.

아래서 치 봐도 없고 위에서 내리 봐도 흔적을 못찾았어요.

내가 잠깐 봤다고, 

내 손길 한 번 탔다고 스르르 주저앉았나 싶어 

속상하고 미안했어요.      

어깨를 늘어뜨리고 올라갔어요.

다시 개울을 건너고 

푹신한 낙엽을 밟으며 터덜터덜 걸었어요.     


생각지도 않던 낙엽더미에서 큰구슬붕이를 봤어요.

처음에 하나가 눈에 띄어 주저앉았는데,

일어서 보니 여기도 저기도 점점이 박혀 있어요.     

군락지를 찾은 거예요.

큰구슬붕이 군락지,

세상에 나만 아는 군락지가 생긴 거죠.     


봄날이 쨍하게 맑아 망정이지,

깜깜한 밤이면 별이 뜬 거랑 같을 거라 생각했어요.     


발걸음을 옮길 때는 조심 또 조심해야 해요.

작은 몸뚱이로 낙엽을 밀어 올리느라 죽자 살자 용을 썼는데,

어른거리는 햇빛 그림자를 이제 겨우 맛봤는데,

뭉개지면 안되잖아요.

무지막지한 장홧발에 별이 깨지면 슬프잖아요.     


아, 

첫 꽃송이를 눈에 담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나온 발자국을 돌아봤어요.


아뿔싸, 낙엽 밑 꽃송이가 고개를 떨구고 있어요.

눈먼 짐승이 벌써 별을 하나 떨어뜨렸어요.     

어디쯤인지,

머릿속에 꼼꼼히 좌표를 기록하고 

폭포로 갔어요.     


물소리와 나뭇잎 맞닿는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봤어요.

어른거리는 햇빛 그림자를 보고

한가한 물고기를 봤어요.     


아직 봄날, 

나지도 않은 땀을 식히며 

1년 묵힌 기다림을 흘려보냈어요.


#큰구슬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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