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집에 작은 연못이 있습니다. 이웃집 비탈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끌어와 채운 연못물은 사철 맑고 깨끗합니다. 자연에는 낭비가 없습니다. 유기물은 뭐가 됐든 먹거나 분해해 버리고 공간이 있다 싶으면 기필코 비집고 들어옵니다. 빈 연못을 내버려 둘리 없습니다. 먼저 찜한 건 무당개구리와 북방산개구리 그리고 도롱뇽입니다. 해마다 산란 터로 쓰는데 사용료는 한 번도 받지 못했습니다.
이왕에 공짜로 내놓은 마당이라 판을 키우기로 했습니다. 개울에서 버들치 몇 마리를 잡아 입주시켰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마릿수가 부쩍 늘었습니다. 손바닥 길이나 되는 큰 놈부터 손톱만 한 치어까지 크기가 천차만별입니다. 언젠가 한 움큼 넣어둔 다슬기는 바닥을 까맣게 뒤덮었습니다.
작지만 독립된 생태계로 균형이 잘 잡힌 것 같아 보기 좋았습니다. 그런데 뭔가 아쉬웠습니다. 물풀이 없어 허전했던 겁니다. 물속은 활기가 넘치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밋밋했습니다. 버들치와 다슬기 역시 깃들일 데가 없었습니다. 탁 트인 곳은 알을 낳거나 치어를 기르기에 좋지 않습니다. 가리고 기댈 뭔가가 있었으면 싶었습니다. 도랑에서 갈대 뿌리 하나를 뽑아다 던져둔 게 몇 해 전입니다.
예상은 맞아떨어졌습니다. 갈대가 연못에 자리를 잡자 뿌리와 줄기는 어린 다슬기의 육아 방이 되었습니다. 버들치 치어는 뿌리 사이를 숨바꼭질하듯 몰려다닙니다. 여유와 생동감이 더해진 연못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시간 가는 걸 잊게 됩니다. 누구 하나 월세 한 푼 내지 않지만 아깝지 않습니다.
뿌듯함은 잠시, 문제가 생겼습니다. 연못에는 늘 물이 넉넉했고 오랫동안 퇴적물이 쌓인 바닥에는 거름기가 넘쳤습니다. 생명체가 호조건을 놓칠 리 없습니다. 뿌리를 내려 일단 자리를 잡고 나자 갈대는 마음껏 몸집을 불렸습니다. 꽉 채울 기세로 금세 연못을 장악해 나갔습니다. 자그마한 크기로 머무르면서 버들치 탁아소 노릇이나 하면 좋겠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내 욕심이었습니다.
연못 꼴을 유지하자면 통제 프로그램을 가동해야 하는데, 이게 거저 되는 일이 아닙니다. 갈대는 머리카락처럼 가늘고 빽빽한 뿌리가 흙을 꽉 움켜쥐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다루기가 힘든데 물을 잔뜩 머금고 있다 보니 꽤나 무겁습니다. 처음 손을 댈 때였습니다. 멋모르고 줄기를 확 잡아당겼다가 무게를 이기지 못해 오히려 연못 속으로 끌려 들어갈 뻔했습니다. 엉킨 뿌리를 작게 자른 다음 힘껏 용을 써야 겨우 끌어낼 수 있습니다.
생명 가진 걸 내 의지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건 착각입니다. 옮겨 심는 건 내 맘이었지만, 그 다음은 내 뜻과 상관없습니다. 오직 지엄한 유전자의 명령을 따를 뿐입니다. 올해도 과외로 땀을 흘린 뒤에 연못가에 앉아 흙탕물이 가라앉기를 기다립니다. 다시 맑아진 물속에는 피라미와 다슬기가 평화롭습니다. 시선은 애증의 갈대로 옮겨갑니다. 새삼 들여다보며 연못의 구색을 갖추겠다는 헛된 망상을 후회합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습니다.
<작은 연못> 바닥에 까만 점으로 다슬기가 보입니다. 왼쪽에 갈대가 보입니다.
2. 질경이
환경이 맞으면 세력을 키우고 아니다 싶으면 숨죽여 때를 기다리는 게 생명의 법칙입니다. 갈대가 입주한 연못은 물과 양분이라는 생육 조건을 잘 갖추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강제이주를 당해 스트레스가 컸겠지만, 새 정착지의 조건만 놓고 보면 운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모두가 좋은 곳에 자리 잡는 건 아닙니다. 용인 고기동에 산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집 마당에 있던 질경이는 운이 나빴습니다.
<고기동 질경이와 작은 아들> 고기동집에서 이사 나오던 날 질경이밭에서 어린 작은 아들은 아쉬움에 상념에 젖어 있습니다.
고기동 집은 마당이 있는 땅집이었습니다. 마당은 명색이 잔디밭이었지만 우리가 이사 갔을 때는 이미 다른 풀들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었습니다. 잔디는 흔적만 겨우 남은 정도였습니다. 남의 집 마당 망쳤다는 소리를 들을까 싶어 틈만 나면 풀을 뽑았습니다. 무릎이 아프도록 애를 써도 잔디는 좀처럼 기를 펴지 못했고, 냉이, 망초, 민들레 같은 풀들은 나날이 번성했습니다. 풀을 뽑는 게 더는 의미가 없을 만큼 풀밭이 된 뒤에는 뗏장을 사다 심어보기도 했습니다. 헛일이었습니다.
마당 불청객 중에 질경이가 있었습니다. 여럿 중 하나라기보다는 단연코 우세종이었습니다. 풀을 뽑아 풀무덤을 만들고 나면 질경이만 유독 도드라졌습니다. 수북하게 쌓여 있는 질경이를 보며 효소를 만들어야하나 궁리할 정도였습니다.
질경이는 잘 뽑히지 않았습니다. 뽑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로제트 형태로 바닥에 납작 엎드린 잎차례는 잡을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여러 가닥으로 뻗어 내린 뿌리는 땅속 깊이 야무지게 박혀 있습니다. 잠시 잠깐 딴생각에도 뚝뚝 끊어집니다. 질경이 뽑기에 넌덜머리가 난 나머지, 얼마나 질기면 이름마저 ‘질’경이야?* 하고 투덜대곤 했습니다.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질경이는 본래 질긴 게 아닙니다. 한참 시간이 지난 후 강원도에서 만난 질경이는 쉽게 뽑힙니다. 호미도 필요 없습니다. 주변 흙을 살살 긁어낸 뒤 몸통을 잡고 조심스럽게 뽑아 올리면 뿌리 한 가닥 다치지 않고 깨끗하게 끌려 나옵니다. 제비꽃이나 민들레에 비하면 거저먹기입니다. 질경이를 질기게 만든 건 사람 발길이었습니다.
사람이 계속 드나들던 고기동 집에서는 질경이를 포함한 모든 풀이 끊임없이 발길에 밟혔습니다. 시련 속에서 후대에 유전자를 남기려면 질기고 억세지는 것밖에 달리 도리가 없습니다. 험악한 신발에 짓이겨져 이파리가 문드러질수록 흙을 더 단단히 부여잡아야 한살이를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인적이 뜸한 산골에서는 발길에 채일 일도 뽑혀 나갈 위험도 없습니다. 굳이 젖 먹던 힘까지 짜내가며 흙을 움켜쥐고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땅속 양분을 흡수할 수 있을 정도로만 가볍게 뿌리내리고 편안하게 햇살과 바람과 비를 즐기면 됩니다. 남는 에너지는 씨앗에 고스란히 담아 다음 세대에 넘겨줍니다. 그런 눈으로 봐서 그런지 산골 질경이는 예전 고기동에 비해 훨씬 곱고 싱그럽습니다. 때깔이 다릅니다.
도시 한 가운데 골목길 어딘가에서 오늘도 질경이는 생명을 이어갑니다. 누군가는 장하다고 감탄사를 보내고 누군가는 부질없다고 타박합니다. 누가 뭐라 하건 질경이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환경에 맞게 생명 의지를 불태울 뿐입니다. 어떤 곳에선 모진 목숨을 겨우겨우 보존해 내고, 어떤 곳에선 유유자적 천수를 누리며 세대를 이어갑니다. 질긴 생명력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 한글명 질경이는 잎이 질긴데서 유래하는 것이 아니다. 길에서 사는 생태성으로부터 유래하는 ‘길경이’란 오래된 이름이 있다. 한자명 차전초(車前草)에 잇닿아 있는 이름이기도 하다.(네이버 지식백과)
* 차전초 : 마차 바퀴가 지나간 자국에 피는 풀
<산골 질경이> 맨손으로 쉽게 뽑힙니다.
3. 아들
지난 가을이었습니다. 둘째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수신 버튼을 누르자마자 서둘러 “여보세요!”를 외치는데, 목소리가 평소와 다릅니다. 들뜨고 흥분했습니다. 독서실에서 엎드려 자고 있는데, 총무가 깨우며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하더랍니다. “이렇게 자면 벌점을 줄 수밖에 없어요.” 아들이 다니던 곳은 관리형 독서실인데, 공부시간과 휴식시간이 정해져 있습니다. 공부시간에 잤다는 게 총무의 지적이고 한 번 더 걸리면 페널티를 주겠다는 경고입니다.
아들은 여립니다. 자기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상대방 입장을 먼저 헤아립니다. 어려서부터 그랬습니다.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엄마아빠가 달갑잖아 하는 기색이 느껴지면 욕심을 거뒀습니다. 다른 이들에게도 살가워 가족이 모일 때면 어린 사촌들과 놀아주는 건 으레 둘째였습니다. 양념치킨과 떡볶이는 극강으로 매운 걸 좋아해도 정작 제 성정은 지극히 순한 맛입니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 못하는 건 당연합니다.
아비 된 입장에서 순한 맛 아들은 감사한 일입니다. 똑 부러지게 야물딱진 것도 좋지만 지나쳐서는 곤란합니다. 되바라져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기보다는 한발 물러서는 게 낫습니다. 지금 당장은 손해인 것 같아도 차곡차곡 선업을 쌓다 보면 몸과 마음이 편안한 날들이 아들 앞에 기다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순한 맛 아들은 걱정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조용한 것보다 요란한 걸 좋아합니다. 뒷줄보다 앞줄에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고 모든 평가시스템은 외향적인 사람에게 유리하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매운맛에 치인 순한 맛들은 존재감을 드러내기 어렵고, 그게 쌓이다 보면 급기야 자존감조차 잃어버리기 십상입니다.
순해서 고맙고 맵지 못해 근심스러운 이율배반이 늘 내 속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어려서야 마냥 감사한 마음이 컸습니다. 하지만 성인을 앞둔 시점이 되자 걱정 쪽으로 조금씩 기울고 있었습니다. 험한 세상 어쩌구저쩌구 하는 고릿적 레퍼토리를 읊어 대지는 않았지만 나 자신은 그 틀에 점점 갇혀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마냥 순한 맛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총무의 만행(?)을 일러바친 다음 조금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혼자 묻고 대답합니다. “그래서 내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잠자는 사람 있으면 깨워주고, 딴 짓 못하게 하는 게 총무님 일 아니에요? 그래서 여기가 다른 데보다 비싼 거잖아요?’ 라고 했지. 말하고 나니까 총무 형이 뭐라 뭐라 구시렁대며 되돌아갔어.”
예전 같으면 그냥 ‘네, 알겠습니다.’ 하며 물러나고 말았을 텐데 이번엔 달랐습니다. 집에서는 여전히 순둥순둥한 맛이지만 아들에겐 이미 고춧가루와 후추가 조금씩 뿌려지고 있었던 겁니다. 독립된 개체로 살아가기 위한 준비를 진즉부터 차근차근 하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통화가 끝나고 나서 혼자 빙그레 웃었습니다. 사람 사는 게 갈대나 질경이와 다르지 않아 보였습니다. 모든 생명체는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조건이 좋으면 활발하게 생명활동을 이어가고, 척박하면 그저 유전자 보전에 전력하며 다음 세대를 기약합니다. 한 곳에 붙박여 살아야 하는 갈대나 질경이에 비해 맘대로 옮겨 다니고 주어진 환경을 적극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사람이 훨씬 나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어쩔 수 없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있다는데 생각이 미치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았어도 아들은 거친 세상을 사는데 하나 쯤 필요한 호신용 스프레이에 후춧가루를 조금씩 채워가고 있었습니다. 연못이라는 좋은 조건에서 갈대가 번성하듯, 도심과 산골에서 질경이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듯 아들은 제 몸 깊은 곳에 각인된 유전자를 지도삼아 자기 삶을 살아 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 물었습니다. “총무한테 말할 때 기분이 어땠어?” “심장이 벌렁거려서 터질 것 같았어.”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아직 매운맛과는 한참 거리가 멉니다. 칼칼한 맛 정도?